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체가 내 스타일의 그림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다음 그림책모임 선정도서라 꼭 읽어야 해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렵고 복잡해서 내용 이해가 잘 안 됐다. 누가 누군지도 헷갈려서 종이에 적으면서 봐야 하나 심히 고민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보고 또 보다 보니 이름들이 조금씩 친숙해졌다. 로봇들의 이름은 알고 봤더니 다 기계용어였다. 기계와 친하지 않은 나는 그래서 어려웠나 보다.
이 그림책은 로봇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 로봇가족에게 아기로봇이 집 앞에 배달이 된다. 그 로봇의 이름은 바로 플랜지. 이 로봇을 조립해야 아기로봇이 완성이 되는데 이 조립은 엄마의 몫이었다. 딸 로봇이 아기로봇 조립을 위해 자신의 공구를 가져오지만 엄마로봇은 이미 설명서도 읽지 않은 채 조립삼매경에 빠졌다. 나 또한 기계를 조립하거나 무언가를 조립해야 할 때 설명서 같은 걸 읽지 않는다. 이 로봇엄마처럼 나도 내가 가볍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 완성을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지만 여전히 설명서는 뒷전인 내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결국 삼촌로봇을 부른다. 그러나 삼촌로봇도 설명서를 보지 않고 본인 마음대로 조립을 하게 된다. 딸 로봇이 옆에서 계속 삼촌에게 질문을 하지만 삼촌로봇도 막무가내였다. 우여곡절 끝에 삼촌로봇은 설명서대로는 아니지만 조립을 완성했다. 그전에 플랜지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걸 알리는 딸로봇. 그러나 엄마로봇은 업데이트는 나중에 해도 된다며 이를 무시한다. 결국 또 플랜지는 오작동하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플랜지는 딸로봇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조립을 하게 되고 마침내 완성된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오나 했는데 집 앞에 발견된 다른 하나의 택배박스. 플랜지는 쌍둥이로봇이었다는 이야기로 끝나게 된다.
추가증정된 플랜지의 동생(?) 로봇 액슬은 과연 누가 조립을 하게 될까? 여자로봇일까? 남자로봇일까? 궁금증이 이어졌다. 또한 이 책은 줄글이 아닌 말풍선 형식으로 로봇들의 대화로 이루어진 그림책이었다. 말풍선의 대화형식으로 그려져 로봇이라기보다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것 같았다. 요즘 우리 생활 곳곳에서 로봇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만큼 이러한 로봇들의 말풍선을 담은 그림책은 로봇이 우리 곁에 어느 순간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로봇가족들 뿐만 아니라 삼촌에 고모에 사촌에 이웃들까지. 등장만 로봇일 뿐 사람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플랜지가 조립되는 동안 기다렸던 이웃들이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조차요즘엔 볼 수 없기에 정겨웠다. 기계라서 완벽하고, 감정도 없는 로봇들의 허술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 우리와 공존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게 된 그림책이었다. 처음엔 등장로봇들의 이름도 어렵고 내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귀엽고 친근했던 그림책. 모임에서 이 그림책으로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