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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ug 01. 2019

감성 충전!
사부작사부작 타이완 소도시 여행

신주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타이완을 여행했다. 

전형적인 소도시를 지나, 국제슬로시티 치타슬로도 지났다. 

큰 도시도, 비경도 없었지만 여유가 있다면 더 느리게 걷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도시
신주 新竹     


수출국의 이름을 각인한 타이완 홍차의 철판


신주시 꽌시(關西)에는 옛 것과 동시에 지금의 것이 많다. 1937년 일제 강점기에 창업한 타이완 홍차 문화관(台紅茶業文化館, 타이홍차이에원화관)도 그중 하나다. 1930년대 초반, 타이완의 홍차는 일본에 헌상됐고, 1930년대 중반에는 타이완의 으뜸 수출 품목으로 성장했다. 루어 가문(羅氏)이 신주시 꽌시에 적을 두고 ‘타이완 홍차 유한공사’를 설립한 것도 이 즈음이다. 타이완 홍차는 타이완 총독부가 인정한 국제 기준의 홍차를 생산하며 승승장구했다. 타이베이 따다오청(大稻埕)에 수출을 위한 사무소도 세웠다. 당시에는 중개상을 거치지 않은 수출이 힘들었다니 필시 일본이 뒷배를 보았을 것이다. 타이완 홍차는 타이완 10대 무역회사 중 하나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달았다. 

옛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타이완 홍차 전시관

타이완 홍차는 2005년부터 타이완 차의 80년 역사를 보여 주는 문화관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퀴퀴한 냄새를 머금은 건물은 차 공장이자 박물관이 됐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역사 유물이 되다니, 우리로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나 나름의 이유는 있다. 1945년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나고 국민당과 함께 본토 중국인들 또한 타이완으로 건너왔다. 타이완에서는 중국 본토에서 조기 이주해 온 이들을 본성인(本城人), 1949년을 전후로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이들을 외성인(外城人)이라 한다. 본성인 인구는 약 85%로 외성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정부의 요직은 장제스를 위시한 외성인이 차지하고, 본성인에 대해서는 극심한 차별 정책을 썼다. ‘개(일본)가 가니 돼지(국민당을 위시한 외성인)가 왔다(狗去豬來)’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한국과 똑같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나 타이완이 일본에 관대한 까닭이다. 

1층에는 과거 홍차의 포장지, 직원 체육대회 트로피 등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회사 창립 1주년을 기념해 일본 미쓰비시사의 대표와 찍은 사진도 있다. 옛 기계도 여전히 돌아간다. 4월 첫 춘차(春茶)를 시작으로 약 40일간 차를 생산한다고 한다. 2층에서는 자료와 실물로 타이완 홍차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보여 준다. 입구에는 수출용 나무 박스에 래커를 칠하기 위해 제작한 철판 60개가 걸려 있다. 80여 개국에 차를 수출한, 신주시 꽌시에 살아남은 5곳의 차 공장 중 하나인 타이완 홍차의 훈장이다. 차는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찬물에도 타 먹을 수 있는 분말 녹차 가루인 ‘티에꽌인차’가 인기인데, 차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믿음 하에 40년 숙성한 차만 판매한다. 티에꽌인차는 보이차와 비슷한 향과 맛이 난다.      

2층 다락방에서 바라본 유기서점 내부

꽌시 시장을 지나 쭝정루로 접어들면 꽌시 라오지에가 나온다. 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낮은 건물들은 재개발이 무용해 자연스레 세월을 끌어안은 과거이며 현재다. 이 길에 유기서점(有機書店, 요우지슈디엔)이 자리했다. “100년 된 건물에서 책에 둘러싸여 자는 즐거움을 누려 보세요. 편안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특별합니다.” 헌책방과 게스트하우스, 책과 여행이라는 한편은 낯설고, 한편은 유기적인 조합의 이곳. 1층은 헌책방이다. 20위안을 내면 내 헌책과 서점의 헌책을 교환할 수 있다. 2층 다락방은 2~3명이 누울 만한 크기의 게스트하우스다. 침대도, 편의시설도 딱히 없지만 오래된 건물과 2,000여 권의 책이 뿜어내는 특유의 향기와 감성이 충만한 공간이다. 

