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전 샤워는 남들이 볼 때 하기로 해요
수친(수영 친구)가 보내준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원주의 한 수영장 샤워실에서 60대 A 씨가 40대 B 씨가 샤워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으로 B씨의 어깨를 여러 번 밀치고, 수영모와 수영복 어깨끈을 잡아당겼다. 수영복 어깨끈을 세게 잡아당겨 수영복이 찢어졌다고.
기사를 읽은 후 처음 든 생각은 '수영복이 그렇게 쉽게 찢어지는 옷인가?'였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오죽하면'이었다. 오죽 불쾌했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까 하는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쩌면 A 씨가 B 씨가 샤워를 안 하고 수영장에 들어간 걸 목격한 게 처음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수영장에 한 명이라도 씻지 않고 들어가면 수질이 바로 오염되는데, A 씨가 몇 번을 지켜보다가 참지 못해 화를 냈을 수도 있잖아. B 씨가 매번 A 씨의 말을 무시하고 샤워를 하지 않았다면 화가 났을 거야. A 씨가 참다 참다 수영복을 잡아당긴 거지. 며칠 전에 나도 머리에 물이 하나도 묻지 않은 채 수모를 쓰는 20대 여성 회원을 보고 한 마디 하고 싶어 입이 달싹거렸잖아. 과몰입해 챗GPT급으로 혼자 시나리오를 마구 쓰다 멈칫했다. 아차, 나도 제대로 씻고 들어가라고 60대로 보이는 분에게 한 소리 들은 적이 있었지.
불현듯 재작년 봄, 수영 강습을 받으러 왔을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샤워는 해야겠는데, 수영장 문화를 몰랐던 나는 집에서 샤워를 한 후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옷을 입은 채 수영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수영장에 갈 때 객실에서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은 후 그 위에 가운을 입고 내려가니 집에서도 수영장에 갈 때 이렇게 가면 되겠다 싶었다.
착각이었다. 수영장에선 다들 탈의실에서 옷을 훌훌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나만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어떻게 입은(집에서 샤워 후 물기를 닦고 난 후 낑낑대며 입은) 수영복인데, 탈의실에서 벗기는 번거로웠다. 혼자 수영복을 입은 채 샤워실에 들어섰다. 비록 수영복 차림이지만 물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며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샤워기 물을 트는데, 누군가 내 등을 툭툭 쳤다.
"(큰 목소리로) 처음 왔어요?"
"(작은 목소리로) 네."
"(근엄한 목소리로) 처음이라 모르나 본데, 샤워하고 수영복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거예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네... 죄송해요. 몰랐어요."
집에서 샤워를 하고 왔다고 얘기할까 생각했지만, 샤워실 벽에는 '깨끗한 수질 유지를 위해 샤워한 후 수영장에 들어가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순간, 수영장에 처음 온 몰상식한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수영복을 벗고 바디워시를 꺼내 몸을 씻고, 집에서 감고 온 머리를 다시 감았다. 벗은 수영복도 비누칠을 해서 빨았다. 다시 수영복을 입으며 안내문을 보는데, 코로나19 시국이라 그런지 수영장에서 양치질을 하지 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샤워를 하라고 얘기해 준 분이 활기차게 양치질을 하는 모습도.
결국 그날 나는 샤워실에서 다시 씻느라 수업에 늦게 들어가고 말았다. 억울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집에서 수영장까지 진공상태 아니, 밀봉상태로 온 것은 아니니까.
다음 날부터는 집에서 나올 때 양치질만 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고, 바디 워시로 몸을 씻은 후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다시 수영장에서 샤워를 제대로 하지 않은 B 씨를 폭행한 A 씨의 기사로 돌아가보자. B 씨는 공공장소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았고, A 씨는 법을 어겼다. 그 결과 A 씨는 폭행기소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B 씨가 여전히 제대로 씻지 않고 수영장에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수영장에서 습관적으로 샤워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A씨가 B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혹시, 집에서 샤워를 하고 왔어요? 그래도 수영장 이용 규칙이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거니까 다시 씻고 들어가면 좋겠어요. 다들 씻고 있잖아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도 수영장에 샤워를 하지 않고 들어가면 어때 라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목욕탕에 가면 옷을 벗고 샤워를 한 후 탕에 들어가는게 당연하죠? 수영장에 가면 옷을 벗고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목욕탕 물을 먹을 확률보다 수영장 물을 먹을 확률이 높거든요. 아, 나는 수영을 잘해서 수영장 물 따위 먹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머리를 감지도 않고 머리를 담근 물과, 누군가 화장실에 다녀와 씻지도 않은 몸을 담근 물이 당신의 귀나 코로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세요. 끔찍하지 않나요.
아침에 두 번 샤워하면(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수영장에서 나와서) 잠도 잘 깨고 얼마나 보송보송한 지 몰라요. 저는 그 맛에 새벽수영을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