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느 날 <강아지똥> 동화책으로 유명한 권정생 작가가 청년이었던 시절 만났던 창섭이라는 아이와의 추억과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이다. 한파의 끝자락에서 코끝이 찡해지는 가슴아픔을 느낀 책이었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끼니를 잘 챙겨 먹지 못했던 시절 조그만 예배당에서 글을 쓰며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열여섯 살의 창섭이를 만났다. 창섭이는 비 오는 가을 어느 날 권정생 작가가 글을 쓰고 있는 예배당으로 찾아왔다. 그에게 어눌한 말투로 ”선생님도 내가 싫지? “라고 물었었다. 창섭이는 지체,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다. 창섭이는 계속 밖에서 기다리다가 지겨웠는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글을 쓰는 권정생 작가 옆을 계속 기웃거리던 창섭이. 창섭이는 옷이 다 낡고, 더러웠고, 냄새가 났으며 그 옷 사이로 뱃가죽이 홀쭉했었다. 어눌한 말투로 ”선생님 배고프다 “라고 말하던 창섭이. 열여섯 살이라고 믿기 어렵게 책 속에 그려진 창섭이의 표정은 해맑고 순수했다. 예배당에 뭐가 먹을 게 있으면 좋으련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둘은 함께 누워 배고픔을 잊기 위해 찬송가를 불렀다. 그러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예배가 끝난 후 창섭이가 왔다. 어눌한 말투로 “선생님 배 아프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배고프다는 말은 했었지만 배 아프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던 창섭이. 그런 창섭이에게 옷을 제대로 입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옷을 대충 여며주고 모질게 대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창섭이에게 대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다음 날 창섭이는 죽었다.
창섭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을 때 그에게 필요했던 건 분명 따뜻한 관심과 말 한마디 아니었을까? 권정생 작가가 창섭이에게 그런 존재였을텐데 그런 선생님에게마저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세상을 떠난 건 아니었을까?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관심이자 사랑이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을 무조건 비난하지 못하는 건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 권정생작가였더라면 창섭이에게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의 엄마인 지금의 나라면 창섭이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겠지만 불과 아이를 낳기 전의 나라면?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창섭이를 보면서 중학교 때 자폐증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때 당시에는 학교에 한 학년에 한 명 있을까였던 때라 생소했고, 어렸고, 철이 없던 나는 그 친구가 표정도 없는 것 같고 행동도 과격해서 많이 무서웠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것조차 두려워했었으니까.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자폐증이란 이름은 없어지고,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어 그 수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학교에 한 반에 한 명 꼴로 있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고 하던데 그때 그 친구는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 그 친구를 만난다면 그때 참 미안했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이 책을 보면서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유명한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곁에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건 어떨까? 곁에 없어지고 난 후 ’ 있을 때 좀 더 잘할 걸‘라고 후회하지 않고 말이다.
창섭이에게 너무 이입이 되어 창섭이의 입장을 많이 생각하며 바라보느라 권정생 작가도 힘든 삶을 살았고, 아픈 삶을 살았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보이게 되었다. 오늘 그림책 모임을 하면서 이 책에 대해서 권정생 작가에 대해서 나누게 되었는데 권정생작가의 삶도 많이 기구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참 찡했었다. 그렇게 아프게 글 쓰고, 어린이들을 생각하시는 삶이 왜 그의 작품들이 이렇게 계속 기억되는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