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꽃에 빗대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을 처음 알았던 건 다른 그림책들을 사면서 이 그림책의 제목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였다. 제목을 보고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그림책도 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다비드칼리와 모니카바렌고의 조합이라니. 제목과 글, 그림 작가를 보고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비드칼리의 서사와 모니카바렌고의 그림. 모니카바렌고의 그림은 색감이 은은해서 참 좋아한다. 물론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의 모양이라, 사랑은 과연 어떤 모양일까?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어느 날 아침 정원에서 한 꽃을 발견했다. 백색의 무성한 덤불 속에서 핀 꽃은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 그때부터 여자는 종일 그 꽃 생각만 하고, 꽃에 물을 주고 흙도 가꿔주고 정성으로 돌봤다. 밤에도 꽃 생각이 이어졌다. 그랬더니 꽃들은 점점 많이 피었다. 여자는 자신이 꽃을 정성으로 돌봐서 꽃이 많이 피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꽃들은 더 이상 새로 피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는 꽃을 다시 피게 하고 싶어서 더욱더 정성껏 돌보고 가꾸었는데도 있던 꽃들마저 점점 시들어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퍼했다.
‘꽃이 왜 떠나갔지?’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
‘꽃이 너무 보고 싶어’
여자가 꽃을 너무 보고 싶어 하고 꽃이 도대체 왜 시들어서 죽어가는지 힘들어하고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이 널 기쁘게 한다면 그건 네가 무엇을 주어서도, 무엇을 돌려받아서도 아니야. 단지 지금,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
이 문장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슴속에 맴돌았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은 찾아왔고, 여자가 그리워했던 그 꽃들이 봄에 다시 피었다. 그러나 여자의 정원이 아닌 이웃집 정원에. 날마다 꽃은 더 많이 피어났다. 꽃은 여자의 정원에 피지 않았을 뿐. 여자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아쉬워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다. 단지 여자의 정원에 피지 않았던 것일 뿐. 꽃은 여자와 함께였으니까.
이 그림책을 다 보고 나니 떠오르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 있었다. ”존재만으로 아름답다. “
나는 참, 사랑은 무언가를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존재만으로 좋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뱃속에 품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좋을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태어나고 처음 눈을 딱 마주쳤던 순간 정말 딱 ‘무사히 나와줘서 고마워’였다. 그때부터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여자가 꽃에 물을 주고 정성껏 보살피듯이 나도 아이를 정성껏 보살폈다. 처음에는 아이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아이에게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부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아이는 내가 잘해주든지, 못해주든지 그 아이에게 무언가를 바라서도 안되고 그냥 그 아이가 있다는 것만도 좋은 거였으니까. 그게 사랑인 거니까.
요즘 아이가 아파서 짜증이 많이 늘었다. 아이를 이해하고 품어줘야 하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자꾸 참다 참다 한 번씩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물론 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반성하게 된다. 아이는 아파서 그런 건데 같이 짜증을 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다. 그때 이 책을 봤다. 아이는 내가 어떠한 기분이건, 모습이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데 왜 나는 아이에게 욕심이 생기고 바라는 게 생기고, 아이의 기분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아이를 대하는 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돌아보았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었다. 내가 잘해줘서도, 못해줘서도 아니었다. 그냥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었다. 이 여자의 꽃처럼. 나의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