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편지 9

불안을 사랑한 사람. '만약에'라는 불안 중독

by 나무둘

안녕하세요 동진 씨.

잘 지내셨나요? 만약에 심리상담을 다시 오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고 오시겠습니까? 인생은 혹시 모르는 것이니까, 만약에 말이지요. 우리가 숱하게 이야기 나누었던 ‘만약에’를 다시 시작한다면 어떤 만약을 이야기하시려는지요?


처음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 찾아오셨을 때 센터 내에 비치된 거의 모든 홍보물과 안내문을 읽어보던 동진 씨가 생각납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하나씩 꼼꼼히 읽어 보셨지요. 모든 가능성과 장애물을 검토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시작된 상담. 대부분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가끔씩 흔들렸던 동공은 내면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된 가정법, 만약에. 우리가 ‘만약에’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면 달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짐작도 안 될 정도로 참 많은 만약을 이야기했지요.


성적을 잘 받았는데 혹시 채점 오류일까 봐, 대기업 인턴에 합격했는데 혹시 자격 미달로 중도 탈락할까 봐, 대기업 인턴 최우수 팀에 뽑히고도 취업을 못할까 봐, 급기야 그토록 원했던 기업에 합격했는데 1년 안에 그만둘까 봐 등등. 마치 새로운 불안을 발굴하지 않으면 더 불안하기라도 한 듯 불안거리를 찾으셨지요. 우리가 농담으로 주고받았던 미어캣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근무를 마치고 쉬러 들어갔다가 약간의 기미라도 보이면 지진이라도 난 듯 벌떡 일어나 자진해서 교대 근무를 하러 나오는 미어캣. 자기 모습이 마치 아주 잘 훈련된 미어캣 같다고 하셨지요. 희망적인 소식 중에도 여진처럼 남아 있을지 모를 불안 요소를 감지하는 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우리는 지진의 근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감지할 수 없기에 미지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지진을 느끼는 것은 최초의 지진이 아니라 지진의 흔적을 느끼는 것이지요. 우리는 안에 있던 것들이 겉으로 드러났을 때에야 감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들을 감각할 수 있을 뿐입니다. 동진 씨는 그것을 불안의 형태로 경험한 것이지요.


근원을 직접 알 수 없다는 점은 인생살이의 본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어떻게 태어나서 이 삶을 살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과학적인 설명을 할 수야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요. 다들 어느 날 문득 삶이 존재해서 하루하루 미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삶을 사람들은 무작정 살아갑니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생명. 어떤 단서도 의미도 없이 출발한 삶. 누구에게나 삶은 미지의 것이며 그래서 불안합니다. 게다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수많은 ‘만약에’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삶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것투성이입니다.


수많은 만약을 가정할 수 있는 인생. 동진 씨가 만약을 피하고 싶어 한 만큼 수없이 많은 만약에 경우를 생각하며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지요. 불안이 실제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따져 보아도 좀처럼 멈출 줄 몰랐던 ‘만약에 병’. 상담자가 교육 받은 불안에 대한 심리치료법을 전부 무색하게 만든 ‘만약에 병’. 끝없는 ‘만약에 병’에는 전통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동진 씨의 불안은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삶의 동반자로 함께 해 왔던 불안.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습니다. 일평생 함께 살아왔으니 이제 정말로 불안을 동반자로 대접할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의 속도에 맞추기. 불안이라는 파트너와 정확한 스텝으로 춤추기. 그저 그렇게 불안하며 살기. 불안을 껴안고 살기. 우리가 함께 도전했던 것들이지요. 만만하지 않은 동진 씨의 불안을 상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반적인 심리상담 과정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야 했습니다. 될 듯 말 듯 진척이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했던 이 시간. 아쉽게도 시간은 금세 지났고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첫 출근을 위해 상담을 마무리해야 했지요.


동진 씨와 상담을 하면서 기존에 하던 생각을 더욱 분명히 하게 됐습니다. 삶은 해변의 모래성 같다는 생각. 삶은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집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닷가에 쌓아 올린 모래성처럼 어느 날 파도에 휩쓸려 흩어질 수도 있는 것이 삶입니다. 불확실하게 시작해서 매순간이 불확실한 것. 우리는 온갖 눈속임을 동원해 그 사실을 망각하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이 진실한 삶의 본모습입니다. 삶이 완전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름다운 착각에 불과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동진 씨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삶을 살아왔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진실했지만 미완이었던 상담은 뜻밖에도 첫 직장생활에서 완성이 되었지요. 불안을 껴안고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실전에서 이해하게 됐다던 문자 한 통. 온갖 만약에 경우에 대비하라던 상사의 요구에 자기의 불안이 그토록 쓸모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고 동진 씨가 문자를 보내왔던 날. 예상하셨겠지만 문자를 받고 가벼운 마음에 웃음이 슬쩍 터졌습니다. 그리고 상담 시간에 나누고 싶었으나 다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삶은 탄생 Birth과 죽음 Death 사이의 선택 Choice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폴 샤르트르 철학자의 유명한 말이지요.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삶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변화 Change다.’


함께 한 상담을 기억하며 노파심에 사족을 달고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삶은 곧 변화이며, 늘 변화하는 삶은 불안하고 떨리기 마련입니다. 불안하고 떨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살아있는 세포는 늘 떨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세상 만물이 진동하고 있다고 하지요. 만에 하나라도 심리상담에 돌아오고 싶거든 떨림은 생명 현상의 본질이며 살아있다는 것의 극적인 표현임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불안을 껴안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동진 씨. 미어캣 같은 동진 씨만의 감각으로 불안뿐만 아니라 성공과 희망도 기민하게 예감하고 사시길 기원합니다.



▼ 동진 씨와의 상담 사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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