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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Mar 07. 2023

치워야 할 먼지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에요.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라디오 진행 직후에 시작하는 경쾌한 청소. 

오늘 나무들 라디오에서는 

'감동받는 삶, 감격스러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감동받으며 살고 있는가? 

일상에서 감격스러운 순간이 얼마나 있는가? 

평범한 일상에서 그걸 느낄 수 있는 시인의 눈을 가졌는가?  


밝은 주제를 다루어서인지 

아침부터 기분이 산뜻했습니다. 

청소를 하는 것이 꼭 춤을 추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것 봐요 동네 사람들! 

나는 매일 아침 청소로 춤을 춰요. 


어제는 이곳에서 집단 프로그램을 해서

머리카락이 바닥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바닥에 굴러 다니는 머리카락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요.


머리카락이 안 빠지게 할 수는 없을까? 

머리가 짧은 사람만 입장하게 할까? 

아예 대머리만? 

이런 망상을. 

장사를 안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소중한 고객님들 대부분이 머리가 긴 현실인걸. 


예전에는 당장 치워 버려야 할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머리카락이 

오늘은 약간 다르게 보입니다. 


어제까지 4회에 걸쳐 함께 했던 사람들. 

우리가 함께 물들인 따듯한 만남의 장.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던 훈훈한 시간. 

그 시공간에서 우리가 남긴 머리카락. 


오호.

이건 당장 치워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삶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카락이 단지 머리카락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먼지가 단지 먼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흔적입니다. 

내가 삶에 들인 정성입니다. 


나는 어디를 가든지 

내 몸에서 먼지를 떨어뜨리고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며 삽니다. 

그것이 그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자연스럽게 공간과 하나가 됩니다. 


내 삶이 묻어있는 것. 

나라는 존재가 배어있는 것. 

나를 잠시 한 시공간에 눌러 담았던 것. 


내가 남기는 것은 

그저 먼지나 머리카락이 아닙니다. 

내 삶의 흔적이고 

내가 살아온 발자취이고 

앞으로도 이어질 나의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입니다. 


그것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리 보니 살짝 기쁜 마음마저 듭니다. 


바닥의 머리카락을 보고도 기쁠 수 있다니, 맙소사. 

나는 드디어 시인의 눈을 가지고 말았다! 


당신은 매일 무엇을 흘리며 사나요? 

거기에는 어떤 정성과 애환이 담겨 있나요? 

당신의 남긴 흔적이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나요? 


우리 오늘 

나의 흔적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직접 살아온 이 삶. 

그 흔적을 소중히 여기며 

눈물과 슬픔 속에서도 

웃음과 기쁨을 바라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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