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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여행의 묘미

와입 만, 글랜 캐년 댐(애리조나)

by 온정

미국을 운전하며 가다 보니 “Scenic overlook”, “Scenic view” 등의 표지판이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글자를 발견하는 순간엔 망설임 없이 차를 세울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이 바로 이쯤이었다.


워낙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린 “Wahweap overlook”이라는 표지판을 보자마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세워, 말아?”
“앗, 지금 저기 오른쪽에 엄청난 호수가 보이는 것 같은데…??!”


급히 대화를 하던 중 우린 이미 그 표지판을 빠르게 지나쳐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이 곳을 들르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가 따라올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차 돌릴래. 여기 꼭 가봐야 할 것 같아.”


갓길서 굳이 차를 돌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갔다. 다른 명소들과는 다르게 주차장이 아닌 한 마을이 나타났고, 그 고요한 마을 건너편에 캐년들과 Lake Powell(파웰 호수)에서 흘러들어온 Wahweap bay(와입 만)가 보였다. 우리는 그 풍경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마을 끝자락에 차를 세우고 그 경치를 감상했다.


나는 “이게 대체 무슨 풍경이야? 저기 있는 거 정말 물이야?”라는 말을 연이어 내뱉었다. 오는 내내 메마른 땅만 보이다가 갑자기 등장한 물줄기는 익숙지 않았다. 오는 길이 얼마나 뜨겁고 삭막했던지, 도로 위로 일렁이며 올라오는 아지랑이로 인해 도로가 붕 뜨는 것처럼 보여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곳에서 보는 와입만의 풍경마저도 작은 돌을 퐁당 떨어뜨린 호숫가처럼, 저 멀리에서 흔들흔들거렸다. 선명하지 않은 그 모습이 참 몽환적이었다.


물이 있다고 해서 이 풍경이 삭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복숭아 물이 거의 다 빠져버린 손톱처럼 무채색에 가까웠기에, 캐년들이 마치 북극해에 떠있는 빙하처럼 보였다.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우린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신비함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으나 우린 너무 멀리 있었고, 두 눈 크게 뜨고 보고 싶었으나 뜨거운 태양이 눈을 못 뜨게 방해했다. 휴대폰으로는 사진이 찍히지 않아 미러리스를 꺼내 최대로 줌을 땡겨보았지만 그 마저도 아지랑이 때문인지 초점이 빗나가곤 했다.치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아, 조금 아쉬웠다.


마을 안에서는 고요 속에 삐약삐약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또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와입 만의 물조차도 마치 흐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멈춰버린 사이에 우리 둘만 우뚝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득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바로 사람 사는 집들 사이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생각이 통했는지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런 집에서 살면서 매일 이런 경치를 보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설마 지겨울까?"
“글쎄,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경치가 지겨워지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치만 주변과 너무 동떨어져있는 마을이라서 좀 무섭긴 하겠다.”


우린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것을 상상하며 열심히 수다를 떨다가, 그 위험성에 대한 내용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미서부 여행을 하고 있으니 왠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미국의 법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됐다. 허허벌판에 이렇게나 작은 마을이 있고, 차를 몰고 몇십 분은 가야 다음 마을이 나온다.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본인의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 뿐일 것이다. 공권력이 책임져주길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범죄나 사고 때문에 항상 총기 소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도, 앞으로도 미국의 법은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기를 소지함으로써 개인이 안전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여행을 하기 전에는, 설명을 들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이 끝도 없이 넓은 땅덩어리를 보며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시골 말고, 자연이 가까이 있는 도시에 사는 것이 좋겠다.”
햇빛이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뚫고 들어와 두피까지 타들어 갈 듯한 뜨거움을 느낀 우리는 급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후다닥 차로 돌아갔다.


나중에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제 전망대는 다른 쪽에 있었고, 우리가 길을 조금 잘못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도 뭔가 이상했지만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가 이 곳의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다. 또, 전망대에는 가지 못했어도 그곳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시각으로 와입 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가기로 계획한 모든 캐년들의 사진을 ppt 파일에 정리해놓았을 정도로 여행 준비에 극성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한 풍경에서는 또 다른 개념의 감동이 밀려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사진으로조차 보지 못했던 그 모습 앞에서 놀라움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오죽하면 내 눈 앞에 보이는 물이 진짜 물이 맞는지 의심을 했을까.


미서부 로드트립이 더욱 재미있어지는 순간이었다. 도무지 숨길 수 없는 흥분을 지닌 채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유타와 애리조나의 경계를 드나들면서.

유타 주에서 애리조나 주로.

조금 더 달려가니 ‘글랜 캐년 댐(Glen canyon dam)’이라는 관광 명소 표지판이 보였다. 이번에는 지체 없이 바로 그 길을 따라 방문자 센터로 들어갔다. 내부에서 유리창으로 전망을 볼 수 있었는데, 글랜 캐년 댐은 이 곳의 대자연만큼이나 그 규모가 어마 무시했다. 댐에는 조금 전에 보았던 와입 만 줄기를 따라온 물이 모이고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컬러풀하고 속 시원한 풍경이었지만, 왠지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차가운 느낌이 나는 대형 콘크리트 미끄럼틀은 쳐다볼수록 현기증이 났다. 나름 자연과 잘 어우러지게 지어진 건축물이었지만, 마치 대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기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우와... 크다아...” 따위의 감탄사를 내뱉다가, 지러움에 금방 문을 나섰다.




아지랑이 때문에 초점이 잘 잡히지않던, 몽환적인 와입만의 풍경. 실제로 내 눈에는 이런 형태로 보였다.
커버사진/ 하지만 겨우 한 장 성공 :)
글랜 캐년 댐
방문자센터의 전망대 안에서 찍은 글랜 캐년 댐. 너무 거대해서 현기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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