신주시 쮜엔춘 박물관의 외관


과거 일상을 재현해 놓은 쮜엔춘 박물관 내부

타이완에는 쮜엔춘(眷村, 권촌)이라 불리는 마을이 곳곳에 자리한다. 현재 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아니고, 과거 국민당 군인들과 가족들이 살아가던 마을이다. 1949년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150~200만 군인과 가족은 타이완으로 건너온다. 외성인들이다. 이들을 위해 정부에서 조성한 마을이 쮜엔춘이다. 본성인에 비해 대우 받고 살았다지만 이들에게 역시 타이완은 내 고향, 내 집이 아니었다. 백이면 백, 중국 본토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던 이들은 1년간 준비, 2년간 반공, 3년간 소탕, 5년간 성공의 10년 대계를 노래했다. ‘반공대륙’, ‘해구동포’라는 문구를 늘 달고 살았다. 


신주시에는 47개의 쮜엔춘이 있었다. 숫자로는 상당한데 100~200명이 살아가는 소규모 쮜엔춘이 대부분이었다. 신주시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지우청취(舊城區)의 신주시 쮜엔춘 박물관(新竹市眷村博物館, 신주시 쮜엔춘 보우관)에서는 쮜엔춘이 무엇이고 그곳에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이방인의 눈에도 고단했을 것 같은 과거다. 




느림의 미학
먀오리(苗栗)


골목골목 즐길 거리로 가득한 난좡 라오지에의 벽화

타이완 곳곳에 산재한 옛 거리, 라오지에(老街)는 대부분 1950~60년대에 조성된 탄광, 금광촌의 상가 거리다. 라오지에 고샅길을 따라서는 식당, 술집, 극장 등이 들어서 있다. 술집이 특히 많은 이유가 있다. 1950~60년대 당시 광부 월급은 3만5,000위안 정도였는데, 선생님 월급이 800위안 정도였다니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벌이가 많았으니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광부들은 고된 노동 후 술과 음식으로 심신을 달랬을 것이다. 지금의 라오지에는 그때와는 달라졌다.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간식 위주의 먹거리와 기념품을 팔며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1900년에 지은 우체국.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로 엽서를 보낼 수 있다

난좡 라오지에도 탄광촌과 함께 탄생했다. 골목 초입의 이름은 시샨컹(洗衫坑). 빨래터라는 뜻이다. 1960년대엔 수력 발전을 할 정도로 물길이 넓었다고 하나 홍수로 인해 물길이 좁아지며 빨래터가 되었고, 지금도 빨래터로 쓰인다. 시샨컹을 지나 접어든 골목은 구이화씨앙(桂花巷)이다. 먀오리현의 꽃이기도 한 계화 관련 상품이 많아 계화 골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다. 계화 꿀을 넣어 향긋하고 달콤한 빙수를 포함해 꽃차와 꽃꿀 등 살거리와 먹거리가 널렸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1900년에 지은 오래된 우체국이 나타나는데, 원주민 전통 문양이 새겨진 우체통 앞은 기념사진 포인트다. 예쁜 엽서를 골라 생각나는 이들에게 안부를 전해도 좋다. 라오지에에서의 걸음처럼 느리게 도착하겠지만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행복하다.      


