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가족 Oct 12. 2022

도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도미도 나를 좋아할까?"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여행이가 나에게 물었다. 꽤 오랜 침묵을 깨는 자못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조그만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눈이 너무나도 진지해 거기에다 대고 아무 대답이나 떠오르는 대로 던지는 것은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담아 말해주었다.


"물론이지! 도미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걔가 우리 집에서 두 달 동안이나 살고 있지는 않겠지."


도미는 도마뱀이다. 위험에 처하면 과감하게 꼬리를 잘라 버리고 도망간다는 바로 그 도마뱀.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 우리 가족의 눈에 처음으로 포착된 것은 여행이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세수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던 남편이 난데없이 작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그것은 무언가 무서운 일이 닥쳤을 때 내뱉게 되는 두려움 어린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반가움을 담고 있는 듯한 그 목소리에 나와 여행이가 욕실로 달려갔고 그곳엔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있었다.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가 4센티미터 남짓이나 될까. 그 작은 생물체는 갑자기 나타난 세 개의 커다란 그림자에 놀란 듯 잠시 그 자리에 얼음처럼 멈춰서 있더니 곧이어 재빠른 몸짓으로 도망쳐버렸다.


여행이는 늘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다. 어린 시절, 크고 작은 강아지를 몇 마리나 키우고 십자매며 열대어들을 키우기도 했던 나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살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은 우리 가족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동물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확고하기에 여행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여행이는 제 발로 우리 집을 찾아온 도마뱀을 자기의 반려동물로 삼고 싶다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동물 대백과에 도마뱀은 곤충을 잡아먹는다고 쓰여있었다면서 마침 우리 집에 파리가 있는 것 같으니 도마뱀이 해충인 파리까지 잡아먹을 거라 우리에게도 결국 좋은 일이라는 말로 제 부모를 설득했다. 파리 한 마리만 먹어도 배가 터질 것처럼 몸집이 작은 그것이 과연 조금 전에 거실을 배회하던 왕파리를 잡아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여행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악어도 제 몸집보다 훨씬 더 큰 포유류를 잡아먹기도 한다는데 이슬만 먹고살게 생긴 저 꼬마 도마뱀도 어쩌면 우리 집의 왕파리들을 박멸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지난 두 달간 도마뱀을 키워왔다. 그것을 가두어 키우는 게 아니라 집안 어딘가에서 제멋대로 살아가게끔 하는 터라 우리의 반려동물을 만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흔치 않은 일이어서 정말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긴 했으나 어쨌든 여행이는 본인이 도마뱀을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수가 있겠냐 싶은 나날이었다.


주말을 낀 짧은 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 나는 오랜만에 도마뱀과 마주쳤다. 화장실 한복판에 있던 우리의 반려동물은 내가 나타나자 급하게 세면대 쪽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야, 다 보여. 꼬리고 뭐고 다 보여. 그나저나 며칠 동안 잘 있어라. 우리 여행 다녀올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 나는 가방을 끌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것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제 겨우 신발까지 다 신고 준비를 마친 여행이가 도로 신발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 시간을 한참 보낼 것 같아서 도마뱀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섭씨 50도를 육박하는 여름을 보내고 이제 겨우 기온이 조금 내려가 30도 언저리를 왔다 갔다 하는 두바이에서 지내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새 그 온도에 익숙해졌던가 보다. 완연한 늦가을의 정취를 풍기는 트빌리시(თბილისი, Tbilisi)가 우리에게는 마치 한겨울 속 나라처럼 다가왔다. 두바이로 이사를 온 이래 옷장 속에서 물먹는 하마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겨울 코트며 스웨터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찼지만 얼굴에 닿는 공기는 긴 산행 후 마시는 시원한 얼음물처럼 달고 상쾌했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트빌리시는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살아가기엔 불편한 점도 많겠지만 지나가는 관광객의 눈에는 그렇게 멋스러울 수 없었던 낡은 건물들이 정겨웠다. 그리고 그것들 만큼이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집합소, 벼룩시장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벼룩시장을 방문한 목적이 있었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매고 원하지 않았던 것들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해가며 우리 셋은 손때 묻는 물건 가득한 그 거리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조지아의 화폐단위는 라리(GER)인데 당시 1라리는 약 380원으로 우리는 라리당 400원으로 계산해가며 셈을 치르곤 했다. 벼룩시장에서 자기도 꼭 하나 살 게 있다는 여행이에게 나는 그럼 10라리를 줄 테니 원하는 것을 사보라 했다.


