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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C Apr 13. 2020

말하고 나니 훈계처럼 들리는 위로

<그리움 열아홉> 

- 따스한 온기로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는 곳이 있다분명 있다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찾아야 한다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그곳을 향한 그리움이 힘든 오늘을 견디게 만든다     

   


굽이굽이 달려온 강물이 품 넓은 바다를 만나 마침내 긴 안식에 들고, 

기수(汽水)의 넘치는 양분을 취한 갯것들은 펄떡거리며 힘찬 숨을 토하네. 

그 찬란한 생명의 공간에 기댄 사람들은 고단하지만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수만 리 날개를 저어온 철새들은 갈대숲에서 봄을 기약하며 향수를 달래네.

혹한에도 생명의 시계가 결코 멈추는 법 없는 바로 여기, 순천만.      


    순천만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나는 순천만에만 가면 방전된 마음이 거짓말처럼 완충이 된다. 이곳에서는 다들 나 같으면 좋으련만. 지독히 쓸쓸해 보이는 한 남자를 보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터덜터덜 방죽 위를 걷고 있었다. 손에는 커다란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걷는 내내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시선이 내내 발끝에 닿아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하늘도, 바람에 부대끼며 노래하는 갈대도, 군무를 위해 슬슬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도 관심이 없었다. 무언가에 크게 상심했음이 분명했다. 위로해 주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가볍게 살랑 부는 바람조차도

무겁게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바이칼호에서부터 먼 길을 날아오느라 

깃털마저 쇠어 버린 저 처량한 것들도 

보란 듯이 씩씩하게 살잖아요.”      


    진심으로 기운을 주고 싶었지만, 안 하길 잘했다. 문득, 위로가 아니라 훈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슬픔이나 아픔에 대해 잘 아는 척 말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이며 자기과시에 불과할 뿐이다. 겪을 만큼 겪어봤고 알 만큼 안다고? 그러나 완전히 일치하는 상황이란 게 있던가? 조언자 역시 당사자가 당연히 아니고. 안타깝지만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저 속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이곳의 기운으로 위안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제발 그러기를.          






#위로 #훈계 #바이칼호 #안식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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