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살아 움직이는 펭귄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남극인지 북극인지, 여하튼 몹시 추워 보이는 극지방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그 새들은 조류라고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대부분의 조류와는 다르게 멀리도, 높이도 날지 못하는 참으로 신기한 동물이었다. 그것들이 빙하와 눈으로 덮인 새하얀 풍경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나에겐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펭귄을 떠올릴 때마다 극지방을 함께 떠올렸고 이 종들은 오로지 추운 지방에서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뜨거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려 꽂히는 아프리카에서 펭귄 무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펭귄을 만나러 갑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Republic of South Africa)은 신기하게도 수도가 세 군데나 되는 나라다. 프리토리아(Pretoria)가 행정수도,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 사법수도라면 케이프타운(Cape Town)은 입법수도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자 주변 지역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남편은, 사시사철 방문객으로 북적인다는 케이프타운 시내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사 오십 분가량 떨어진 곳에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가 있다 했다. 볼더스비치(Boulders Beach)라 이름 붙은 지역으로 여기에 펭귄들의 서식지가 있다는 거였다. 펭귄이라고? 펭귄이 정말로 이 더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런 풍경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림 속 한 장면에서 톡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해변이야 이 나라에서는 흔한 것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런 풍경을 너무 많이 접한 덕분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기 때문이었을까? 처음 만난 볼더스비치는 물 위로 점점이 솟은 바위들의 모양새가 독특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주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 동네였다. 볼더(boulder)라는 단어가 낯설어 찾아보니 오랜 기간 동안 물이나 비바람에 씻겨 표면이 둥글둥글, 매끈하게 변한 바위를 그렇게 부른다 했다. 이름에 걸맞게 바닷가에는 둥글넓적 순하게 생긴 바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길 찾는 재주가 비상한 나의 배우자는 태어나서 처음 가 보는 곳에서도 마치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척척 길을 잘도 찾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토박이처럼 망설임 없이 어딘가로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손에 이끌려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우리의 눈앞에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등장한 풍경은 내 눈을 의심케 만들고도 남았다. 까만 연미복을 입고 미처 다 여미지 못한 앞섶 사이로 볼록하게 솟은 새하얀 배를 내민 새들이 뒤뚱거리며 해변을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정말로 펭귄이었다!
볼더스 비치에서 일상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모습
볼더스 비치. 바닷가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해변이 있었다
아프리카 펭귄들의 세계
바닷가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해변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이들과 아마도 관광객일 듯싶은 이들이 뒤섞여 까맣거나 붉게 탄 등을 반짝이며 바다에서의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펭귄 서식지 부근 해변으로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우리 둘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른 후에야 그 신기한 생물체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은 펭귄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 모래밭으로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고 대신 그 부근에 조성된 나무로 된 길을 따라서만 이동하며 그들을 관찰할 수 있다 했다. 아마도 펭귄들의 세상을 지켜주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을 것이다. 나와 남편도 다른 이들의 뒤를 쫓아 데크를 따라 움직이며 우리와는 다른 종들의 세계를 엿보기 시작했다.
자카스 펭귄(Jackas penguin), 또는 케이프 펭귄(Cape penguin)이라고도 불리는 아프리카 펭귄은 줄무늬 펭귄속에 속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서식하는 유일한 펭귄으로 대륙의 남동쪽 해안, 즉,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미비아의 해변에서만 살고 있다 했다. 눈 주위의 핑크색으로 보이는 얼룩은 실은 땀샘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프리카 펭귄의 특징 중 하나이며 뜨거워진 피를 식혀주는 역할을 하고 온도가 상승하게 되면 혈류가 증가해 분홍색으로 변한다. 다 자란 놈들의 키가 60에서 70 센티미터, 몸무게는 2.2에서 3.5 킬로그램 정도로 다른 펭귄들에 비해서는 몸집이 작은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걷는 것부터 바닷속을 헤엄치는 모습, 그리고 바위에 누워 있는 모습까지도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 엉덩이 토닥토닥 두드려주고픈 마음이 들 정도!
볼더스 비치에서 만난 아프리카 펭귄
사람들은 펭귄들이 모여 있는 바닷가 모래밭으로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고 대신 그 부근에 조성된 나무로 된 길을 따라서만 이동하며 그들을 관찰할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펭귄
그런데 이 귀여운 아이들이 안타깝게도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19세기 초반 4백만에 이르던 개체수가 2010년에 이르러서는 55,000까지 줄었다니 심각한 일이다.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인간들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리고 기후변화가 지금까지와 같은 속도로 지속된다면 2026년이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앨리스와 도도새 (c)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내가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앨리스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 믿는다. 모험을 떠난 앨리스는 수많은 동물들을 만난다. 그중에 도도새라는 이름을 가진 꽤나 품격 있어 보이는 새가 있었다. 도도새라... 이름도 독특하고 행동마저도 눈에 띄어 나는 그 이름을 기억에 새겨두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새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도도새는 인도양의 모리셔스섬에 실제로 존재했었고 안타깝게도 17세기 후반에 멸종했다는 거였다. 오래전 모리셔스에는 도도새의 천적이 없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먹거리가 땅에 널려 있었던 까닭에 이 신기한 새들의 날개는 퇴화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날개 없이도 잘만 살고 있던 그들 앞에 어느 날 유럽의 선원들을 태운 배가 닻을 내리면서 새들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오랜 항해를 거치며 신선한 고기 생각이 간절해진 선원들에게 키가 1미터가량으로 상당히 몸집이 컸던 도도새는 좋은 식량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선원들의 먹잇감이 되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도도새는 그로부터 얼마 후 모리셔스가 유럽에서 온 죄수들의 유배지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죄수와 함께 이전에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돼지나 원숭이와 같은 다른 육상동물들까지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물들은 날지 못하는 도도새가 땅바닥에 낳아 놓은 알들을 먹어치웠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도도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고 만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지구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동물들은 아프리카 펭귄뿐만이 아닐 게 분명하다. 나와 남편은 운 좋게도 아프리카 펭귄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우리와 지구상에 공존했던 이 동물들을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세대에게까지 아프리카 펭귄을 만날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