난좡 라오지에 교통편 및 여행정보 

타이완 하오싱 

www.taiwantrip.com.tw


탁야소야

국제슬로시티 먀오리 싼이(三義)에는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민박이 있다. ‘도시에서 생존하기보다 시골에서 생활하기’를 선택한 이들의 공간, 탁야소야(卓也小屋, 조이에샤오우)다. 탁야소야는 해발 280m의 산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한다. 15년 전, 민박을 시작할 당시에는 ‘탁씨네 작은 집’이라는 이름처럼 소규모였는데, 지금은 민박과 레스토랑, 카페, 공방을 갖춘 중견 규모의 숙박업체로 성장했다. 산비탈을 따라 자리한 15동의 민박 건물은 개성 있고, 독립적이다. 

탁야소야의 염색 체험장

탁야소야에서는 하루 7차례(09:00~11:00, 13:00~16:00, 1시간 간격) 염색 교실을 연다. 근처 밭에서 키운 람초(藍草)를 3~4월, 11~12월에 생산해 염료도 직접 만든다. 타이완 내 몇 되지 않는 염색 교실 중에서도 람초를 직접 생산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하니 귀한 재료와 정성이 더해진 체험이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300위안으로 가격도 저렴한 손수건 염새을 체험해 보기로 한다. 먼저 굵기가 다른 막대와 고무줄을 이용해 선생님의 안내에 맞춰 원하는 모양을 만든다. 다음은 염료에 담그기. 염료에 3분을 담갔다 꺼낸 천은 초록빛이었다가 물로 씻어 내면 쪽빛으로 바뀐다. 이 과정을 3번 거치면 선명한 쪽빛의 손수건이 완성된다. 네 것은 이래서, 내 것은 저래서 참 예쁜 손수건이다. 

승흥역

저녁이 되면 민박 식구들은 레스토랑에 모여 채식 요리로 속을 정화한 후 숙소로 흩어진다. 생활을 위한 생활에 집중하는 고요한 저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치유가 되는 밤이다. 그리고 새소리에 눈을 뜬다. 떠나옴을 알리는 낯선 소리다. 집 앞 작은 연못에는 닭과 오리, 칠면조가 모여들어 민박 식구들과는 달리 분주한 아침을 연다. 

상권이 잘 발달한 승흥역 주변

탁야소야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의 용등역(龍騰站, 롱텅짠)에는 새로운 즐길 거리가 생겼다. 승흥역(勝興車站, 셩싱처짠)까지 12km를 연결하는 레일바이크다. 용등역은 1913년 타이완 최고지대에 세워진 역이었으나, 1935년의 지진으로 선로가 지나는 교각이 무너지고 만다. 스산한 흔적만 남은 용등단교(龍騰斷橋, 롱텅뚜안치아오)다. 무너진 교각은 유적으로 남았고, 60m 거리에 지어진 새 선로는 효용을 다해 1988년 폐쇄됐다. 이곳 선로를 지나는 기차는 뛰는 아이들보다 느렸다고 한다. 그만큼 느린 레일바이크는 주변 풍광을 즐기기에 좋고, 관광지가 된 승흥역 주변은 상권을 누리기에 좋다.      

탁야소야로 가려면 싼이 기차역에 내리면 된다. 주중에는 기차역 픽업이 가능하고, 주말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소박한 아름다움
윈린(雲林)


후웨이(虎尾)는 고속철이 정차하는 윈린의 대표 도시다. 소도시로 취급될 규모는 아니나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도시다. 후웨이의 대표 여행지는 1920~30년대 행정 중심지였던 후웨이 합동청사(虎尾合同廳舍, 후웨이 허통팅셔)와 윈린 뿌따이씨 박물관(雲林布袋戲館, 윈린 뿌따이씨관) 등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오래된 건축물이다. 한때 후웨이의 가장 높은 건물로 위용을 뽐내던 합동청사에는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인 성품(誠品, 청핀)과 스타벅스가 들어섰다. 성품 자리는 경찰서, 스타벅스 자리는 소방서였다. 

