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직장인은 퇴사가 목표입니다. 최근엔 조용한 퇴사나 조용한 이직도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죠. 조직 생활에 적응을 못한다(고 여겨지)는 MZ 세대들만의 특징일까요?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언젠가는 임원이 될지도 몰라' (대략 20년 후쯤?) '열심히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같은 거북이 경주엔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외인 점은 일잘러가 되고 싶은 사람 또한 많다는 겁니다. 일잘러가 못 돼서 퇴사하고 싶은 건지, 이미 일잘러인 사람들이 더 욕심을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목적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또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겠죠.
얼마 전 '일 잘하는 마케터의 AI 활용법'이라는 글을 올렸는데요. 그렇다면 '일을 잘한다는 건 뭔데?'에 대한 정의도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표를 정합니다.
회사에 다니는 게 힘들다며 불평하는 직장인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런 '선언'을 종종 듣게 됩니다.
난 딱 받은 만큼만 일할 거야
이런 말을 한 '많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감히 단언하자면 이분들 중에 일 잘하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받은 만큼도 못 할 가능성이 큽니다.
벌써 꼰대소리 한다고요? 어떻게 보실지 몰라도 제가 팀장이 되고 가장 먼저 한 게 출퇴근 자유제였습니다. 성과만 낸다면 출근 안 해도 좋다, 일주일에 하루만 일해도 상관없다는 게 제 생각이었거든요. (팀장이 맘대로 그래도 되냐구요? 광고회사 특성상 광고주 미팅 갔다고 하면 팀장 선에서 해결이 됐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팀원 한 명이 퇴근 못 하고 한숨만 쉬고 있길래 왜 집에 안 들어가냐고 물어보니 내일 광고주와 월간 미팅이 있는데, 보고서 때문에 밤샘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보고서 내용은 한 달 동안 이런 일들을 했다고 지루하게 나열하는 거더군요. 아마도 돈을 받으니 놀지 않았다는 근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일단은 수고 좀 하라고 하고, 다음 날 광고주 미팅에 같이 들어갔죠. 그리고 함께 참석한 광고주 쪽 임원 분께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성과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고할 테니 저런 '쓸데없는' 일로 시간낭비 안 했으면 좋겠다구요.
어떻게 됐냐구요? 그날부로 매월 100페이지에 달하던 PPT 문서는 만들지 않게 됐습니다. 그 대신 매월 무엇을 개선하겠다는 지표를 제시하고, 다음 달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보여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죠. (혹 떼려다 혹 붙인 거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겠네요)
여기서 무엇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바로 목표입니다. 공동의 목표인 셈이죠. 광고주를 직장 상사로, 대행사를 팀원으로 대치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우리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을 하면 우리는 목표 중심의 조직이 되어 갈 겁니다.
목표 설정은 왜 중요할까?
앞서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사람은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시킨 사람도,
하는 사람도 진짜 '왜'하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그냥 하는 거예요. 앞서 예를 들었던 월간 보고처럼 말이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보고서도 처음 하자고 한건 아마 광고주가 아니었을 겁니다.
처음 업무를 시작할 때 진행되는 일들을 매월 보고 드리겠다고 제안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순간 관행적으로 하게 됐는데, 부담이 되지만 갑자기 안 하겠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된 거죠.
그렇다 보니 받은 만큼 일한다는 마인드로 성과를 낸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 업무 시간 중에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거든요.
무슨 소리냐.. 분명 우리 팀은 매월 얼마 매출을 내고 있고, 그중 내가 담당하는 건 얼마..라고 반박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작 수익을 창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그럼에도 돈이 벌리고 있다면 그건 시스템이 버는 겁니다.
물로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면 프로 일잘러겠죠. 하지만 문제는 사장이나 임원분들도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심한 경우 직원들은 그냥 숟가락 얹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구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새로운 '목표', 즉 새로운 가치 창출이 중요합니다. 이 목표를 다른 말로 하면 '결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목표나 결과 위주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효율성'입니다.
얼마 전 어떤 칼럼을 보니 아침에 이런저런 쓸데없는 일들을 하다 보니 한 시간 후딱 가더라.. 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공감하는 분들이 댓글을 꽤 많이 남기셨더군요. '목표' 그리고 '결과' 위주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흔히 제안서 같은 것을 쓰다 보면 몇 주간의 시간이 주어지지만 정작 80% 이상의 작업은 3~4일 전부터 하게 되죠. 막판에는 예외 없이 밤샘을 합니다. 일이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납니다.
막판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이유는 그때야 비로소 '공통된 목표'가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 모두 지금 뭘 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물론..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게다가 X 줄이 타니 시너지가 일어나죠. 내일이 시험일 때 우리가 거의 한 학기 공부를 하루 만에 해치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럼 이런 상상도 해보셨어요? 이런 각성(?!) 상태로 항상 팀이 돌아가면 어떨까요? 물론 돈은 많이 벌겠지만, 계속 이렇게 일한다면 다들 번아웃이 돼서 퇴사할 겁니다. 게다가 쓸데없는 일 같아도 꼭 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구요. (항상 바쁘게 지내는 분들 집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너무 많은 욕심을 버리고, 지금 우리 팀의 업무를 4가지로 구분해 보세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나오는 내용이죠)
1) 중요하고 급한 일,
2)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3) 중요한데 급하지 않은 일.
