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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Aug 27. 2024

내 한계는 내가 정할게요

중급반 수영인의 50m 수영장 도전기

"선생님 저 50m 수영장 가보고 싶은 데 가도 될까요?"

"가지 마요."

"왜요?

"지금 가면 망망해대처럼 느껴져."

밤 9시에 초급반에서 수영을 배우던 시절, 강사님과 나눈 대화다. 망망대해라니. 어푸어푸 헤엄치다 중간에 멈춰 서서 앞으로 가지도 뒤로 가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이거, 괜한 질문을 했구먼 싶었다.


초급반 3개월 차 나에겐 야무진 꿈이 있었다. 서울 올림픽 수영장도 아니고 런던 올림픽 수영장에서 수영해보고 싶다는 꿈. 당시는 코로나19 시국이었고, 집콕 생활이 지긋지긋했던 나는 런던에 사는 동생을 보러 간다는 핑계로 마일리지로 런던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터였다. 런던에 가는 김에 수영장도 가볼까 런던의 수영장을 검색하다 보니, 고인이 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런던 올림픽 수영장을 설계했다는 게 아닌가. 그때만 해도 평영으로 25m도 완주도 힘들어하던 때였지만 '어머, 여긴 꼭 가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유형과 배영만으로 50m 풀장에서 놀아야 되는데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수영강사님에게 물었다가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런던에선 올림픽 수영장은커녕 코벤트가든 수영장도 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50m 수영장을 생각하면 늘 '망망대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런던을 다녀온 지 1년쯤 후 중급반이 되었고, 올해 7월부터는 중급반 2번 레인으로 승급했음에도 늘 50m 수영장은 감히 갈 생각을 못했다. 7월에 전주로 워케이션을 가기 전까지는. 


올해 초 전주로 여행을 간 김에 그곳에서 자유수영을 하고 싶어 전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완산 수영장이 좋다고 했다. 여름에 다시 전주 여행을 계획하며, 자유수영을 하려고 완산수영장을 검색해보니 50m 레인 밖에 없는 수영장이었다.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 썰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수영장에 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50m 수영장에 들어가 몰 속 출발을 했다. 시작은 자유형, 그다음은 평영, 그다음은 배영. 세 영법 모두 무리 없이 출발점에서 50m 끝까지 도착했다. 접영만 40m쯤 왔을 때 힘이 들어서 자유형으로 바꿔서 했을 뿐. 막상 해보니 50m는 별 것 아니었다. 오히려 25m 풀장에서 사이드턴을 해서 한 바퀴 돌 때 보다 힘이 덜 들었다.    


내 인생 첫 50m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나니 벼룩 이야기가 떠올랐다. 벼룩은 자기 키의 20배까지 뛸 수 있는 생명체란다. 이런 놀라운 능력충 벼룩을 낮은 상자에 가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처음엔 천장에 부딪히다가 이내 박스 높이에 순응해 버린다고. 심지어 박스에서 꺼내 주어도 딱 박스 높이만큼 뛴다는 슬픈 이야기다. 그런데 이 벼룩 나랑 닮았네. 나 역시 중급반에서 수영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내 수영의 한계를 25m라고 생각해 버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수영장 물을 한 바가지 들이킨 듯 입안이 텁텁했다.


그날 이후 50m 수영장에 두 번 더 다녀왔다. 수영장을 나설 때마다 한계에 대해 생각했다. 수영뿐 아니라 나는 못해. 나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 얼마나 많은가. 한계란 부딪혀봐야 내가 넘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 알 텐데 시도해 보기도 전에  스스로 너무 많은 한계를 설정해 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앞으로는 부단히 내 한계를 찾아내 볼 생각이다.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여기까지 인가.' 생각하지 않고, '와,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하련다. 내 한계는 내가 정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올 가을 다시 런던에 가면 올림픽 수영장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과연, 키 큰 영국인들 사이에서 접영 하는 좋아하는 금호동 해달(수친들과 만든 별명)인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일단, 런던 올림픽 수영장 입장 예약 방법부터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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