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폭설이 내렸다. 아마 올겨울 역대급으로 내렸던 것 같았다. 나무와 산, 길거리에 소복소복 눈이 쌓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많은 양의 눈을 만날 줄이야. 그래서 그런지 쌓였던 눈은 예상치 못했기에 놀라웠고, 예뻤다. 물론 지금은 다 녹고, 제설작업도 이뤄져 눈이 많이 왔었나? 싶을 정도로 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겨울의 끝자락에서 눈을 만나니 갑자기 생각난 그림책이 있었다. 바로 안녕달 작가의 <눈아이>였다. 눈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그려낸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여있었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눈사람에게 말을 걸었고, 눈사람은 답을 해주었다. 둘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손을 맞잡고 눈길을 걸으려는데, 눈사람의 손이 녹아내렸다. 그런 눈사람의 손을 녹지 말라고 장갑을 끼워주었다. 둘은 다시 눈길을 걸었다. 눈길을 걷는데 따뜻한 햇살에 눈사람은 점점 녹아내려 가고 있었다. 엄청나게 컸던 눈사람이 엄청나게 작아졌다. 그리고 눈이 녹으면 더러워지듯이 눈사람도 점점 더러워지고 있었다.
“내가 더러워져도 우린 친구야?”
“응........”
눈사람과의 우정이 참 아름다웠다. 숨바꼭질을 했다. 눈사람이 녹아 없어지는 과정을 숨바꼭질로 표현했던 것에서 동심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되었다. 눈이 내렸고, 할아버지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다. 꼭꼭 숨어있었던 눈사람을 다시 찾았다.
겨울의 끝자락에 눈이 많이 내렸었다. 눈이 많이 내린 설경을 보고 가장 먼저 이 책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던 그림책. 그림모임이 있던 날, 아들이 유치원 방학을 했다. 그림모임은 너무 가고 싶고, 아들을 혼자 둘 순 없어 아들을 데리고 갔다. 낯가림이 심한 아들을 데려가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역시나 그림모임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떼를 썼던 아들.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자꾸 노출시켜 주기 위해 아들을 겨우겨우 데리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기다려주니 자연스레 울음을 그치고 공간도 탐색하고 웃어 보이기도 하고 종이에 끄적이기도 하고 왔던 아들이었다.
아들을 신경 쓰느라 정신없을 것 같은 내가 들고 갔던 그림책은 <눈아이>였다. 원래는 그림모임에서 나의 기억하고 싶은 일상을 그려냈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책필사를 했다. <눈아이>를 보면서 소년과 눈사람의 우정이 장면마다 드리워져 모든 장면이 다 좋지만, 특히나 나는 눈사람이 녹아내리면서 소년에게 자신이 더러워져도 친구냐고 묻는 장면이 가장 뭉클하다고 해야 할까? 소년과 눈사람을 보는데 육아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엄마로서 나와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가 만약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날 사랑해 줄 거야?”라고 물어본다면?을 상상했다. 그래서 진짜 사랑하면, 진짜 좋아하면 더럽던 깨끗하던 무조건 좋은 거라는 걸 눈사람에게 달려가서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말을 해주기 전에 소년의 짧고도 묵직한 “응”이라는 대답에서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기에 눈사람도 눈물을 흘렸던 거겠지.
이 책을 보고 난 이후로는 눈이 녹아 더러워지는 길을 보면 마냥 더럽게만 보이지 않는다. 눈사람이 녹아내려가는 과정에서 눈물을 보이며 소년에게 했던 질문인 “더러워져도 우린 친구야?”라는 질문과 눈사람의 눈물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린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어 그림을 그렸지만, 이번에 보고 확 와닿았던 장면이 있었다. 숨바꼭질을 빌미로 녹아내려 사라져 버렸던 눈사람.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계절의 변화를 겪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내렸다. 눈이 소복소복 쌓였고 소년은 할아버지와 눈사람을 다시 만들었다. 눈사람을 찾은 이 장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설이 온 후 빠르게 이뤄진 제설작업 탓에 지금은 눈이 언제 왔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녹아내렸고, 흔적도 없어졌지만 겨울의 끝자락에서 눈을 만났고,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었고, 인상 깊은 장면을 표현할 수 있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