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감정기복이 심해진 아들. 뭔가 자기가 느끼기에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울어버린다. 한번 울음버튼이 눌리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운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들을 보면서 왜 우는 건지 빨리 이유를 이야기하라고 다그치는 나를 보면서 갑자기 이 그림책이 생각이 났다.
이 책의 주인공 테일러는 블록으로 멋진 성을 만들며 뿌듯해한다. 그러나 그 뿌듯함과 기쁨도 잠시, 난데없이 새들이 날아와 블록들을 다 쓰러뜨린다. 테일러는 억울하고, 분하고, 화나고,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테일러 곁으로 가장 먼저 닭이 다가왔다.
닭은 테일러에게 다가와 의기소침해진 이유를 빨리 이야기해 보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닭은 그냥 가버렸다. 잠시 뒤 곰이 테일러 곁으로 다가왔고, 소리를 지르라고 한다. 그러나 테일러는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았고 곰도 그냥 가버렸다. 코끼리가 다가왔다. 코끼리는 쓰러지기 전 블록이 어떤 모양인지 떠올려보라고 했고, 고쳐준다고도 했었다. 그러나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테일러. 결국 코끼리도 그냥 가버렸다. 하이에나가 다가와 웃어보라고 했고, 타조가 다가와 숨으라고 했다. 캥거루가 다가와 정리하라고 했고, 뱀은 다른 것도 무너뜨리자고 했다. 테일러는 모두 상대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동물들은 모두 그냥 가버렸다.
이윽고 토끼가 다가왔다. 토끼는 테일러의 곁에서 얌전히 테일러가 고개를 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한참이 지나고 진정된 테일러. “내 말 좀 들어줄래?” 마음이 열린 테일러는 토끼에게 모든 걸 말하기 시작했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어떤 모양인지 떠올리기도 했으며 웃어볼까, 숨어볼까, 정리할까, 아니면 다른 것도 무너뜨릴까? 토끼에게 다 쏟아냈다.
“다시 만들어볼까?”
토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보면서 옆에서 가만히 들어주는 것의 중요성, 마음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때론 기다림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면 활짝 열고 다가와 주기 때문이다.
요즘 나도 뭐가 그리 급했는지 자꾸 아이가 울 때마다 가만히 기다려주기보다는 “왜 우는지 빨리 이유를 말해 달라며 이유를 알아야 엄마가 도와주지!”라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 중 나는 누구일까?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 요즘 내 모습은 흡사 닭의 모습과 가까웠다.
이 책을 보며 아이도 자신이 우는 이유에 대해 테일러처럼 당장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반성한다. 아이는 한참 후에 진정된 후 피곤해서 운 거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펼쳐 든 이 책은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갑갑했던 내 마음에 아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던 단비와도 같았던 그림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원서의 제목은 <The Rabbit listened>라 너무 직관적인데 반해 <가만히 들어주었어> 제목이 더 좋았다. 어디까지나 이건 취향차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