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참을 만큼 참았어”
오른손의 왼손을 향한 분노, 적개심, 울분이 표현된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난 오른손이 힘들어서 왼손에게 본인의 투정을 부리는 그림책인 줄만 알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다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단순히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점점 그림책을 보다 보니 나 또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이 책에 나오는 오른손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가위질, 양치질, 숟가락질, 빗질까지 전부 다 오른손의 몫이었다. 자신만 궂은일을 하는 것 같아 오른손은 억울했다. 왼손은 얌체같이 핸드크림 바를 때만 쓰윽하고 슬쩍 다가왔다. 핸드크림을 잡고 있는 것 역시 오른손의 몫이었다. 왜 오른손만 이렇게 궂은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일까? 왼손이나 오른손이나 다를 바가 없는 똑같은 손인데.
그리고 이 책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오른손은 왼손에게 정성스럽게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곧 반짝거리게 될 자신의 손을 상상하면서. 오른손이 왼손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준 후 이제 발라달라고 왼손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을 때 왼손은 부들부들 떨며 오른손에게 다가가 발라주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른손은 화가 나서 왼손에게 따져 물었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아니야, 나도 열심히 노력했어.”
“열심히 노력했다고? 근데 결과가 이래?”
“항상 네가 먼저 다 해버렸잖아”
“네가 바보같이 못하니까 그렇지”
“뭐? 바보?”
왼손과 오른손은 결국 주먹다짐을 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꼭 “험악해지더니” 이 부분에서 한 어절씩 떼어서 써서 더 험악한 분위기를 강조한 것 같았다. 그렇게 둘은 결국 사고가 나고 말았다. 오른손이 다친 것이었다. 오른손은 왼손이 미웠다. 자신을 다치게 했던 왼손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왼손이.
그런데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휴 오른손을 다쳤네, 왜 하필 오른손이야, 왼손이 아니고.”
왼손은 다친 오른손을 대신해서 서툴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오른손처럼 단 한순간에 잘할 순 없었다. 왼손이 노력하는 모습을 본 오른손은 마음이 짠했다. 왼손의 위로 모기 한 마리가 앉았다. 모기를 잡을 수 없었다. 잡지 못하니 그대로 물릴 수밖에. 빨갛게 부어오른 왼손이었다. 긁을 수 없었다. 손이 닿지 않았다. 그때 모기가 물려 간지러운 부분을 벅벅 긁어주었던 건 다름 아닌 오른손이었다. 꾹꾹 십자모양으로 눌러준 것도 오른손이었다. 또다시 윙 하고 모기가 날아왔다. 그때 둘은 서로 마주 봤다. 그리고 탁 하고 손을 맞잡았다. 둘은 그렇게 오해가 풀렸다. 왼손은 오른손에게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른손이 왼손에게 말을 할 차례였다. 어디에 말한 거지? 뭐라고 말한 거지? 하고 찾아본 순간에 뒤표지에 손하트는 참 인상적이었다.
관계에 대해 오른손과 왼손을 빗대어 유쾌하게 표현해 낸 그림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남편과 싸우게 되고,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가 나려고 할 때마다 꺼내 보고 싶어 구매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오른손처럼 나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떨 때 남편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과연 저게 저 사람의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처럼 어느 날 내가 부족한 부분, 어려워하는 부분에 남편은 어느 순간 나타나서 그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결국 오른손과 왼손은 소통의 부재였다.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왼손과 오른손. 서로의 입장에 대해 처음 이야기 하고,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둘은 그제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우리 부부. 결혼하고 신혼이란 시간이 없이 거의 바로 아이가 생긴 바람에 우리 부부도 대화할 시간이 많이 없다는 핑계로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었다. 이야기하면 싸우니까, 이야기하지 않고 참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고 참았었다. 그렇게 서로 곪고 곪았던 우리. 그러다가 얼마 전 서로의 입장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었고, 대화의 부족으로 인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얼마나 몰랐는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오해를 했었고, 현재 서로의 마음은 어떠한지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대화와 소통이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체감하게 되었다. 서로 참지 않고, 속마음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우리는 지금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내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이 내용이 아니었을까?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자신이 잘하는 게 있을 때는 본인이 오른손이고 나를 왼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누구든지 뭐든 잘 해내는 오른손이 될 수도 있고, 조금은 서툴지만 매사 열심히 임하는 왼손이 될 수도 있다. 책을 보면서 입장은 중요치 않고, 그 관계에 주목했으면 한다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그림책은 매니큐어를 바를 때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에서 오른손을 바를 때 힘들어하는 모습이라던지 모기 물렸을 때 십자모양으로 손톱을 꾹꾹 누르는 모습 등 실생활에서의 공감 가는 내용들이 참 많아 이 책을 볼 때 더 편안하고 친숙했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