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월 미낙극장과 렌즈앤드
미낙극장(The Minack Theatre)은 포스 큐르노 해변 바로 옆 언덕 너머에 있다.
*미낙(Minack) : 코니쉬 말로 "돌이 많다"는 뜻
미낙극장 설립자 로웨나 케이드는 1920년대 초 콘월로 이사하여 자신의 집인 미낙 하우스를 지어 그곳에 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정원 아래의 절벽이 완벽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부터 이곳에 극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극장 건립과정은 무척 어려웠다. 그녀 자신이 공사 과정의 많은 부분을 이를테면 모래운반, 돌 운반 등과 같은 일을 정원사 빌리와 직접 했다. 로웨나는 80세까지 극장 작업을 계속하다 90세에 사망하는데 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한 50여 년의 기간 동안 이 극장 건설에 매진했다.
극장을 만든 후 로웨나 케이드는 극장에서 공연한 연극의 이름과 날짜를 돌 의자 등받이에 새겨 넣었다.
황폐한 낭떠러지였던 이곳은 로웨나 케이드의 평생 작품이다. 극장 중간쯤에 있는 화강암 명판은 그녀의 업적을 표시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기념물은 미낙극장에 있는 모든 돌과 모든 풍경이다.
미낙극장은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미낙극장 입구에 있는 홍보관에서 본 설립자 로웨나 케이드의 사진,
바닷바람에 흰머리를 날리며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상연되는 연극이 있어 예매를 하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별로 없던 공연장 주변에 신기하게도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정해진 선에 따라 줄을 서기 시작했다.
관객석은 절벽을 깎아 만든 극장이라 경사가 가파르지만 객석에 앉았을 때 약간 뒤로 비스듬히 눕듯 의자가 설계되어 있어 편안하다. 이 극장에서는 로웨나가 좋아했던 셰익스피어 공연과 코미디, 비극, 광대극, 오페라, 팬터마임, 콘서트 등의 공연을 하고 있다.
연극 공연이 없을 때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지만 공연이 있으면 공연 티켓을 가진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공연 티켓은 사전예매를 할 수도 있고 현장에서 구입할 수도 있다.
극장 입구에 미낙극장과 드넓은 대서양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다. 푸른 바다를 보며 천천히 차를 마시는 것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정해진 좌석이 없으니 마음에 드는 곳에 앉으면 된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미리 준비해 온 와인이며 간식을 먹으며 연극을 충분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뜨거운 햇살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긴 연극에 조금은 지쳐 1부가 끝난 휴식시간에 극장을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미낙극장에 앉아 바라보던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와 하늘, 불어오는 바람과 야외극장의 분위기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미낙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한다면 미리 상연되는 연극에 대한 정보와 긴 연극시간을 대비한 간식, 모자, 방석 등을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연극을 보는데 무대 뒤 망망한 바다에 배 한 척 떠 있다.
문득, 저 배에서 미낙극장을 보면 참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낙 극장에서 바라본 포스 큐르노 해변, 물이 들어와서 모래사장이 많이 잠겼다.
펜잰스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종점이 렌즈 앤드인 버스가 왔다.
시간도 남고 해서 버스를 탔다. 렌즈 앤드는 우리나라 땅끝마을쯤.
포스 큐르노 정류장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가면 렌즈 엔드이다. 1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고 입구에 상가가 있어 간식을 먹거나 쇼핑을 할 수 있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렌즈 앤드의 물빛과 하늘빛은 감탄스러웠다.
나오는 길에 콘월지역 전통 음식인 코니쉬 패스티를 먹었다. 따끈한 코니쉬 패스티는 바삭한 빵과 풍부한 속재료가 들어가 있어 한 끼 식사로 충분했다.
코니쉬 패스티는 광업이 발달한 콘월 지역에서 광부들이 먹던 점심식사였다.
패스트리 반죽 속에 소고기, 감자, 양파, 순무 등을 채워 넣고 반달 모양으로 구워낸 파이이다.
광부들이 더러워진 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이 있다. 먹고 나서 손잡이는 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펜잰스의 바다는 그 자체로 작품이다.
이층 버스를 타고 펜잰스로 돌아오는 길,
지붕 없는 이층 버스에 앉아 바람을 온 몸과 온 머리로 얼얼하도록 맞으며 머릿속에 있는 어떤 것들이 시원하게 씻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주 깨끗이... 볼을 때리는 나뭇가지 조차도 기분 좋았던 날.
펜잰스로 돌아와서 맡겼던 짐을 찾고 숙소로 향했다.
펜잰스역에서 숙소가 멀지는 않았는데 주택가라서 길 찾기가 어려웠다. 헤매다 드디어 찾았다. 주인장 비키가 문 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녀는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무척 반겨주었다. 게다가 우리의 이름을 다 외우고 있어서 우리를 감동시켰다.
이층 주택에서 주인장 비키는 1층에 살고 우리는 이층에 머물렀다. 오래되고 잘 관리된 아름다운 주택이었다.
주인장 비키는 쿨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근데 지금까지도 좀 미안한 게 있다.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펜잰스의 가게들이 오후 4시면 모두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이 저녁 10시까지 영업을 하는 테스코 마트에서 장을 본 다음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어야 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조식이 제공되어 조리는 가능하지 않은 걸로 예약한 상태였다. 사전에 부엌을 20분 정도 사용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니 다행히 비키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자신의 양념들과 조리도구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요리만 해서 이층 우리 숙소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근데 배가 고픈 우리는 스테이크에 야채 등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사고 말았다. 게다가 다음날 체크아웃을 해야 해서 식재료를 다 소비해야 했다.
부엌을 잠깐 사용한다고 하고 요리를 했는데 가지고 올라가기에는 종류가 많아 힘들었다. 때마침 비키와 남편이 보이지 않아서 외출한 줄 알고 우리는 편하게 부엌 식탁에서 와인과 함께 만찬을 즐겼다.
식사를 거의 해가고 있는데 비키가 와서 자신들도 저녁식사 조리를 해야 하니 주방을 천천히 정리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친절한 그녀에게서 살짝 언짢은 기색을 느낀 우리는 사과를 하고 정리를 했다. 너무도 미안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비키와 남편은 간단한 스파게티 같은 것을 해서 자신들의 방에서 먹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 때문에 저녁식사를 늦게 하는 것 같아 더 미안해졌다. 거기다 한국인인 우리가 외국에 나와서 국위선양(?)은 못할 망정 내 나라를 욕 먹이는 건 아닌지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조식을 준비해 준 비키는 첫 만남처럼 상냥하고 우리를 환대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게다가 시원찮은 우리의 영어실력을 칭찬까지 해줬다. 자신은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 다른 나라말을 이렇게 잘하다니 대단하다고.
그렇기는 하다. 그놈의 영어를 중학생 때부터 했는데 이 정도 의사소통밖에 안 되는 것이 대단하기는 하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주 한참 후에 에어비앤비에 들어갔더니 뜻밖에도 그녀는 우리가 최고의 게스트였다고 칭찬의 글을 남겨 놓았다. 더 미안해졌다. 나도 고맙고 미안했다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여행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