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 알려준 분갈이의 마법

반려 식물에게 배웁니다.

by 우지경

“하나, 둘, 셋… 오십, 오십 하나, 오십 둘! 우와 선배 집에 식물에 50개가 넘어요?”


언젠가 집에 놀러 온 후배가 소리 내어 식물의 수를 세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게 다 내가 손수 화분에 심은 식물들이라고.


그렇다. 우리 집에는 식물 친구 52가 살고 있다. 52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식물의 수 일 뿐, 때에 따라 조금 더 늘기도 줄기도 한다. 늘어날 때를 대비해 여분의 화분과 넉넉한 양의 흙도 항시 구비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식물을 키우려고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난 식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선물 받은 식물은 죽이고 마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엄마의 말 한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내 식물들이 죽어가고 있어."

항암 치료를 3차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날 엄마가 힘 없이 말했다. 머리카락 하나 없는 엄마가 퉁퉁 부은 손으로 가리킨 베란다의 식물들은 비실비실하거나 뿌리가 화분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풀 죽은 식물들의 모양새도 서글펐지만, 엄마가 '죽어가고 있다'는 입 밖으로 말을 소리 내어했다는 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혹시 좁은 화분에서 버티고 있는 식물과 엄마가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식물들이 만세 삼창을 부를 듯 씩씩하게 살아나면 엄마도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까. 갖가지 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 시절 엄마는 암이 재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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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걱정하지 마. 분갈이하면 돼. 내가 할 게.”

“네가 분갈이를 할 줄 아나?”

“그럼, 하나도 안 어려워.”


하나도 안 어렵다고 했지만 실은 어려운지 안 어려운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분갈이를 해 본 적이 없었으니. 분갈이의 ‘분’자도 모르는 나는 물을 뜨러 산에 가는 아빠에게 배낭에 흙을 좀 담아 오라고 부탁하고 ‘분갈이하는 법’을 검색했다. 아뿔싸. 분갈이 용 흙은 산에서 퍼오는 게 아니라 돈을 주고 사는 것이었다. 야산의 흙에는 영양분도 없고 균이 있기 때문이라고. 재빠른 아빠는 이미 배낭 가능 흙을 담아 돌아왔고, 나는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는 핑계를 대며 다이소에서 배양토와 마사토를 사 왔다. (아빠 미안해.) 난생처음 내 돈을 주고 산 흙이었다.


“니가 진짜 할 수 있나?”

불안해하는 아빠를 베란다에서 밀어내고 할 수 있다고 자기 체면을 걸었다. 마지막 잎 새를 그리는 화가의 심정으로 분갈이에 집중했다. 조심조심 화분에서 식물을 꺼내고,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화분에 뚫린 구멍은 플라스틱 망을 잘라서 깔고 그 위에 마사토를 솔솔 뿌린 다음 배양토와 산 흙을 섞어 담은 후 식물을 심으면 끝. 하지만 화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쪼그려 앉아 일 하느라 다리도 허리도 손도 아파왔다. 그래도 분갈이 후 호스로 화분에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다.


무엇보다 기운을 차린 식물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볼 수 있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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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째는 쉽다고 했던가. 그날 이후 나는 집에 테이블 야자, 여인초, 후마타 등 식물을 하나 둘 들이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만 가면 꽃집에서 뭐든 하나 사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화분은 색과 사이즈별로 구비하고, 분갈이용 흙도 넉넉히 샀다. 내친김에 장갑과 모종삽과 전지가위도 장만했다. 그리곤 마음이 불안할 때면 분갈이에 골몰했다.


분갈이를 할 때면 그저 식물의 뿌리가 다치지 않게 흙을 살살 털고, 식물이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게 흙에 심으며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했다. 식물을 손에 흙이 묻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흙이 끼는 것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일을 하다가 문득 엄마 걱정을 하고, 친구를 만나가다 불현듯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어쩐지 분갈이를 하는 동안에는 태연해졌다.


그다음 해 봄엔 동네 꽃집이 아니라 양재동 꽃시장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우리 집 식물 수는 52로 늘었고 나는 분갈이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심은 화분에서 식물이 새 잎을 티우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도 늘었다. 뿌리가 화분을 뚫고 나올 기세로 잘 자란 식물은 큰 화분으로 옮겨 가며 키우는 중이다. 언제든 분갈이 또는 흙갈이를 할 수 있도록 집에 분갈이용 흙을 쟁여 둔다. 식물의 성장 속도에 맞춰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게 분갈이 라면, 화분은 그대로 두고 화분의 흙을 갈아주는 것이 흙갈이다.


어제는 추워지기 전에 해야지 하고 미루었던 분갈이를 했다. 모처럼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내다 보내 하루가 후딱 가버렸다. 아마도 나는 오래도록 태연하게 분갈이를 하며 지낼 것 같다. 때때로 식물을 떠나보내는 슬픔보다 식물들이 내 손을 거쳐 싱그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 크기에. 엄마는 떠나고 없지만, 내가 분갈이 한 식물을 바라보며 엄마가 웃던 장면은 마음에 남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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