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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Mar 29. 2017

퇴사일기 #42. 우정도 국경이 없어요

9월 2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는 현재 의도치 않게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처음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전혀 계획도, 예상도 없었던 일이다.

내가 친구네 잠시 살고 있다 하면 사람들은
-> 당연히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독일인이라고 하면
->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대답이 모두 예상과 맞지 않는 결과에
뭔가 모를 실망감을 감추질 못한다.
어쨌든 난 멜리라고 하는 독일 여자와

예상치 못한 '동거중'이다.

멜리는 내가 생각한 독일인과 모든 것이 다르다.
나보다 훨씬 작고 귀여운 체구를 가졌다.
나보다 술을, 맥주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심지어 커피도, 콜라도 마시지 않는다.
나보다 한국 드라마를 더 자주, 많이 본다.

그리고
항상 6시 칼퇴(어쩌다가 그 전에 퇴근)에,
프로 수준급의 취미가 하나 있고,
한국어는 "즐거운" 취미 생활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30년간 엄마가 모든걸 다 해주었던 나에게

굉장히 큰 자극이다.
인터넷, 티비, 심지어 냉장고, 세탁기까지
모든 기기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고장도 해결한다.
커텐봉이 떨어지면 드릴로 벽을 새로 뚫어 붙이고,
벌레가 들어와도 뚝딱 잡고,
집세를 비롯해 각종 세금 분야까지 확실하게 알고
바닥청소, 욕실청소, 유리창 청소까지 전문이다.
벌써 혼자 산 지 1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니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멜리 부모님은 일년에 한두번 독일에 들어오시고,
하나뿐인 작은아버지는 말레이시아에 사신다.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일주일에 한번 살피러 간다.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동네에

가족, 친지도 없이 혼자 사는 셈이다.

어느날 같이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멜리에게 문득 물었다.
외롭지 않냐고.
어렸을 땐 그랬지만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단다.
이게 "German style"이라고 하는 멜리에게
그날 난 진심으로 가족같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 여행하며 얼마나 많은 외국인을 만났는지,
얼마나 많은 외국인 친구를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별로 대답할 거리가 없다.

하지만 독일과 몰타라는

그동안 내 인생과 전혀 관련도 없었던 나라에서
내 맘을 편안히 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나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를 주며 엉엉 울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는 건
6개월간의 여행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거리다.


여행 중 나에게 쉼터이자 메인 기지(!)역할을 했던 멜리네 집
멜리가 해준 독일식(?) 파스타


일본인 친구 히로노와 함께 했던 독일 하이델베르크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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