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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Mar 14. 2024

나만 몰라 내 심박수!

결국 애플워치를 사버린 이유

다음 중 수영 강습을 받을 때 꼭 필요한 용품이 아닌 것은?

1. 수경 2. 수영모자 3. 오리발 4. 스마트 워치 5. 안티포그 액


나는 늘 4번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1,2,3,5번은 필요의 영역이지만 4번은 욕구의 영역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한 때 애청하던 TV예능, <신박한 정리> 정리전문가에게 배운 분류법으로 집 안의 물건을 비울지 말 지 판단할 때뿐 아니라 새 물건을 들일 지 말지 판단할 때도 꽤 유용하다. 비싼 물건, 좋은 물건을 살 때일수록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필요의 영역인가? 욕구의 영역인가? 결론은 늘 같았다. 물 밖에서도 번거롭다고 시계는 차지 않는 내가 물속에서 시계라니. 킬.


"우리 몇 m 했어요?"

가끔 아주 힘들게 수영 강습을 받은 날엔 스마트 워치를 찬 회원에게 슬쩍 다가가 물어보긴 했다. 궁금했으니까. 내 앞에 선 회원이 1800m를 했다고 하면 나도 비슷하게 했을 거라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도 사야지 하는 욕구가 들지는 않았다.


매월 마지막 날 한 달을 회고하며 구글캘린더를 열어 수영을 몇 번 했나 세어보는 내게 수친 G가 스마트워치를 쓰면, 알아서 기록해 준다고 알려주었을 때도 사야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달에 100번 넘게 수영하는 것도 아니고 많아야 24회 정도인데 직접 세면 된다고 생각했다.  


"언니, 애플워치를 쓰면 삶의 질이 달라져."

또 다른 수친 H는 맨 팔로 수영하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스마트워치가 거리만 측정해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심박수와 칼로리도 측정해 준다고. 내가 몇 바퀴를 돌았나 궁금해할 때 나의 수친들은 자신의 최대 심박수를 궁금해했다.


중급반 1번 레인에 있는 나와 달리 중급반 2번 레인과 상급반 1번 레인데 있는 그들의 관심사는 얼마나 고강도로 수영을 했는가였다. 때때로 이 정도 수영하면 칼로리를 얼마나 썼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최대 심박수라니.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영역이었다.


그 친구들에 비해 느리고 서툴고 최대 심박수에 관심도 없는 내가 스마트워치를 사는 건 수영을 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스마트폰을 락커에 넣어두고 물속에 들어가 단 1시간이라도 속세와 깨끗이 단절되는 것인데, 스마트 워치라니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가 수영강습을 들으려면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수경과 수모, 안티포그 액을 사라고 당부했지만 스마트워치'ㅅ'자도 꺼내지 않았다. 아, 오리발은 수영 강사님이 사라고 할 때 사면 된다고 귀띔해 주었다.


그랬던 내가 수영 강습 시간 50분 내내 자유형 뺑뺑이를 4일 하는 동안 생각이 야금야금 달라졌다. 같은 레인의 다른 회원처럼 20바퀴를 돌았다면 나도 자유형 장거리 2,000m를 했다는 말인데. 그 정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대체 얼마나 한 걸까. 그날따라 너무 궁금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다.  

"자유형 뻉뺑이를 했는데 45분이나 했는데 나만 몇 m 했는지 몰라."

"한 바퀴 돌 때마다 세면 되잖아."

"그게 하다 보면 까먹어.애플워치 좀 사줘."

"중학생 딸이냐. 네가 사!"      


그래 나도 뇌가 있는데 내가 세면 돼지. 다음날 나는 자유형 뺑뺑이를 처언처언히하며 숫자를 셌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처언처언히이이 하며 세는데도 열 바퀴가 넘어가니 헷갈렸다. 에잇, 숫자 세다가 박자 엉퀴겠다. 몇 바퀴가 뭐가 중요해. 쉬지 않고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일단 돌고 보자 모드로 도올고 도올고 또 돌았다. 중간에 몇 번 쉬긴 해도 끝까지 뺑뺑이를 돌았다. 몇 바퀴인지는 몰라도 뿌듯한 마음으로 샤워실에 들어섰다. 여느 때처럼 샤워기는 만석이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상급반 회원들에게 자유형 뺑뺑이를 돌아 힘들다고 엄살을 떨었다. 그랬더니 몇 m나 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상급반 회원 한 명이 내 속목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 워치가 없구나..." 그날따라 내 손목이 유난히 허전해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일까.


