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코끼리

by 방구석여행자

오늘은 그림책을 읽고, 인상 깊은 장면을 그려보는 날이었다. 원래는 다른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 눈에 띄었던 그림책은 바로 철사코끼리.


그림책 지인이 얼마 전 이 책을 작가이름을 보고 픽했다고 하며 슬픈 이별이야기라고 넌지시 언질을 해줬었는데 이전에도 스쳐 지나가듯 들어본 적이 있었던지라 이 책이 더 반가웠다. 역시나 작가 이름을 보니 지인이 왜 이 책을 픽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읽고 인상 깊은 장면을 그려보고, 필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주인공 데헷에게는 얌얌이라는 코끼리가 있었다. 둘은 항상 돌산을 함께 넘어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코끼리 얌얌이 죽었다. 데헷은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얌얌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같았다. 얌얌이 그리워서 철사로 얌얌을 닮은 코끼리를 만들었다. 얌얌이라고 생각하고 철사코끼리와 얌얌이 살아있을 때처럼 함께 돌산을 넘어 다녔다. 철사코끼리와 함께 다니자 사람들이 데헷을 피했다. 그리고 그동안은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철사코끼리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어느 날 듣게 됐다. 하루는 철사코끼리를 녹이기 위해 용광로에 밀어 넣었고, 대장장이 삼촌이 철사코끼리를 녹인 철사의 쇳물로 작은 종을 만들어주었다. 바람이 불어 종소리가 들리게 되면, 그 종소리가 바로 얌얌이라고 생각하며 그리움을 해소했다.


이 책의 한 문장인 “몇 날이 지나도 그 마음이 그대로였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이 문장을 통해 데헷이 코끼리 얌얌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했는지 그 정도의 크기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보통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흐르면 사랑의 크기와 그리움의 크기가 줄어들곤 하는데 몇 날이 지나도 그 마음이 그대로라고 했으니까. 나도 십여 년 전 할아버지와 친구를 잃었다. 그 사랑과 그리움이 시간이 지나도 똑같이 사무치게 그리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살다 보니 소홀해지게 되었다.


데헷이 얌얌을 그리워하다가 얌얌을 닮은 철사코끼리를 만들었던 장면에서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은지에 대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어딜 다니 든 얌얌이라 생각하고 철사코끼리와 함께 다녔던 데헷. 주변에서 뭐라 하던지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헷은 주변에서 하는 철사코끼리의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렸다. 그렇게 안 들렸었는데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뜨인 듯 듣게 되었다. 나는 이 부분을 미치도록 사랑하던 사이에서 콩깍지가 벗겨졌구나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사랑해서 아무것도 안 들리고 함께했었는데 사람들의 안 좋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던 부분이니까. 얌얌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철사코끼리가 갑자기 얌얌과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부분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콩깍지가 벗겨진다 한들, 갑자기 안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결혼한 남녀가 한창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다 시간이 지나 콩깍지가 벗겨졌다고 해서 다 이혼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덜 사랑한다고 갑자기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정이란 게 남아있듯 데헷도 철사코끼리를 용광로에 녹여야겠다고 결심하고 철사코끼리와 함께 돌산을 넘어 용광로에 밀어 넣기까지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데헷의 마음을 대장장이 삼촌이 알아차렸던 것이겠지. 용광로에 녹인 철사코끼리의 쇳물로 작은 종을 만들어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들리게 했다. 종이 울리면 데헷이 얌얌을 끝까지 그리워할 수 있도록.


이 그림책 자체가 나에겐 데헷의 삼촌이 만들어준 작은 종과 같았다. 이 책을 읽고 인상 깊은 장면을 그리고 문장을 쓰면서 잠시 살면서 잊고 있었던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찾을 수 있었던,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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