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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ug 28. 2024

남극으로 가는 지하철

이 책은 아주 특별한 그림책이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김성찬은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이다. 그림에 오래전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이를 눈여겨본 복지관 미술 선생님과 글작가님 셋이서 함께 힘을 합쳐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하철을 좋아한다는 성찬이가 얼마나 지하철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많이, 자주 타고 다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하철과 노선도의 그림이 세밀하게 잘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였다.


나 또한 대중교통수단 중에 지하철을 가장 좋아한다. 성찬이의 말대로 시간을 잘 지키고,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또한 덜컹 거리지도 않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보충하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즐길 수도 있다. 우리 아이 또한 주로 자동차로 이동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지만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버스는 많이 낯설어하고 무서워해서 종종 울기도 하는 반면 지하철은 처음 탔을 때부터 신기해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보면서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재밌어했었던 좋은 경험이 있었다.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을까? 버스는 덜컹거리고 했던 게 싫었던 걸까?


성찬이의 자동차가 되어준 지하철. 지하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지하철을 좋아하는 성찬이는 지하철을 자주 타고 다녔다. 지하철은 시간 약속을 참 잘 지키고 길고 빨라 다른 사람들을 많이 태울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여행을 하려 하는 성찬이. 길을 몰라도 걱정이 없었다. 지하철은 항상 노선대로 움직였으니까. 성찬이는 목적지를 생각해 봤다. 지구본을 돌려보았다. 성찬이가 발견한 곳은 바로 성찬이와 같이 지구본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가장 밑에 하얀 땅인 남극으로 떠나기로 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남극행 표를 샀다. 남극행 열차는 자주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오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남극행 열차가 도착을 했다.


성찬이는 길고 긴 지하철 여행을 하면서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바깥의 풍경을 보면 됐으니까 말이었다. 마치 지하철을 타면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바깥 구경을 하는 우리 아이와 똑같았다. 지루할 틈이 없던 우리 아이. 지하철을 자주 태워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성찬이는 지하철 여행을 하면서 모아이석상을 보러 가기도 하고, 낙타가 있는 사막을 가기도 하고 바닷가를 지나 남극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남극에 도착한 성찬이는 펭귄 친구를 만나 함께 스케이트를 타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아기 펭귄인 펭귄 친구를 찾아온 엄마펭귄을 보자 성찬이도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펭귄 친구를 뒤로하고 성찬이도 성찬이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곁으로 가기로 했다. 펭귄들과 헤어지기 전 펭귄에게 선물로 마음을 건넸다. 지하철은 달려서 성찬이가 출발했던 수유역으로 다시 달려가면서 끝이 났다.


이 책을 보면서 잠시 지하철로 세계일주 하는 상상을 해봤다. 마음만 먹으면 가고 싶은 어디든 가는 지하철이 있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잠깐 나눴었는데 나는 오로라가 너무 보고 싶어 가본 나라들 중 오로라가 있는 가장 가고 싶은 나라인 노르웨이의 트롬쇠라는 지역에서 오로라도 보고, 그곳의 가장 작은 바(Bar)에서 따뜻한 뱅쇼도 먹고 싶다는 상상을 했었다. 상상만 해도 참 즐거운 일이었다. 요즘 지하철을 탈 일이 별로 없었는데 조만간 지하철을 한번 타봐야겠다. 그러고는 전 세계를 누빌 것이다. 성찬이처럼.


그림책모임 선정도서여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 이 책의 그림을 봤을 때 그림체가 참 개성 있고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소개글을 보니 이 책의 그림이 따뜻하고 개성 넘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림작가, 글작가가 따로 있었지만,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과 그림의 조화가 참 잘 어우러졌었다. 성찬이의 엄마가 뒤에 쓴 소개글은 내 마음을 후벼 팠었다.


”성찬이를 키우는 건 크나큰 행복이었다.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세상의 시선이었다. “


아마 나도 비슷한 입장이라 그런 거겠지? 그래서 더욱더 이 책이 좋았다. 나 또한 발달장애의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아이가 있기에,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라는 아픔을 가진 아이들은 그냥 조금 다를 뿐이다. 이 아이들도 보통 아이들과 같이 똑같이 열정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만큼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권리를 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봤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이 책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실현하는 걸 돕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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