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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쓸모

by 방구석여행자

내가 하찮다거나 쓸모없다고 여겨지나요?


이 책은 전봇대에 버려진 화병이 어느 날 우연히 할머니에게 구해져 베란다의 화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전봇대에 버려졌던 화병은 자신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집 베란다로 이사했을 때도 다른 화분들이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도 듣기 싫었고,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것도 간지러웠다. 싫기만 하던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화병에 새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새싹이 자라는 걸 보게 된 화병은 자신을 통해 하나의 생명체가 커가는 걸 보면서 감격스러웠다.


화병은 뜨거운 햇볕도 견뎌냈고, 차가운 물벼락도 맞았으며 간지러운 지렁이도 참아냈다. 밤이 되자 자장가도 불러주었다. 오로지 새싹의 성장을 돕기 위해. 이러한 화병의 노력 때문인지 새싹은 무럭무럭 자랐고, 노란 꽃을 피우고 초록열매를 맺었다.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화병은 화분으로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그렇게 자신을 수군거리던 다른 화분들이 싫었던 화병은 화분으로서의 삶을 적응해가고 있었다.


이 책은 얼마 전에 봤던 <채운다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나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채운다는 것에서 차만 담아냈던 때가 아니면 자신의 쓸모가 없다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찻잔이 점점 나아가 다른 동물들을 보살펴주는 역할로 확장되는 점이 화병이 처음에는 자신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화분으로 성장해 내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워킹맘으로서 살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엄마로서의 삶에 막막함을 느끼던 때에 처음 만났다. 이 책을 통해 이렇게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내가 아이에게 엄청 필요한 사람이구나. 를 느끼며 이 삶에 만족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얘야, 학교 끝나고 다른 선생님이 너를 봐주는 건 어때? “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주저 않고 아니라고 ”NO “를 외쳤다. “그럼... 엄마는?”이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 계속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대답에 내가 쓸모 있구나를 느끼며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내 인생이 쓸모없다고, 가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 책을 보고 따뜻한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가 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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