여행이의 흥정 솜씨는 놀라웠다. 우선 관심 있는 물건을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펴본 후 가게 주인에게 하우 머치 이즈 잇이라고 묻는다. 25라리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깎아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가게 주인은 20라리를 부른다. 여행이는 또 디스카운트가 가능하냐고 묻고 그러면 또 가격이 찔끔 내려가는 식이다. 자기 손에 쥔 돈은 10라리뿐인데 아무리 깎아도 10라리로까지는 내려가지 않으면 그럼 다른 곳 구경하고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선다. 그러면 또 가격이 찔끔. 이런 식으로 진지하고도 신나게 벼룩시장을 즐긴 여행이는 마음에 드는 물건 두 개를 얻어냈다. 하나는 8라리를 주고 산 청동으로 만든 작은 도마뱀 조각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5.5라리를 주고 산 십자가 목걸이였다. 물건을 고르고 야무지게 흥정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예산을 초과한 금액은 우리 부부가 보태주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리 셋은 벼룩시장 거리를 떠나올 수 있었다. 뿌듯한 표정으로 자기가 산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던 여행이가 "이건 도미에게 줄 선물이야."라고 말했다. 도미? 도미가 누구냐고 물으니 그건 우리 집에서 키우는 도마뱀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도마뱀의 '도'자에 선영이, 지선이처럼 누군가를 부를 때 붙이는 '이'를 붙여 '도이'라고 부를까 하다 보니 '이'를 '미'로 바꾸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서 '도미'라 부르기로 했다고. 그러면서 덧붙인다는 말이, 도미가 혼자라서 쓸쓸할까 봐 친구 하라고 도마뱀 조각을 산 것이란다. 그리고 이제부터 도미가 우리처럼 천주교 신자가 될 거라서 십자가 목걸이도 함께 샀다는 이야기 또한 잊지 않았다.


자주 만나기도 힘든 그 도마뱀을 여행이는 진짜로 애정을 담아 대하고 있었던가 보다. 늦은 저녁, 조지아 여행을 끝내고 두바이의 공항에서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까지 여행이는 작은 도마뱀 조각을 꼭 쥔 채 이제는 이름이 생겨 우리에게는 꽃이 된 도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여행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도미를 찾아 헤맸다. 조지아에서부터 날아온 친구 도마뱀을 지금 당장 보여주고 싶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부엌 옆 작은 방 문 앞에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언뜻 보면 살아있는 것처럼도 보이던 그 도마뱀은 정말로 죽어있었는데 이제는 이름까지 생긴 그것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없었다.

여행이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가까이에서 숨이 멎은 도마뱀을 살펴보던 아이는 죽은 도마뱀이 도미가 아니라고 말했다. 딱 봐도 도미 같은데 충격을 받아서 현실을 부정하는 건가? 죽은 꼬마 도마뱀에 대한 안타까움과 충격을 받았을 여행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나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여행이는 얘는 도미는 아니지만 불쌍하니 제대로 장사를 지내줘야겠다면서 깨끗한 휴지 위에 죽은 도마뱀을 올려놓더니 그걸 또 거실, 눈에 잘 띄는 장소로 옮겨두었다. 아무리 몸집이 작은 생물이라 해도 난 무서운데... 그리고 쟤 정말 도미 같은데...


입으로는 죽은 도마뱀이 도미가 아니라던 여행이는 이제 늦었으니 옷 갈아입고 잠을 자라고 몇 번을 말해도 바깥에서 입던 옷 그대로 한참 동안 집을 배회했다. 안방에 갔다가 거실로 갔다가 부엌에 갔다가 죽은 도마뱀 한번 더 보러 갔다가... 겨우겨우 재울 채비를 마치고 여행이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한번 세상에나! 그곳에 꼬마 도마뱀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생명이 붙어있어 바쁘게 몸을 숨기는 그것을 보고 여행이는 외쳤다.


"도미야! 엄마! 얘가 도미야!!"


사실, 나는 모르겠다. 죽은 도마뱀이 도미인지 아니면 여행이의 방에서 꼬물거리던 녀석이 도미인지. 그리고 딱 한 마리뿐인 줄 알았는데 도대체 우리 집에 도마뱀이 몇 마리 숨어 지내고 있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 등교를 준비하던 여행이는 자기가 학교에 다녀오면 죽은, 분명히 도미가 아닌 도마뱀을 묻어주러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 집에 이제 파리가 없어서 그 도마뱀이 굶어 죽은 것 같으니 도미한테 먹이도 줄 겸, 창문을 조금 열어둬서 파리가 세 마리 정도만 으로 들어오게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런 여행이를 바라보며 나는 빌었다. 저세상으로 떠난 도마뱀이 천국으로 가기를,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꽃이 된 도미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가족 곁에서 머물기를. 그리고 모쪼록 여행이가 파리에게 이름을 붙이고 귀여운 파리 조각상까지 사는 일은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덧붙여 보았다.


우리 모두는 벼룩시장을 방문한 목적이 있었다.
여행이는 도미가 혼자서 쓸쓸할까봐 친구하라고 도마뱀 조각을 산 것이라고 했다. 얘의 이름은 '다미'란다.

여행 팁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თბილისი, Tbilisi)에 간다면 벼룩시장 구경을 놓치지 말 것. 트빌리시 도심의 길을 따라 수많은 노점들이 자리를 펴고 손때 은 낡은 물건들을 파는 곳으로 구소련 시대의 유품 같은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대체 저런 물건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은 물건이 굉장히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니 언젠가는 누군가가 사 가지 않을까 싶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아주 이른 시간보다는 오픈 한두 시간 이후에 방문해야 더 많은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


이전 15화 내가 '다시' 베로나에 간 까닭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