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 둘레길 1코스인 함께 가는 길을 같이 걸었던 엄마가 얼마 전 감기 몸살로 인해 고생 중이셨다. 엄마와 같이 걸으려 했던 일정은 잠시 미뤄두고 엄마가 아프신 틈을 타 혼자 걸어보고자 나 홀로 길을 나섰다.
2코스 향기 가득 길의 시작점은 장수동 인천대공원에 있는 800년 된 어마어마한 은행나무부터였다. 1코스인 함께 가는 길을 걸을 때처럼 인천지하철 2호선을 타고 인천대공원역에서 내려 은행나무까지 걸었다. 엄마와 걸었을 때만 해도 나뭇잎이 풍성하게 있던 인천대공원 남문 근처는 단 몇 주 사이에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었다. 하긴 하루 만에도 단 몇 시간 만에라도 바람 한번 불면 힘없이 떨어져 버리는 나뭇잎들이 몇 주 사이에 앙상해질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엄마와 걸었을 때를 생각하며 은행나무를 나 홀로 찾아갔다. 그때는 은행나무가 약간 설익은 느낌이었던지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금쯤이면 샛노랗게 물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행나무 지점에 딱 도착을 했는데 과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사람이 바글바글 했었다. 평일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면 주말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너도나도 은행나무 아래에서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했었는데 혼자 도착했던 나는 찍어주는 이가 없어 은행나무를 눈에 담고 쓸쓸히 돌아서야 했었다. 이제 2코스 향기 가득 길, 진짜 시작이었다.
은행나무를 지나 남동 둘레길 안내 표식을 따라서 길을 걸었다. 안내표식을 찾으면서 길을 걸으니 마치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듯 뿌듯했고, 내가 헤매지 않고 제대로 길을 걷고 있구나 안심할 수 있어 좋았다. 1코스와 똑같이 은행나무에서 인천대공원을 걷는 길이지만 1코스는 인천대공원 정문 쪽을 통해 수현 마을 만수산으로 이어지는 코스와 달리 2코스는 상아산, 관모산으로 가야 했다. 계단을 필두로 등산길이 시작되었다.
상아산부터였는데 인천대공원을 어렸을 적부터 많이 왔다 갔다 했었지만 상아산은 이번 둘레길을 걸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동안 인천대공원을 많이 왔다 갔다 했었을지라도 매번 가게 되는 익숙한 코스로만 다녔어서 그랬던 것 같다. 처음에 은행나무를 몰랐어서 엄마에게 한소리 들었던 것처럼. 상아산 올라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중간중간 계단도 있었고, 비교적 완만했었다. 가을에 산을 오르는 건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 구경에 넋을 잃어 본분인 걸어야 한다는 걸 망각할 때가 종종 왔었다. 얼마 안 가서 비석으로 귀엽게 정상 인증석이 보였다. 저런 표식을 보면 어찌나 뿌듯하고 반가운지. 상아산을 지나 둘레길 안내 표지를 따라서 관모산으로 향했다.
관모산은 어렸을 적에 많이 들어봤었고, 소풍이나 가족들과 함께 몇 번 오르내렸던 적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이었다. 상아산에서 이어지는 등산로 역시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비교적 완만했고, 상아산에 비해 관모산 쪽 등산로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보였다. 관모산 정상을 도착해서 가볍게 인천대공원 전망을 조망한 후 코스 중 2코스가 제일 길어 갈길이 바빴던 나는 서둘러 출발했다. 산은 동네 뒷산이건 엄청난 해발고도를 자랑하는 산이건 똑같은 산이다. 동네 뒷산이라고 얕보면서 내려오다가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특히 더 긴장하게 된다. 산은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므로.
중간중간 안내 표식을 따라 무사히 관모산까지 통과 후 출렁다리를 지나 장수천 쪽으로 향했다. 장수천 가는 길에도 억새밭을 지나게 되었는데 이쪽으로는 잘 안 오다 보니 이렇게나 멋있는 억새밭이 있는 줄 처음 알았었다. 정말 둘레길을 걸으며 속속들이 인천대공원에 대해 살펴보니 예전부터 많이 놀러 다녔던 익숙한 장소이긴 했지만 참 공원을 수박 겉핥기처럼 다녔구나 를 새삼 느꼈었다. 이런 보물 같은 장소를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남은 코스를 걸으려면 시간이 지체되면 안 됐기에 나중을 기약하고 길을 계속 걸었다.
인천대공원에서 나와 장수천 쪽으로 쭉 걸었다. 다음 포인트인 소래습지생태공원 북문까지는 장수천 길이 쭉 이어진다. 이 장수천 길도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었지 이렇게 실제로 걸어봤던 기억은 까마득했었다. 엄마와 몇 년 전 인천 둘레길이 막 조성되었을 때 둘이 걸어보겠다고 장수천에서 소래습지생태공원 북문을 찾아 걸었는데 찾지 못해 길을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 둘레길, 남동 둘레길 모두 시나 구에서 관리되어 표식도 많아지고 지도도 상세하게 잘 나와있어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 북문을 들어가면 연꽃공원이 나오는데 지금은 연꽃의 계절이 아니었던지라 연꽃이 다 시들어있었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을 지나 표지판과 지도를 따라 장아산 무장애 나눔길 앞에 도착을 했었다. 남동구에는 3개의 무장애 나눔길이 있는데 그중 가장 긴 코스를 자랑하는 만수산 무장애 나눔길을 이미 많이 왔다 갔다 했었던 나는 장아산 무장애 나눔길 같은 경우 걷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렇게 혼자 2코스를 무사히 걸었다.
코스 중간중간에 산이 있었던 2코스. 지난번 1코스를 걸을 때 이제는 도저히 힘들어서 산은 더 이상 못 걸으시겠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2코스를 걸어보니 낮은 산이어도 산이 있어서 과연 엄마가 나중에 걸으실 수 있을까, 힘드시진 않을까 싶었다. 2코스 향기 가득 길을 걸으며 좋아하는 등산도 하고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도 보며 알고 있던 장소의 새로운 면도 알게 되었고, 몰랐던 장소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길 이름인 향기 가득 길을 걸으며 걷는 내내 가을 향기를 물씬 느끼고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