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인생을 헤매며 캐나다에 잠시 머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답은 없고 생각도 정리되지 않은 채 방황하고 있었지요. 남들은 다 제 갈 길 가면서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서 외로움이 컸습니다. 먼 이국땅까지 와서 고민을 짊어지고 외로움 속에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짐짓 쾌활한 척 했지만 속마음은 다 티가 났을 겁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만난 마음씨 좋은 캐나다 아줌마는 저의 이런 고민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어느새 그 분은 제게 캐나다에서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 고민은 대체로 이런 말로 시작했습니다. What if ~? ‘만약에 ~하면 어쩌죠?’ 짧은 영어로 ‘What if’를 수시로 쓰던 젊은 동양인을 볼 때 그 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느 날도 ‘이러면 어떡하냐? 저러면 어떡하냐?’하면서 아무 대책 없는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을 조잘거리는데 그 분이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No more what if! ‘만약에 어떻게 되냐는 말은 그만 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 학생상담센터를 찾아온 20대 중반의 남성 동진 씨를 처음 보았을 때, 어떤 표현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호기심 많은 불안.’ 어쩌면 상담자 자신에게 익숙한 느낌이라 대번에 알아차렸을 수도 있습니다. 동진 씨는 학생상담센터에 비치된 각종 홍보 용지와 프로그램 안내문을 하나씩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걱정이 너무 많고 불안하다며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상담실에서 그는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됐고 내년이면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무 준비가 안 된 것 같다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나, 들어보니 남들의 평균 이상은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평균 이상의 학점, 무난한 공인 영어점수, 대외 활동까지 요새 갖추라는 기본 구색은 갖추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만하면 충분히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다고 느껴졌지요. 그런데도 그는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이 불안해했습니다. 당장의 현실에서는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상담자의 말은 그의 한 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그대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자기의 불안이 과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한 학기 내내 불안에 대처하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연습하면서 조금씩 불안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만일의 사태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하는 그의 생각의 습관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불안을 기반으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 덕에 대학 입학 후 최고 학점을 받았습니다. 상담자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만약에 점수가 잘못 계산돼서 나온 거면 어떡하죠?”
그러면서 상담자가 듣기에도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을 갖추고 스펙을 쌓아나가고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며 그의 흔한 사고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주가 지나고 동진 씨는 대기업 인턴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이번에도 상담자가 취업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축하를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인턴을 하다가 자격 미달로 드러나면 어떡하죠?”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가 그런 내적 세계에 살고 있는 걸 어쩔 도리는 없었습니다. 동진 씨와 저는 그것을 ‘만약에 병’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방학 동안 약 두 달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그가 상담실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인턴 과정에서 최우수 팀에게 주는 상을 받아 온 상태였습니다. 그 동안의 불안과 걱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의 ‘만약에 병’이 이쯤에는 끝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크게 축하해줬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팀원들이 잘해서 그래요. 대기업 인턴까지 했는데도 취업을 못하면 그때는 어떡하죠?”
언제쯤 자기 몫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한숨이 작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늘 입에 물고 다니던 ‘만약에’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이후 상담은 그의 취업준비 상황에 따라서 어떤 때는 1주 간격으로, 어떤 때는 2주 간격으로 계속됐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그렇게 희망하던 S기업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그도 크게 기뻐하며 상담자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불안하게도 ‘그런데’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No more what if! 캐나다 스타일이 떠올랐지만 꾹 참고 물었습니다. 또 ‘만약에’를 쓰려는 요량이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정말 좋긴 한데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네요. 요새 입사 1년 안에 그만 두는 신입사원이 전체의 30프로라는데 제가 그러면 어떡하죠?”
어릴 적 친구 같았으면 뒤통수를 한 대 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정말 불안을 없애고 싶은 것일까? 이제 그만하면 됐습니다. 물어야 할 것을 물을 때가 됐습니다.
“만약에 불안이 더 이상 없으면 불안할까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지금 들어보니 맞는 말 같아요. 제게 불안은 삶의 동반자에요.”
“그렇다면 불안을 오히려 원하는 건 아닐까요? 그럼 불안하지 않으려고 할 게 아니라, 불안과 잘 살아보려고 하면 어떨까요?”
어리벙벙한 표정의 그는 그럴 수도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 뒤, 사실은 원하지도 않는 안정을 추구하지 말고 차라리 불안을 껴안고 살아볼 것에 대한 이야기로 몇 회기의 상담을 더 하고 동진 씨와의 상담은 종결이 됐습니다. 그도 이제 학생 신분을 벗어나 S기업을 본격적으로 다녀야 했으니까요.
그 후 그는 어떻게 됐을까요? 동진 씨는 두 달 후 연휴 기간에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감사했습니다. 상담 덕분에 제가 모르던 제 모습을 많이 알게 됐어요. 상사가 끝없이 ‘만약에’ 경우를 생각하라고 해서 더 열심히 ‘만약에’를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제 불안이 이렇게 쓸모 있는 곳은 처음이에요. 불안을 껴안고 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이해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