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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07. 2022

다시, 타오르미나

그러나 나는 또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travelnread/141



길어봤자 몇 달일 줄 알았는데 온 세계가 신음해온 지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팬데믹 초반, 내 나라에서 치솟는 확진자 숫자를 보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저 멀리 남의 나라인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래전 남편에게 베풀어주신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의 결혼 소식도 알리기 위해 시칠리아 타오르미나(Taormina)의 살바토레 아저씨를 찾아뵈었던 것은 2012년 여름 끝자락의 일이었다. 우리 부부를 살갑게 맞아주셨던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와 헤어지던 날, 우린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뵙겠노라 약속을 했었다.

그날을 뒤로하고 1년이 가고 2년이 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정말로 부모가 되었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시칠리아에까지 다녀오는 것은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다녀온 곳이 아닌 아직 가보지 않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시칠리아행을 차일피일 미뤄오던 차에 팬데믹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뉴스는 연일 이탈리아의 심각한 상황을 보도했다. 21세기에, 나름 유럽의 선진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라에서 치료할 의사며 병원이 부족해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니.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오래전 읽었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속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이 더욱 옥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연세가 많아 보이셨는데... 뵌 지도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랬다. 내가, 아니, 우리 부부가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이탈리아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힘들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아들을 두신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우리의 부모님들과 연세가 비슷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면 벌써 일흔을 훌쩍 넘기셨다는 의미가 아닌가. 지난번 타오르미나 방문 길에 그분들이 운영하시는 숙소의 이름이며 주소까지 확실히 알아두었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살바토레 부부가 무사하신지를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혹여나 좋지 않은 소식을 확인하게 될까 무서워 우리는 그 쉬운 일을 주저하고 있었다.


팬데믹 중에도 시간은 무심히도 제 갈 길을 가, 어느새 2022년이 되었고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이사를 왔다. 타오르미나와의 거리도 더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두려워도 더 이상 피하지 말고 확인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아저씨 부부가 살아계신지 아니면 돌아가셨는지 확인이라도 해보자고. 나는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가 운영하시던 까사 미켈레의 웹페이지에 접속해 그분들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남긴 숙박객의 리뷰 중에서 친절한 노부부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부부라면...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가 틀림없었다! 아! 감사합니다!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오래전 약속드렸던 대로 우리의 아이, 여행이를 아저씨 부부께 소개해드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시칠리아를 향해 떠나기 전, 아저씨가 운영하시는 숙소에 방을 예약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2022년 5월, 우리가 둘에서 하나가 되어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를 뵌 날로부터 10년째 되는 해에 우리 가족은 다시금 시칠리아 타오르미나 땅을 밟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세 번째, 나에게는 두 번째, 그리고 여행이에게는 첫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사람' 때문이라 답하고 싶다. 새로운 이와 만나게 될 미래를 꿈꾸며 혹은 과거에 연을 맺은 이와의 재회를 고대하며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지난날의 인연이었던 살바토레 부부와 다시 만나던 날, 그날의 기분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타오르미나에까지 이르는 길에서는 마치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하는 사람처럼 설렜고 타오르미나 버스 정류장에서 까사 미켈레까지 걷는 길은 너무 긴장이 된 탓에 괜히 왔나 싶은 후회로 가득했다.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누르고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현관문 쪽으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는 실수로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버린 초등학생이 된 것 마냥 뒤돌아 내빼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살바토레 아저씨와 아주머니. 오랫동안 눈에 선하던 그 얼굴들을 다시 뵈었을 때는, 십 년의 세월만큼이나 나이가 든 두 분의 모습이 슬펐고 그분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와는 다르게 우리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보지 못하시는 상대방의 눈빛에 당황하고 말았다.


우리 셋이 머물 방을 안내해 주신 후 남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던 중, 아저씨는 우리가 누구인지, 이토록 짧은 일정으로 왜 굳이 시칠리아 타오르미나를 다시 찾아왔는지 깨닫게 되신 듯했다. 처음 뵙는 할아버지가 아직 편하지 않은 여행이는 저만치 떨어져 서있었는데 그런 아이에게 이리 오라 손짓하신 살바토레 아저씨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셨다. 낯선 할아버지의 품에 어색하게 안긴 여행이는 자기가 왜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쩌면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혼자서 드라마를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에 만난, 마치 가족처럼 소중한 인연이 등장하는 감동의 드라마를. 당황스럽고도 서운한 나의 마음을 알아챈 남편이 말했다. 서운해할 것은 없어, 살바토레 아저씨 부부 입장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거쳐간 수많은 숙박객 중 일부일 뿐이니 우리가 그분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분들도 우리를 생각할 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 우리는 우리가 가진 추억만 간직하면 돼.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내뱉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니 거기에도 숨기려 했으나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이 언뜻 비치는 듯했다. 남편은 어쩌면 그 이야기를 내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다시 방문했을 뿐이지만 타오르미나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반짝이는 이오니아 해와 전설 속의 에트나 화산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해양도시를 여행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새벽과 한낮과 저녁, 그리고 밤을 즐겼고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끽하기도 했다. 그 옛날 모파상이 시칠리아에서 하루만 지내야 한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구경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타오르미나라고 대답할 것이라 했다던 이야기는 과연 옳은 것이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갔던 한 호텔.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오셨다는 지역 토박이 호텔리어는 이 작은 동네를 벌써 세 번째 방문한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한 번만 더 방문하면 그때는 반은 시칠리아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하하하 웃음이 터진 우리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돌아와야겠다고 답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 모르겠다. 이 복잡한 마음을 차근차근 곱씹어 보고 차곡차곡 정리해 추억의 서랍 깊숙이 넣어둘 수 있다면 다시 그곳으로 향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금의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다.


타오르미나
살바토레 아저씨 덕분에 여행이도 추억 속 바로 그 피아트(FIAT)에 타보았다. 아이는 이렇게 작은 차에 타니 자신도 운전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했다.

여행 팁


한국에서부터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까지는 항공편이 없다. 그러므로 항공(팔레르모 공항 또는 카타니아 공항 이용 추천), 선박(팔레르모 항, 메시나 항, 카타니아 항 등 이용), 또는 기차(메시나 역)로 시칠리아 섬으로 들어간 후 기차, 버스, 렌터카 등을 이용해 육로로 타오르미나까지 이동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이동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니 미리 동선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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