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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Jun 06. 2024

어떤 토끼

멋진 토끼를 짝사랑했던 어떤 토끼의 이야기. 비록 둘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그 후에 어떤 토끼는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성장 속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었다.


삶이 무료했던 어떤 토끼. 낡고 고장 난 우주선을 고치는

일만 하며 살았던, 다른 흥미 있는 건 없었던 어떤 토끼였다.

그런 어떤 토끼에게 어느 날 멋진 토끼가 찾아왔다. 할머니가 남긴 낡은 라디오를 고칠 수 있냐면서. 멋진 토끼의 라디오를 고쳐주고 난 후에도 계속 멋진 토끼와 마주치게 된 어떤 토끼. 멋진 토끼의 상냥하고 섬세한 모습에 그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어느새 어떤 토끼는 삶 속에서 멋진 토끼밖에 안보였다. 멋진 토끼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떤 토끼가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어느새 어떤 토끼는 우주선이 보내는 신호는 뒷전이었고, 멋진 토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고 싶으면 사랑에 빠진 거라던데. 이렇게 어떤 토끼는 멋진 토끼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 예쁜 모자, 치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마치 우리 사람들 또한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자신을 가꾸듯이 말이다.


그런데 멋지고 인기 많은 멋진 토끼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토끼는 자신의 모습이 작고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친구도 없었고, 오로지 일만 했었기에. 우리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의 멋진 모습이 부각되면 상대적으로 내가 작고 초라해져 보이며 비교되듯이 말이다.


드디어 용기 내어 멋진 토끼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던 어떤 토끼.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미지근했다. 용기를 냈지만 거절당하고 만 어떤 토끼. 어떤 토끼의 그 용기가 참 멋있었다. 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좋아하는 감정을 그대로 상대에게 말했던 모습. 나도 예전에 이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어떤 토끼의 마음이 무슨 마음인지 너무나 잘 알았었다. 또한 헷갈리게 왜 어떤 토끼에게 잘해준 거야 하고 멋진 토끼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어떤 토끼의 삶에 멋진 토끼가 떠났다. 어떤 토끼는 다시 무료했던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찌 보면 슬픔으로 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실연의 상처를 안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던 어떤 토끼는 미세하게 들린 낡은 우주선이 보내는 신호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들은 자신에게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 어떤 토끼. 실연의 아픔을 일로 승화시킨 어떤 토끼는 어떻게 보면 멋진 토끼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삶을 다시 찾게 되었다. 분명 멋진 토끼를 만나기 전의 어떤 토끼와는 다르게 성장한 모습이었다.


나 또한 어떤 토끼와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보기만 해도 선망의 대상인 멋진 토끼가 있었다. 그와는 우연히 말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인기가 많았고, 덩치도 있었고, 키도 훤칠했고, 참 유머러스했던 사람이었다. 말이 잘 통하고, 관심사도 비슷했고 재밌어서 연락도 했고 자주  만나기도 했었다.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 또한 어떤 토끼처럼 나 자신을 가꾸기도 했었다. 내 감정을 참지 못했던 나는 어떤 토끼처럼 어느 날 그에게 고백을 했었다.


“좋아해요”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가 나를 헷갈리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그는 나를 헷갈리게 했던 적이 없었다. 내게 거절의 신호를 보냈었지만 내가 그 신호를 못 받았던 것이었다. 그는 내게 먼저 연락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항상 내가 먼저 연락했었다.


이후에 나는 한동안 그를 잊기 위해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야 했었다.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해 보면 그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성장해 있었다. 어떤 토끼처럼 말이었다. 비록 짝사랑했던 멋진 토끼는 가버렸지만, 이를 통해 나 자신과 일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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