4)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2번과 4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3번에 팀, 그리고 나의 역량을 집중한다면 아마 지금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둘째도 '효율성'입니다.
하지만 조금 결이 달라요.
어떤 업무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흔히 내가 할 수 있는 일, 익숙한 일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제가 광고주일 때, 대행사들 제안서를 받아 보면 회사 소개, 수상 내역, 뻔한 분석이 끝도 없이 나옵니다. 이렇게 밑밥 깔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짜증이 나죠.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결론은 갑자기, 그리고 싱겁게 끝납니다.
이유가 뭘까요? 기획을 하고, 제안서를 작성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착각이 들거든요. 제안서가 100페이지라고 하면 60~70페이지는 범용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에 회사 이름만 바꿔서 넣고, 환경 분석 같은 걸로 페이지를 채우죠.
광고주는 과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까요? 더구나 우리는 그 회사에 대해 처음 고민해 봤지만, 광고주의 마케팅 부서는 아마 매일 하는 일이 그 걸 겁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가능성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야기해 봤겠죠. 그럴 때 궁금한 건 과정이 아니라, 왜 수많은 옵션 중에 왜 하필 그 방향으로 정했는지와 결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가 핵심이어야 합니다. 여기부터가 진짜 내용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의도, 그리고 우리의 전략이 명확해야 합니다. 하나의 방향을 정해서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는 거죠. 흔히 이걸 디렉션이라고 합니다만.. 여기선 목표라고 할게요. 회사에서 디렉션이 명확한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자, 지금 하는 일 중에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끝을 내겠다는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일은 얼마나 되나요? 하다가 흐지부지 될 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진 않나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결론으로 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일이 그 방향으로 가게끔 만드는 작업에 집중해야 합니다.
To-Be가 명확해야 X밭을 피할 수 있습니다.
흔히 전략을 'A지점(As-Is)'에서 'B지점(To-Be)'로 가는 최적의 길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전략뿐 아니라 모든 일이 마찬가지예요. 내가 하는 일의 To-Be가 명확해야 어떻게 갈지, 지름길이 뭔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일을 잘하는 사람은 몇 수를 건너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 단계까지 빨리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디렉션이 불명확하다,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걸 왜 하고 있는 건가요?,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등등.. 우리가 뭔가 잘 안된다고 느낄 때, 불평하는 많은 말들은 대체로 목표의 부재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나도, 동료도, 직장 상사도 다 그 목표를 모른다면 (욕은 덜 먹겠지만) 함께 은하수를 헤매게 됩니다. 문제는 각자 다들 사정이 있어서, 내가 목표를 잘 모르는 건 괜찮다고 여긴다는 거죠. (나는 주니어니깐, 나는 중간에 끼어서 눈치 보느라, 나는 매일 같이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등)
그러고는 다들 남 탓만 합니다. '우리 상사는 명확한 디렉션을 주는 법이 없다. 어떻게 저 저리까지 갔는지 의심이 든다' '요즘 친구들은 일을 먼저 찾아서 하는 법이 없다. 하나하나 다 물어보려고 한다' '이 회사는 나 없으면 안 돌아간다. 나 혼자 일하는 것 같다'
자 그럼 나는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도,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실 조직이란 게.. 쓸모없어 보이는 일도 생겨난 이유가 있는 거고, 사장님 아들(이나 딸)이 아닌 이상 어느 날 갑자기 맘에 안 든다고 업무 스타일을 바꾸지도 못할 텐데, 새로운 제안을 했다가 결국 둘 다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되죠.
맞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이런 두려움 때문에 문제점이 보여도 섣불리 지적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나의 직장 상사가 일잘러가 아닐 경우는 더 두렵죠. (대부분 그렇죠)
여기서 타짜, 아니 일잘러의 마지막 원칙.. 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방어적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야기한 대로 당장은 일이 많아질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 새로운 제안을 하면 싫어하는 동료들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말해서 그거 감당 못하면 일잘러는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에 왜 이렇게 일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진짜 일을 못해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서입니다. 일잘러가 되기 무서운 거죠.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은 조직은 일 못하는 조직이 되고, 도전하는 사람이 더 많은 조직은 일 잘하는 조직이 됩니다.
그래도 작은 위안을 드리자면, 어느 정도 인정받게 되면 적당히 불합리한 일을 끊어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동료들이 (일 골라서 하는) 나를 싫어하는 것도 그냥 익숙해집니다. 난 정말 할 만큼 했는 데 우리 회사는 그릇이 안된다면 아마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가능할 겁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하잖아요.
비록 우리 회사는, 내 상사는 나에게 명확한 디렉션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가겠다..라는 것이 일잘러의 시작입니다. 아니면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배를 버리고 탈출하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