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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Mar 18. 2024

어쩌다 드디어 수영 상급반

수영 강습 시간을 바꿨더니 상급반이 되었다

여행지에서는 늘 소원을 빈다. 소원을 빌려고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지만,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여기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장소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엄마가 항암 치료를 받을 때는 슬로베니아 블레드 섬 호구 한가운데 떠 있는 성당에서도, 스위스 생갈렌 수도원에서도, 타이베이 디화지에의 사원에서도 늘 엄마가 다시 건강을 되찾길 빌었다. 비록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쭉 소원을 빌 생각이다. 며칠 전 치앙마이 왓판온 사원에서 골골하는 남편 옆구리 아프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원을 비는 일은 장점이 꽤 많다.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잠깐의 시간과 마음을 쓰면 된다. 유럽 성당에서 촛불을 켜는데 1~2유로 정도 돈이 들 수는 있지만 대체로 공짜이므로. 무슨 소원을 빌까 생각을 하다 보면 관심사를 알아차리거나, 삶의 우선순위를 인지하게 된다. 그때 내 소원이 간절히 바라는 일이라면, 이루기 위해 그만큼 노력하게 된다.


"이번 생에 수영 상급반 가게 해주세요! "

지난겨울 설악산 켄싱턴리조트에 묵었을 때는 소원을 써서 트리에 달았다. 다분히 사심이 담긴 행동이었다. 위시 트리에 소원을 빌고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면 숙박권을 준다는 이벤트를 하길래 굳이 내 손으로 소원 종이에 써서 달았다. 혹시나 이벤트에 당첨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반. 말로만 이야기하던 소원을 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중급반에 온 지 5개월 차였던 나는 빠르면 3년 후에는 상급반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소원을 빌었다. 산타클로스나 호텔 총지배인님이 나를 상급반에 보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상급반에 가게 해 달라고 소원을 썼다.


대체, 왜 그렇게 상급반에 가고 싶은지 궁금하신 분 손 들어 보시길! (아, 안 궁금하시다고요? 그래도 알려드립니다.) 이번 생에 수영대회에 나가 보고 싶어서다. 수영대회는 누구나 참가비만 내면 나갈 수 있다고 들었지만, 이왕이면  'Take your mark'라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스타트대 위에서 멋지게 수영장으로 뛰어들고 싶다. 스타트도 못하는 채 수영 대회에 나가는 것은 승률도 떨어질뿐더러 폼이 안 나는 일 아닌가. 


수영장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상급반이 되어야 스타트를 배울 수 있다. 언젠가 중급반에서 스타트 수업 중 부상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중급반의 스타트 수업은 금지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열심히 수영 실력을 쌓아 상급반으로 가 스타트를 배운 후 수영대회에 나가는 수밖에.   


켄싱턴 호텔 위시 트리에 소원을 써서 단 후 겨우내 열심히 수영을 했다.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씨에도 털모자를 쓰고 수영을 하러 갔고, 눈이 내린 날도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뽀드득 소리 나게 밟으며 수영장에 갔다. 그랬다고 수영실력이 일취월장 는 것은 아니지만 야금야금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은 들었다.


안타깝게도 야금야금 나아지는 기분보다 강렬하게 느껴지진 것은 어깨통증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어깨가 문제가 아니라 일자목이 문제라고 했다. 수영을 하려면 배영 위주로 하거나 수영 전후로 스트레칭을 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새벽 수영을 절반 포기하는 대신, 월 수 금엔 오전 10시에 요가를 해서 몸을 푼 후 12시 수영 강습을 듣기로 했다.


진작에 등록은 했지만 여행을 다녀오느라 오늘에야 수영장에 갔다. 정오의 수영장은 아침 7시 초급, 중급, 상급이 있는 수영장과 달리 초중급 레인과 상급레인으로 나뉘어 있었다. 당연히 나의 초급반 시절 강사님이 담당하는 초중급 레인으로 가야겠지라고 생각했다. 두리번거리다 상급반 강사님과 눈이 마주쳤고, 눈이 마주친 김에 물었다. "선생님, 저 어디로 가야 할까요?"


"12시는 초중급반이 통합이라 거기로 가면 운동량이 너무 적어요. 상급반으로 오세요."

"네? 제가요? 제가 상급반에 가도 돼요?"

이게 웬 떡인가. 저쪽 초중급반으로 가세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상급반 라인으로 입수했다. 켄싱턴 호텔 위시트리에 소원을 쓴 지 3개월 만에 소원이 이루어질 줄이야. 


물론 내가 상급반 레인에 발을 담갔다고 해서 찐 상급반 실력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그런데 상급반이라는 세 글자에 어깨가 으쓱해서 사이드킥 어깨를 올리라는데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오리발데이임에도 불구하여도 다른 회원들에 비해 느린 게 느껴졌지만 어깨가 아픈 것도 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번 생에 이토록 빨리 소원성취를 하다니. 어깨춤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사이드 킥을 정말 열심히 했다. 정오의 상급반 다른 회원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기꺼의 용의 꼬리가 되리라 다짐하며. 새벽수영 상급반 사람들에게 들은 얘긴데 수영은 뱀 머리 보다 용 꼬리를 해야 실력이 빨리 는단다. 과연 그게 사실인지 직접 임상 실험을 해봐야겠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소원을 열심히 빌어야겠다. 소원을 빌 때마다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을 상상해야지.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나의 몫!





에필로그.

그런데 말입니다. 켄싱턴 위시 트리 이벤트에 누가 당첨되었을까요?

바로 접니다. 이번 생에 상급반 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써서 달고 벤트에 당첨되어 숙박권을 받았지 뭐예요. 그 덕에 또 한 번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하하. 소원을 비는 일은 장점이 참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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