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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ug 22. 2024

연남천풀다발

이 책은 식물을 탐방하며 녹여낸 우리들의 인생이야기였다. 작가가 식물에 관심이 많고 식물을 좋아하는 것 같은 게 책 속에 보였다.


이 책은 작가가 서울 연남동에 살면서 매일 홍제천을 산책하며 본 꽃과 풀들을 보고 그린 식물 그림책이다. 실제로는 홍제천을 산책했지만 작가가 사는 곳이 연남동이기에 책 제목을 연남천 풀다발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식물을 우리네 인생, 삶에 빗대어 쓴 주옥같은 문장들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속 깊이 문장들을 간직하고 싶었던, 필사하고 싶었던 그런 그림책이었다.

이 책에 그려진 식물들은 책 뒤에 보면 어떤 식물인지, 어느철에 볼 수 있는 식물인지 언제쯤 발견한 식물인지 나와 있어 책을 보는데 많은 참고가 되었다. 또한 내가 모르는 식물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식물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작가가 가을에 산책을 시작하고 쓴 그림책인지 첫 페이지에서 모든 것은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특히나 앙상한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것들이 첫서리를 맞이해 반짝이는 구슬처럼 빛이 났다는 좀작살나무는 나의 요즘 삶을 대변했다.


지금 절망 끝에 있다고 여겼던 나의 삶. 언제쯤 좀작살나무의 반짝이는 구슬처럼 내게 구슬은 언제쯤 빛이 날까? 빛이 나긴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희망이 나타나지 않았던 나와 우리 아이의 삶에 요즘 반짝반짝 빛이 생겨났다. 처음에 아이의 발달지연 소식을 들었을 땐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주어진 건지,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신건지 하늘에 원망도 했었다. 그런데 세상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도, 작은 열매의 생김새에도 이유가 있다는 당장은 시리고 혹독하지만 지나고 보면 소중한 겨울이라는 이 책의 남천나무 말처럼 살다 보니 이렇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동네의 친한 언니 한 명이 말해줬다. 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너희 아이는 지금 아무래도 너와 계속 같이 있고 싶어서 널 붙잡아두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우스갯소리로 했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보다 일이 먼저였던, 내 삶이 먼저였던 나는 아이가 내게 보내는 신호를 들었다.


 ”날 좀 봐줘 엄마“


라고 아이가 소리치는 것 같았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아이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될지 모르겠고, 아이와 소통할 수 있을지 끝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점차 주변의 힌트를 보고 들었다. 아이와 함께 노력을 했다. ‘언제 성장할까? 성장하긴 하는 걸까?’라고 긴가민가 했었다. 그랬던 아이가 나의 이런 노력이 닿았는지 서서히 성장해 가더니 이제 나와 조금씩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겹게 입을 떼고 있는 건지 알기에 아이가 내는 소리 한마디 한마디가 더더욱 내게는 소중하다.


“이곳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꽃을 보면서 나도 힘을 내야지. 좁고 오염된 땅에 깊이 박힌 뿌리를 보면서 투정 부리지 말고 지내야지. ”라고 책에서 말하는 염주 괴불주머니, 노란 코스모스처럼 나는 내 삶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와 조금이라도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지금 내 삶에 불평불만을 갖지 않고, 힘내고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느꼈다.


“어떤 풀은 뾰족하고 어떤 풀은 둥글둥글하다. 둥근 풀은 뾰족한 풀이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이 태어난 환경이 있고, 각자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법이었다. 굳이 다른 사람의 삶이 멋있어 보인다고 따라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멋진 삶이었다.


그렇게 계절은 계속 반복이 되고,  우리는 계속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책에서처럼 그 일상이 항상 다 같은 건 아니었다. 나 또한 요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 말을 하지 못했던 우리 아이. 그런 아이의 말이 트이게 하기 위해 2달 정도 밤마다 똑같은 그림책을 읽어줬었다. 똑같은 그림책을 매일같이 반복해서 읽어줬다지만 매 순간 나도 똑같이 읽진 않았을 거고 아이 또한 매 순간 똑같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처음에 그림책을 읽어주었을 땐 돌아다니면서 집중하지 못했었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려주라고 했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가 듣든 말든 무작정 읽어주었다. 그러자 어느 날은 내 옆에 와서 침대에 누워서 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 앉아서 듣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책의 문장을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상황에 맞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시간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면 안 되는 이유였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 또한 요즘은 더워서 못하고 있지만 날씨가 선선한 봄가을에는 우리 동네에 있는 천으로 산책을 자주 나가곤 한다. 산책하면서 본 식물을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그리고 그 발견한 식물에 대해 생각나는 느낌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었다. 사계절 내내 한 곳을 산책하며 본 식물들을 그리고 소감을 느낌으로 표현한 것. 그걸 또 책으로 엮어낸 것. 꾸준함은 위대함을 보여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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