"오늘도 자유형 장거리예요. 힘들면 평영 해도 되는데, 심박수 떨어뜨리지 말고 하세요."

다음날도 자유형 뺑뺑이. 수영강사님 말에 당황했다. 아, 심박수를 알아야 유지할 텐데. 어떡하지? 점점 나도 내 심박수가 궁금해졌다.


그다음 날도 나는 내 심박수를 모른 채 자유형 뺑뺑이를 처언처언히이이 했다. 이 정도면 적정한 심박수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 아주 빠르게 할 땐 숨이 차니까 심박수가 몇인지는 몰라도 빨라진다는 걸 느끼지만, 느리게 수영을 할 때 적정한 심박수를 유지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심박수라는 세 글자가 이렇게 궁금해질 줄이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애먼 남편에게 심박수 타령을 했다.  

"여보, 몇 바퀴인지는 내가 센다고 쳐도, 심박수는 셀프 측정 못하잖아 아무래도 애플워치가 있어야겠어."

"심박수가 왜 궁금한데?"

"심박수를 유지하면서 자유형 장거리를 하라는데 심박수를 알아야 유지하지."

"참, 심박수가 뭐라고"


심박수란 무엇인가. 1분 동안 심장이 뛰는 횟수다. 그걸 내가 무슨 수로 수영하며 측정한단 말인가. 그놈의 심박수가 궁금해서, 결국 애플의 명물 애플워치를 사기로 결단을 내렸다. 어떤 버전, 어떤 사이즈, 무슨 색을 살지만 꼬박 하루 고민했다. 오랜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 남편이 주문한 일요일 오후에 쿠팡에서 주문한 워치는 월요일 새벽이 되기도 전에 도착했다.


중학생 딸도 아니면서 남편에게 애플워치를 굳이 선물 받고, 나는 남편에게 프리다이빙용 오리발을 사주기로 했다. 가격으로 따지면 내가 손해(?)이고, 니 돈이 내 돈인 부부 사이지만,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기분이 좋다.


월요일 새벽, 애플워치를 차고 수영을 하기 위해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나름 새벽부터 세팅을 하고 수영장에 갔는데 막상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마트워치가 아무리 스마트해도 내가 수영 모드에서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측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샤워하는 수친들을 붙들고 어떻게 쓰는지 물어본 후에 수영장으로 들어가는데 기분이 싸했다. 애플워치에 정신이 팔려 수경도 쓰지 않고 들어간 것. 다시 샤워실로 돌아가 수경을 쓰고 들어가며 생각했다. 이 정도 흥분상태면 심박수가 높겠는데?


그날 아이폰으로 확인해 본 운동 기록은 신세계였다. 비로소 문명의 세계에 눈을 뜬 기분이랄까. 애플워치는 스마트하게도 총 몇 분 간 몇 m를 수영했으며, 영법 별로 몇 m를 했는지, 어땠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줬다. 그날 내 평균 심박수는 140 bpm이었다.


마침 그날이 저녁엔 훌라댄스 레슨이 있어서 애플워치를 댄스 모드로 작동시키고 수업을 들어보니 50분간 훌라댄스를 추는 동안 내 평균 심박수는 93 bpm, 활동칼로리는 126 kccal였다. 다음날 요가원에서 애플워치를 요가 모드로 작동시키고 수련을 해보니 1시간 6분 동안 내 평균 심박수는 93 bpm, 활동칼로리는 193 kccal였다. 스마트워치는 참으로 유용한 물건이었다.


이제 애플워치를 산 지 2주 차다. 수영할 때뿐 아니라 요가, 훌라댄스, 걷기를 할 때 애플워치가 어떻게 측정하는지 궁금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심지어 치앙마이를 여행하는 지금도 호텔 풀장에서 수영을 대충 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애플워치 운동에는 야외 수영모드가 있다. 수영장 길이를 25m로 설정(변경 가능)하고 랩을 재는 대신, 수영한 위치와 온도와 습도가 기록된다. 수영을 포함 운동하는 사람에게 스마트워치는 욕구의 영역이 아니라 동기부여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사서 다행이다.


애플워치를 쓰고 나서야 수영이 심박수가 올라가는 고강도 운동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수영은 숨차고 힘들다. 수영의 기본 속성이다. 남편도 물어보지 않는 나의 심박수를 궁금해하는 수친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어서, 수영장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오늘 최대 심박수는 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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