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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May 06. 2024

왼손에게

“정말 참을 만큼 참았어.”, “더 이상은 못 참아. 오늘은 기필코 말할 거야.”라는 문장으로 오른손이 왼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그러나 보다 보면 오른손의 입장과 왼손의 입장, 서로의 입장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그림책이었다. 오른손, 왼손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까지 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미를 확장하여 볼 수 있었던 그림책. 이 책을 벌써 최소 3번째 봤는데 그림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는 말이 딱인 듯 이 책도 더 깊이 와닿는다.


사람들은 주로 시계나 반지를 왼손에 많이 한다. 나 또한 시계를 주로 왼손에 차고 있다. 시계나 반지 등 액세서리는 주로 왼손에 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인 것 같다. 우리도 이 그림책에서처럼 매니큐어를 바르다 보면 왼손에는 항상 오른손이 정성스럽게 왼손에 발라주느라 예쁘게 발라지는데 왼손으로 바를 때 떨리는 손으로 바르느라 오른손에는 엉망으로 발라지는 경험 다들 해봤을 것이었다. 기분 나빴던 오른손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왼손에게 터뜨렸다.


그러나 왼손도 왼손 나름의 입장이 있었다.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다 보니 신경전이 오갔다. 둘은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고 결국 오른손은 다치게 되었다. 오른손은 왼손이 미웠고, 왼손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오른손은 오른손이 다쳐서 불편한 사람들의 불평 소리를 들었다. 왼손은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오른손은 왼손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오른손으로 다 하느라 왼손을 잘 사용하지 않아 서툴었던 것. 실은 왼손도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떠한 일이든 손쉽게 해 버리는 오른손이 부러웠을 것이다. 왼손도 오른손에게 이야기한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도 잘하고 싶었어. “ 왼손은 서투르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기 한 마리가 왼손에게 다가왔다. 소리소문 없이 물렸다. 왼손은 한가운데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간지러웠지만 손이 닿지 않아 긁을 수 없었다. 그때 다가 온 오른손. 오른손은 왼손의 빨갛게 부어 오른 부분을 대신 긁어주고, 손톱으로 꾹꾹 눌러주었다. 그때 날아오른 모기 한 마리.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 맞잡고 모기를 잡는 데 성공했다. 오른손과 왼손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화해했다.


우리에게 오른손 사용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 같은 것이었다. 과연 누가 정한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왼손으로 무언가 하려 하면 어르신들이 호통을 치시며 한 말씀하셨다. ”오른손으로 해야지 “ 나는 도무지 이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른손으로 하던지 왼손으로 하던지 무슨 상관이지?‘ 그렇지만 나 또한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이 책이 공감이 되었다. 시계나 액세서리, 예쁘고 좋은 건 왼손에. 궂은일은 오른손이 하게 되었다. 지인이 오른손을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힘들겠다. 왜 하필 오른손이 다쳐서. “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기도 했었다. 나의 이 말을 왼손이 들었다면. 왼손은 상처를 받았겠지.


우리 아들은 요즘 본의 아니게 양손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때는 왼손으로 밥을 먹고, 양치를 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남편은 ”오른손으로 해야지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오른손이던지, 왼손이던지 무슨 상관일까? 하기만 하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지난번 온라인그림책모임에서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왼손 필사에 도전을 했었다. 연필을 처음 집었을 때부터 항상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곤 했었기에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건 처음이었다. 왼손으로 쓴 글씨는 역시나 서툴고 삐뚤빼뚤 했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삐뚤빼뚤 적은 글씨 한 글자, 한 글자에 꾹꾹 진심이 담겨 있는 거라 생각하니 우스꽝스러웠지만 재밌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이 책의 왼손과 오른손이 함께 손을 맞대고 모기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힘을 합하여 어려운 일을 이겨내는 의미로 남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없이 답답하기만 한 것 같은 남편. 그렇지만 또 지금의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손을 맞대고 힘을 합하여 모기를 잡았듯이 우리도 힘을 합하여 아이를 잘 길러보자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남편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육아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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