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좋아지는 반려 물건 일기
유난히 잠이 깨지 않는 아침이 있는가 하면, 유달리 일찍 눈이 번쩍 뜨이는 아침도 있다. 어떤 아침이든 나는 침대에 누워 어제의 모닝커피를 그리워한다. 오늘도 그 진한 커피의 따뜻한 온도를 느낄 수 있을까 아련한 감정에 젖는 것도 잠시. 성실하게 코를 고는 남편을 부지런히 깨워 커피를 내려 달라고 할 것인가, 기차 화통 삶아 먹은 듯 원두 가는 소리를 내며 커피 내릴 채비를 할 것인가 미래지향적인 고민에 빠진다.
‘그래, 결심했어! 커피를 내리자.’라고 마음먹은 다음 장면 속 나는 부엌 창가에 서서 전동 그라인더에 원두를 가득 넣고 원터치 버튼을 누르고 있다. 전동 그라인더가 불을 켜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원두를 사정없이 가는 사이, 정수기 물을 전기 주전자에 0.5리터쯤 담아 끓인다. 동시에 내 손은 핸드 드립용 종이필터를 잘 접어 드리퍼에 끼운다. 무슨 커피 한 잔을 그렇게 수선스럽게 마시느냐고?
놉! 세상에는 엄청나게 귀찮은 일 같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그리 번거롭지 않은 일이 더러 있다. 그중 하나가 핸드 드립 커피이다. 핸드드립 커피는 종이필터를 사용해 커피의 지방성분을 걸러낸 깔끔한 맛의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므로 종이필터를 고이 접어 드리퍼에 끼우는 수고쯤은 수고도 아니다. 팔팔 끓인 물을 드립포트에 옮겨 담은 다음 원두를 드리퍼에 담기 전 물을 부어 헹궈내는 린싱 정도 해 줘야 수고라 할 수 있다. 린싱(헹굼)은 귀찮아서 건너뛰기 좋은 단계인데, 해보면 종이향도 날아가고 예열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난다.
10여 년 전 우연히 핸드 드립 커피의 세계에 손가락 하나 담근 나는 프리랜서가 되고 난 후 거의 매일 아침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던 직장인 시절엔 모닝커피는커녕 모닝 냉수 한 잔 마시기도 바빴다. 그래도 어쩌다 집에서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날엔 수동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서 마시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유는 단 하나, 원두를 갈 때 나는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하지만 맷돌과 같은 원리의 핸드밀로 원두를 갈면 손목은 아픈데 원두 분쇄도는 일정하지 못해 허망했다. 나는 하리오 핸드밀, 빈 플러스 전동 그라인더 등을 쓰며 그라인더 유목민으로 방황하다가.... 원두를 사러 가서 '핸드드립용으로 갈아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리 슈타이거 전동 그라인더에 정착한 이후로는 원두 분쇄가 즐거워졌다. 드르륵 원두 가는 소리는 잠을 깨우는 알람이 되고, 부엌 가득 번지는 커피 향은 부드럽게 마음을 일으켜 주므로. 나의 손놀림이 유려해지는 건 덤이다.
요즘은 급한 원고 마감이 있는 날만 아니라면 부엌 창가에 서서 아침을 시작한다. 날 위해 핸드드립으로 공들여 커피를 내린다. 얼마 전부터는 저울 위에 드립 서버와 드리퍼를 올려 두고 원두의 그램수도 잰다. 보통 2잔은 마시기에 30그램에 400리터 정도의 물을 붓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핸드 드립으로 내려 마시는 모닝커피란 삶의 태도까지는 아니어도 하루를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키는 리추얼이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대충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랄까. 그러다 보면 하루를 대하는 태도도 명쾌해진다.
1. (마치 스타벅스 리저브 바의 바텐더가 손님을 대하듯) 나를 소중히 대할 것.
2. 모닝커피처럼 소소한 순간도 천천히 음미할 것.
3. 누가 뭐래도 내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첫 모닝커피 한잔은 주로 소파에 앉아 마신다. 나처럼 출근하지 않는 프리랜서 남편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수다를 피우기도 한다. 남편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정성껏 내려주는 날엔, 커피 테이블 위에 쌓아 둔 책 중 오늘 읽을 책을 집어 들기도 한다.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30분이라도 읽으면 마음도 예열이 되어 글 쓰기 좋은 상태가 되곤 한다.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기 좋은 마음의 상태라기보다는 얼른 글을 쓰고 싶다는 모드로 전환된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자 이제, 마침표를 찍고 두 번째 모닝커피를 내리러 부엌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