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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

카납(유타)

by 온정

DAY 3

오늘은 애리조나 주의 홀스슈밴드(Horseshoe Bend), 즉 말발굽협곡을 들렀다가 엔텔로프캐년(Antelope canyon)에서 투어를 한 뒤 마지막으로 애리조나 주와 유타 주에 걸쳐있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에 있는 숙소로 가는 일정이었다. 오늘 일정도 역시 빡빡하니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다. 카납에서 말발굽협곡까지는 차로 약 두 시간 거리였다.

다시 보는 그랜드서클 여행 경로. 형광펜 표시된 부분이 셋째날 루트이다.

땅덩어리 큰 미국 시골을 운전하는 것은 확실히 한국 운전보다 수월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로드킬, 즉 자동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종종 볼 수 있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운전대를 잡고 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저 앞에 새가 가만히 서있는 것다. 난 굉장히 당하기 시작했다. 차선이 한 개뿐이라 차선 변경을 할 수도 없었다. 제한 속도가 높은 길에서는 모든 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속도를 줄일 수도 없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새의 코 앞까지 다가간 내가 이성을 잃고 갓길로 차를 돌리려는 찰나, 다행히도 새는 푸다닥 날아가 주었다. 휴, 분명 십년감수한 것은 저 작은 새인데 오히려 내 심장이 콩알만 하게 쪼그라들었다. 난 또 이런 일을 겪을까 봐 운전을 하는 내내 깨에 힘이 들어갔다.
미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스컹크를 칠 경우 그 냄새가 어마어마해서 폐차를 해야 할 수준이라고 들었다. 또 실제로 지인이 미국 운전 중에 사슴을 쳤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다. 미국 땅은 워낙 자연과 어우러져있으니 이 곳 사람들은 아마 숱하게 이런 경험을 하겠지.

평소 나는 미국 시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자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서 오는 현실적인 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는 사실은 조금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 밀어낼 정도로, 미서부 자동차 여행은 단연 최고였다. 말발굽협곡으로 가는 길에는 유독 동그랗고 작은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분명 풀이 아니고 뿌리가 있는 나무 같은데, 역시 사막이라 그런지 키가 굉장히 작았다.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땅바닥에 찰싹 붙어있는 그 모습들이 귀여워서 우린 동글이라고 이름도 붙여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작은 것에도 흠뻑 기뻐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도 몇 번씩 갓길에 차를 세우곤 했다. 같은 지역 안에서 다 비슷한 느낌일 것 같지만 적어도 우리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수시로 바뀌는 바위산의 색과 질감과 모양들은 보고 또 봐도 신비했다. 또 사막에 가본 적 없는 우리에겐 불모지의 모습들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새롭게만 느껴졌다.




실제로 남편의 지인이 우리와 유사한 경로로 미서부 여행을 다녀왔는데, 어딜 가든 다 똑같이 생겨서 별 감흥을 못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풍경들이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해도 나는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만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난 너무나도 감사했다. 우린 지극히 사소한 것들에도 계속해서 놀라고 감동받기를 반복했고, 그 감정을 함께 공유했다. 덕분에 진정으로 이 여행에 이입할 수 있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돌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라는 확신이 생긴 게 언제어?”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인품이 좋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무척이나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준다. 이러한 구체적인 이유들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역시 사랑에는 ‘느낌’ 아니겠는가. 내 머릿속에 결정적으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스쳐 지나갔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의 질문에 항상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하곤 다.


"오빠랑 연애할 때, 같이 속초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 우리 부모님 엄하신 거 알지? 그래서 몇 년을 연애할 동안 둘이 여행 한 번을 제대로 못 가다가, 겨우 기회를 잡고 가게 된 거야. 그랬기에 우리에겐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지. 그렇게 속초에 느지막이 도착해서 밤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놀았어. 비수기라 꽤 조용했고,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데 그게 또 괜히 낭만적이더라. 그렇게 앉아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캔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올라오는 거야. 나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바닷가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 마치 바다에 홀린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기지? 그래도 다행히 이성은 금방 돌아오더라. 그 짧은 몇 초 동안 ‘아이고, 오빠가 날 엄청 창피해할 거야…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리에서 뒤엉켰어. 그리곤 민망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았는데, 웬 걸? 오빠도 나를 따라 나와 내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야.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오는, 달빛 아래서 춤추는 그런 낭만적인 장면은 아니었어. 지나가던 사람들은 분명 우리가 만취했거나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오빠와 춤을 추는 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쿵하면 짝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나의 어떤 모습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아서."


자주 가보았던 흔한 여행지에서 흔하지 않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우리 감정의 몫이었고, 어떤 의미부여를 하는지에 따라 달려있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그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을 신혼여행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 여행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여행 중 내 마음이 얼마나 충만해질 수 있는지는 결국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결정하는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특별하게, 또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면 온 마음으로 여행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신나버린 우리 둘
커버사진/ 평범하게 생겼지만 우리를 평범하지 않은 곳들로 데려다준, 고마운 렌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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