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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06. 2022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아저씨를 찾아서

타오르미나의 탐정놀이

우리 부부가 이탈리아 하고도 타오르미나(Taormina)에까지 가서 탐정놀이를 하게 된 경위를 보고하자면 이렇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와 남편이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둘이서 이탈리아 최남단에 자리한 시칠리아 섬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타오르미나도 목적지 중 하나였는데 그 아름다운 도시를 떠나는 날 남편은 이졸라 벨라 해변(Isola Bella)에서 일광욕 중이던 어머니를 뒤로 하고 다음 행선지행 표를 사기 위해 홀로 기차역으로 향했다고 한다.


문제는 기차표를 손에 쥔 그가 해변으로 돌아갔을 때 발생했다. 어머니가 사라지신 것이다!


출발 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어머니의 그림자도 찾지 못한 그는 다급한 마음에 이미 체크아웃까지 하고 떠나온 숙소로 돌아가 주인아저씨께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그리고 사람 좋은 아저씨는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를 이국의 여행자를 위해 발 벗고 나선다.

자신의 오래된 피아트(FIAT) 자동차 조수석에 남편을 태운 아저씨는 타오르미나 시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이러저러하게 생긴 동양인 여자 못 보았소 키는 이 정도고 이러한 옷을 입었소, 아무리 설명하고 또 물어보아도 어머니를 찾을 수는 없었던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건이 일어난 해변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살펴보기로 했단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쓰려니 내가 다 부끄럽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결론으로 직행해 보자면,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과 헤어졌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 누운 바로 그곳에서 단 1cm도 이동하지 않고 똑같은 곳에 그대로 계셨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운데, 남국의 여름 햇살이 너무나도 뜨거워 모자와 스카프로 온몸을 꽁꽁 싸맨 탓에 아들은 그곳에 사람이, 그러니까 자신의 엄마가 누워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한 채 엄마 찾아 삼만리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숙소 주인아저씨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결혼 소식도 전하기 위해 우리 부부가 함께 타오르미나를 방문했던 것은 지난 2012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엔 결정적인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편이 자신이 머물던 숙소의 이름과 위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와 여행을 하던 당시 현지에서 갑작스레 소개를 받아 머물렀던 곳이었기에 예약 내용이 어디에도 남아있질 않았고 오픈한 지 며칠 되지 않은 터라 상호도 없었다 했다. 애초에 이름이 없었으니 기억할 이름도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우리는 타오르미나에서 팔자에도 없는 탐정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단서는 단 두 개. 숙소가 타오르미나 푸니쿨라 근처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남편과 어머니, 그리고 아저씨가 숙소와 피아트 자동차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그렇게 우리 둘은 타오르미나의 푸니쿨라 근처에 주차를 하고 사진이 인쇄된 종이 한 장을 든 채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아저씨를 찾아 나섰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하늘이 도우사 헤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된 사진 속에 있는 집과 똑같이 생긴 건물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만세!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그새 까사 미켈레(Casa Michele)라는 간판을 만들어 건 집의 현관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볼이 발그레한, 마치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귀여운 아주머니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오로지 이탈리아어밖에 못하는 아주머니와 이탈리아어라고는 피자, 파스타 같은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나의 남편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처절하게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뭔가 열심히 하는 것처럼은 보이는데 도통 결론은 안 나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순간,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께서 등판하셨다. 그분이 힘을 보탠 결과, 아저씨의 성함은 '살바토레'이며 지금은 살바토레 부부가 외출 중이지만 저녁 7시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기왕이면 이번에도 아저씨가 운영하는 숙소에 머물고 싶었으나 빈 방이 없다길래 아쉽지만 근처의 다른 숙소에 짐을 풀기로 하고 우리는 아저씨 부부가 귀가하신다는 시간에 맞춰 다시 한번 까사 미켈레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또 어찌 된 일인가. 7시면 귀가한다던 살바토레 아저씨가 또 집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 번의 처절한 손짓 발짓 끝에 우린 알게 되었다. 혹시나 찾아왔다는 이들이 누군지 모르실까 싶은 마음에 남겨두고 온 오래된 사진을 보자마자 장을 보고 돌아온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가 그 길로 차를 돌려 우리의 숙소로 떠났다는 사실을.

견우와 직녀처럼 엇갈리며 서로의 집과 숙소를 오간 끝에 드디어 우린 꿈에도 그리던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노부부는 남편과 나를 보자마자 마치 오래전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워하시며 말 그대로 뼈가 으스러지도록 세게 껴안아 주시고는 우리의 손을 잡아끌어 본인의 집으로 들어가셨다. 말로만 듣던 분을 직접 만난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그분들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 늦도록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시간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 어느덧 숙소로 돌아갈 시간. 살바토레 아저씨와 아주머니께 안녕을 고하고 뒤돌아서려니 아주머니가 나를 껴안고는 끊임없이 뽀뽀를 해주신다.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꾹 참았건만 이번에는 아저씨가 배웅을 해주시겠다며 우리를 따라 나오시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굳이 차로 바래다주시겠다는 거였다. 밤이 늦었고 갈 길이 멀지 않으니 그냥 걸어가겠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였다.


아저씨가 운전하는 오래된 피아트를 타고 달리는 길, 몸집도 작은 차가 덜덜덜 소리는 또 어찌나 큰지 길 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살바토레 아저씨 댁에서 우리가 짐을 부린 곳까지는 걸어서도 3분이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는데 그 길을 추억 속의 자동차로 꼭 데려다주고 싶다던 살바토레 아저씨. 그 친절이, 그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아저씨와 헤어지고 난 후 우리 둘은 손을 잡고 밤이 내려앉은 타오르미나를 걸었다. 여행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길에서 우린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와 그러했던 것처럼 따스한 정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맺기도 한다. 그것이 너무 감사해 코끝이 찡해지려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손을 감싸 쥔 남편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그렇게 인생은 너무 아름답고 또 아름다워서 나는 엉엉 울며 걸었다.


살바토레 아저씨의 오래된 피아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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