경찰서 건물에 들어선 뿌따이씨 박물관. 당시의 유치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성품은 2004년과 2011년 아시아판 <타임>이 선정한 ‘아시아 최고의 서점’이다. 지금 타이완은 현대 사업을 결합시켜 역사적인 건축물을 되살리는 게 트렌드다. 성품은 그 대열에 후웨이 지점을 가장 먼저 합류시켰다. 리노베이션을 거쳤지만 계단, 벽, 창틀 등 기본 구조는 그대로다. 약간은 낡고 불편해도 그만의 멋이 있다. 같은 건물의 스타벅스 2층에는 일왕의 문서를 보관하는 함이 남아 있다. 도로 맞은편에 자리한 윈린 뿌따이씨 박물관 역시 경찰서였다. 성품 자리의 경찰서가 민원을 담당했다면, 여긴 강력계다. 당시의 유치장도 아직 남아 있다. 박물관에서는 타이완 인형극에 쓰이는 다양한 인형을 전시한다. 1980년대 90%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운주대협객>의 주인공도 있다. 인형 안에 손을 넣어 조종하는 뿌따이씨를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후웨이 합동청사의 경찰서 건물에 지점을 낸 성품 서점.

윈린의 작은 도시 베이강(北港)에는 베이강 차오티엔궁(北港朝天宮, 베이강 차오티엔꿍)이 있다. 타이완에서 가장 중요한 마조 사원으로 손꼽히며,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마조’는 중국의 푸지엔성에서 민간신앙과 결합해 탄생한 신격화된 인간이다. 섬나라 타이완에서 특히 숭배되는 바다의 신으로, 차오티엔궁에는 연간 100만명 이상의 참배객이 다녀간다. 각자의 소망을 품고 머리를 조아려 향을 바치는 참배객의 행렬 덕분에 사원의 공기는 매캐하다. 그 대열에 합류해 마조정전, 관음불조전, 삼궁전, 성부모전, 문창전, 복덕정신전, 주생낭낭전을 순서대로 돌아도 좋다. 각 신에게 바치라는 의미로 향 한 묶음에는 7개의 향이 들어 있다. 여러 묶음을 구매해 여러 개의 향을 바쳐도 된다. 

타이완에서 가장 중요한 마조 사원으로 손꼽히는 베이강 차오티엔궁

차오티엔궁은 마조 사원의 어미 격이다. 작은 사원에서는 차오티엔궁에서 기도를 받은 후 마조를 모시는데 친정에 다녀가듯 1년에 한 번씩 사원에 들른다고 한다. 작은 사원의 마조가 차오티엔궁을 들르는 날은 축제가 아니어도 축제 분위기다. 지역 특산물인 땅콩과 참기름을 파는 사원 앞 상가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타이난이 품은 시골 마을
베이먼 北門


문화 창작을 위해 남겨 놓은 찡자이지아오 염전

베이먼은 타이난의 북쪽 해안에 자리한 시골 마을이다. 1800년대 초·중반 제염업으로 번영했다가 일제 강점기 시절 소금 전매제가 폐지되며 쇠퇴, 1899년에 소금 전매제가 부활하며 다시 번영했다. 한마디로 소금이 없는 베이먼은 상상할 수 없다. 실제 베이먼은 타이완에 남은 유일한 염전 지역이다. 찡자이지아오 염전(井仔腳瓦盤鹽田, 찡자이지아오 와판 옌티엔)은 베이먼의 염전 중 하나. 다만 소금은 생산하지 않고 타이완에서 소비되는 소금은 전량 수입한다. 베이먼 관광안내소에서는 찡자이지아오 염전을 문화 창작을 위해 남겨 놓은 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소금과 문화 창작과의 관계는 알 수 없지만, 크지 않은 소금밭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행자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자두, 카레 등 여러 맛과 색을 가미한 소금 아이스크림과 소금을 넣어 즉석에서 만드는 연두부도 인기다. 

