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여행자 Jun 08. 2024

울타리너머

이 책은 얼마 전 온라인 그림책모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던 <오리건의여행> 그림책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추천을 받아 빌려보게 되었다. 울타리너머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넓은 들판을 표현하듯 책의 판형이 다른 일반 그림책에 비해 가로로 긴 특징이 있었고, 글밥이 많지 않아 금방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글보다는 그림으로 많이 표현해주고 싶었던 그림책이었던 것 같다.


소소는 안다의 큰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소소는 안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안다가 어울리는 옷도 잘 알아서 입혀주고, 안다가 뭘 하면서 놀면 좋을지도 알고 있었다. 안다는 소소에게 필요한 게 뭐든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소소의 표정은 하나도 즐겁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안다의 사촌이 집에 놀러 왔다. 안다가 사촌과 노는 동안 소소는 집을 빠져나와 산책을 즐겼다. 그때 소소는 산들이를 만났다. 산들이는 옷을 입고 있던 소소에게 물었다.


“너는 왜 옷을 입고 있어? 달릴 때  불편하지 않아? “

”난 달리지 않아. “

”세상에, 달리는 게 얼마나 신나는데! 함께 달려볼래? “

”그러고 싶지만 난 돌아가야 해. 나중에 다시 보자! “


어딘지 모르게 산책을 나갔을 때 소소는 옅은 미소를 띠는 것 같더니 산들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소소는 설레고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쉽게 발걸음을 다시 돌린 소소는 그 이후로 매일 창밖의 울타리너머를 바라보게 되었다. 소소는 또다시 산들이를 만났던 곳으로 산책을 나갔지만 산들이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저녁 덫에 빠져나오느라 늦었다는 산들이를 만났다.


“우리 함께 달려볼까?”

“난 울타리너머로는 갈 수 없어”

“그래?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얘기나 하러 다시 올게. 내일 해 질 녘에”

“좋아”


다음날 아침 안다의 놀러 왔던 사촌이 돌아갔고, 안다는 다시 소소와 함께 놀려하기 시작했다. 소소는 산책했을 때의 좋았던 기억을 블록으로 만들었는데 안다는 그걸 다 망가뜨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소소를 조종하려 했다. 소소의 표정은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해 질 녘이 지났고, 소소는 밤늦게까지 안다의 옆에서 안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몸은 안다의 옆에 있었지만, 소소의 마음은 바깥 울타리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날 해 질 녘이 되었고, 여느 때와 다르게 안다와 놀이를 하고 있던 소소.


“잠깐만”


뭔가를 결심했듯 자신에게 맞지 않았던 옷을 벗어던지고, 사람처럼 두 발로 걷던 소소는 계단을 내려와 풀밭에 이르자 네발로 걷기 시작했다. 원래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처럼, 마치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산들이와 만난 소소는 울타리를 너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책 내용을 펼치기 전 앞면지와 뒷면 지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앞면 지는 혼자 언덕에 앉아 어딘가를 응시하며 슬퍼 보이는 소소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뒷면 지를 넘겨보면 산들이를 만나 들판을 누비며 마침내 자유를 찾은 듯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자 자유롭고 홀가분해진 소소였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라 그런지 소소의 의견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안다의 모습에서 아이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쥐락펴락 하려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다 알고, 뭘 잘하는지 다 알고, 무슨 옷을 입어야 어울리는지 잘 안다는 엄마들. 진짜로 다 알고 있는 걸까? 이런 엄마들 때문에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들이 생긴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이들도 말은 잘 못하더라도 각자가 좋아하는 게 있고, 각자가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결국 울타리너머 자유롭게 들판을 달리게 된 소소처럼 아이들도 각자가 하고 싶은 놀이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을 때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토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