염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베이먼 관광안내소(台南北門遊客中心, 타이난 베이먼 요우커쭝신)에서는 2005년 베이먼 왕예항(王爺港)에서 발견된 14m 길이의 고래를 전시한다. 한때 타이완 국립박물관에 전시했던 진귀한 볼거리다. 인근 크리스탈 교회(北門水晶教堂, 베이먼 수이찡지아오탕)는 인스타그래머가 좋아할 장소다. 

순백의 크리스탈 교회. 웨딩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옌수이(鹽水)는 타이완에서도 가장 초기에 개발된 지역 중 하나다. 청나라 때 조성된 길이 400m, 폭 6.8m의 차오난 라오지에(橋南老街)에는 옌수이의 영화로운 과거가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옌수이는 소외됐다. 근대 들어 철도가 연결되지 않아 발전은 멈췄고, 시골 중의 시골로 남았다. 신잉으로 향하는 길이고, 소외된 옛 도시의 생김이 궁금하다면 들러 봐도 좋다. 1945년에 건립된 영성극장(永成戲院, 용청시위엔)이 라오지에와 멀지 않다. 

영성극장(永成戲院, 용청시위엔)

철도 수송에 옌수이가 소외되고 옆 동네 신잉(新營)에는 타이완 당업 철도가 연결됐다. 신잉에는 반쪽짜리 오분차(五分車)가 드나들며 설탕 공장의 물자를 실어 날랐다. 설탕 공장이 모두 문을 닫은 지금, 오분차도 운행을 멈췄다. 고요한 선로는 철도문화원구로 이름을 바꿔 오가는 여행자를 맞고 있다. 신잉의 산업을 이끌었던 설탕 공장 덕분에 인쇄 산업도 발전했다. 포장지 인쇄를 위해서였다. 자모만 7만개에 이르는 이곳의 인쇄소는 신문사를 능가한다. 옛날 인쇄 방식이 궁금하다면 탕푸 인쇄 창의관(糖福印刷創意館, 탕푸 인슈아 창이관)을 찾아 보자. 




기대에 부푼 대도시
까오슝 高雄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신 불타기념관

까오슝이 핫하다. 20년 만에 국민당이 정권을 잡으며 연일 공중파에 까오슝이 언급되고 있다. 새로운 시장은 관광 산업 육성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를 살릴 것이라 공포했다.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상당해 보인다. 

보얼 예술원구에는 개성 만점의 벽화가 가득하다

타이베이에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난 술 공장과 담배 공장이 있다면 까오슝에는 설탕 공장이 있다. 타이베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다. 까오슝 경전철(高雄輕軌, 까오슝 칭구이) 하마싱 역에서 보얼다이 역까지 이어진 노선을 따라 걷자.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선 철도 문화원구(鐵道文化園區, 티에다오 원화위엔취), 보얼 예술원구(駁二藝術特區, 보얼이슈터취)가 이어진다. 꾸미지 않은 오래된 건물은 순수해 아름답고, 벽화와 조형물로 장식한 건물은 화려해 아름답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길이다. 

보얼문화특구에는 개성 만점 작품들이 즐비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까오슝 시내에서 1시간가량 거리의 불타기념관(佛陀紀念館, 포투어찌니엔관)을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모시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로 경내를 조성했다. 진신 사리는 팔각 탑을 지나 보이는 거대 불상 근처 어딘가에 안치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알 수 없다. 부처님 시선 아래의 중생은 그저 보이는 것을 눈에 담고, 감탄하면 그뿐이다. 




TRAVEL INFO

   

AIRLINE

타오위엔 공항은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로 구분된다.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은 스카이트레인과 셔틀버스로 연결되는데 다른 항공편으로 환승하지 않는 이상 두 터미널을 오갈 일은 없다. 김포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은 타이베이 시내와 가까운 쏭샨 공항에 도착한다. 두 공항 모두 직항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사가 많다. 인천 까오슝 구간은 중화항공에서 매일 운항한다. 에바항공, 티웨이, 제주항공은 일부 요일에만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글·사진 이진경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타이완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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