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닥꼬닥 마을길, 올레 16코스

아름다운 마을길과 사람들

by 정안

추자도에서 제주항에 도착한 게 저녁 7시, 바로 택시를 타고 숙소에 들어왔다.


예약한 숙소가 좀 외지고 노후된 곳이라 빨리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작은 마을이었다. 1층에는 가족(딸과 부모님)이 살고 있고 숙소는 이층이었다. 잘생긴 진돗개가 내가 왔음을 알려주자 주인집 따님이 나와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챙겨줬다. 1인실이 없으니 4인실 방을 쓰라고 했다. 방에 들어가니 한라봉 세 개와 음료수가 놓여 있었다. 숙소 앞이 한라봉 밭이었다. 한라봉 농사를 짓고 계셨다. 정겹고 고마웠다. 이틀 동안 과일 구경도 못했는데 너무 반가워 세 개를 한 번에 다 먹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은 한라봉 세 개로 때웠다.


별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숙소의 건물만 노후되었지 나머지는 편리했다. 특히 하얗게 빨아 햇빛에 말린 뽀송한 수건이 좋았다. 위치도 올레 16코스와 17코스 출발 지점 바로 옆이었다.


따뜻한 침대에서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신기하게도 피로가 풀려 있었다. 다시 걸을 힘이 났다. 아침은 편의점에서 구운 계란과 요플레, 사과를 사서 먹었는데 어제저녁 그냥 들어와서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검색해 보니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서 일찍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는데 주인집 따님이 나와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며 한라봉 두 개를 걸으면서 먹으라고 주었다. 아... 난 감동했다. 인사도 한라봉도 정겨웠다.


마을길을 따라 큰길로 나가니 숙소가 그렇게 외진 곳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작은 음식점들, 주민센터, 예쁜 독립서점도 보였다. 식당들은 하필 오늘 휴무라고 대부분 쓰여있었다. 더 걸어가다 보니 영업 중이라는 순댓국집이 있어서 들어갔다. 근처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식사 중이었다. 순댓국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걸을 생각에 한 그릇을 다 먹고 부랴부랴 올레 16코스 함께 걷기 시작 장소로 갔다.


올레길 함께 걷기를 신청해서 걸으면서 참여자가 이렇게 많은 날은 처음 보았다. 봉사자 두 명 포함해서 스물여덟 명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코스도 걷기 편해서 그랬나 했더니 오늘이 일요일이었다. 제주에 와서 요일 감각이 사라졌다.


올레 16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었다. 올레 16코스 역방향은 광령초등학교 근처 호끌락북카페 앞에서 출발해서 마을길을 지나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수산봉 정상을 넘어 구엄어촌마을과 신엄항을 거쳐 고내포구에서 마무리하는 코스이다. 총길이 15킬로미터의 걷기 좋은 길이다.


봉사자가 출석체크를 하는데 추자도에 같이 갔던 사람이 아는 체를 한다. 반가웠다. 올레꾼들은 함께 걷고 헤어질 때 이렇게 말한다. "길에서 만나요" 올레길을 걸으면서 한번 같이 걸었던 사람을 길에서 다시 만난 경험이 세 번 정도 있었다. 두 번 만난 사람도 있었다. 올레길 함께 걷기는 혼자 온 사람들이 많이 신청해서 만날 확률이 높기는 했다.


출발해서 조금 걷다 보니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앞을 지나갔다. 향림사라는 절에서 화장실을 모두 다녀온 후 마을길로 들어섰다. 마을길이 너무 예뻤다. 적당한 언덕과 숲길, 마을의 소박한 집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한창 초록을 자랑하는 청보리 밭이 넓게 펼쳐진 곳이 나왔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눈도 마음도 시원해지는 풍경이었다. 앞서서 청보리밭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 장이 풍경화였다.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았는데, 걸은 길이를 보니 3.8킬로미터였는데 중간 스탬프가 있었다. 항몽 유적지인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였다.


조금 더 걸어서 점심을 먹을 식당에 도착했다. 정식집이었는데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 깔끔한 반찬이 나왔다. 이른 점심이고 아침에 순댓국을 한 그릇 다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앞으로 걸을 일을 생각해서 다 먹었다.


밥을 일찍 먹은 나는 식당 주인장의 아드님이 하는 바로 옆 카페에 가서 디카페인 커피를 시켰다. 사람을 반기는 예의 바르고 따뜻한 표정의 청년이었다. 커피가 나와서 한 모금 마시고 놀랐다. 살짝 산미가 돌면서 신선한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내가 커피컵을 들어 보이며 맛있다고 입모양으로 말하자 청년은 감사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카페 손님이 많아지자 옆 식당에서 일하던 누나가 와서 도와줬다. 한 건물에서 부모와 딸은 식당을 아들은 카페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따뜻해 보였다. 손길은 느리지만 열심히 서빙을 하는 아버님의 선한 모습과 더불어.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사람이 많았지만 다들 질서를 지키며 잘 걸었다. 함께 걷기를 하면서 느끼는 건대 참여자들은 다 잘 걸었다. 그리고 대부분 쿨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런 점이 편안했고 길을 걸으면서 느끼고 싶은 각자의 감정을 방해하지 않았다.


얼마쯤 걸어서 오래된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쉬었다.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나눠먹고 봉사자분은 모두에게 과자 하나씩을 나눠줬다. 그리고 이벤트가 있었다. 봉사자분 중 한 명이 시를 낭송해 주었다. 백석의 시와 올레길에 대한 자작시였다. 아주 긴 시였는데 외워서 낭송했다. 근데 참여자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학교 때는 보이지 않았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시낭송을 듣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신기한 일이었다.


다시 걸어서 수산봉 정상에 올라갔다. 높지는 않아서 산책하듯 가볍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얼마간 걸으니 마을길이 끝나고 바다가 나왔다. 구엄어촌체험마을에 있는 현무암의 너럭바위가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 위에 구엄리 돌염전이 있었다.


구엄리 돌염전은 현무암 바위 위에 진흙으로 둑을 쌓아 소금을 생산했던 곳으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다. 소금빌레('빌레'-제주어로 너럭바위) 즉, 바위 위의 염전으로 현무암 바위 위에 붉은 진흙으로 칸을 막아서 바닷물을 부어 햇볕과 바람으로 말려 소금을 얻는 곳이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품질이 좋아 '구엄 소금'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1950년대까지만 명맥이 이어지고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다. 현재 모습은 복원된 것이라고 한다.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시원해서 걷기 좋았다. 구엄리를 지나 바닷길을 걸어 고내포구에 도착했다. 종점 스탬프를 찍고 났는데 누군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가실 분 같이 택시 타자고 해서, 한자리 남았다고 해서 정신없이 택시를 타느라 걷는 내내 수다를 떨던 추자도 동행에게 인사를 못했다. 편하게 오기는 했지만 마음에 걸려서 추자도 오픈 채팅방에 글을 올렸더니 자신도 버스가 와서 정신없이 탔다고 했다. 우리는 길에서 만나자고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올레 16코스의 아름다운 마을길과 청보리밭을 마음에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들어오기 전 동네를 산책하며 저녁과 아침 식사용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숙소 진돗개 보리가 반기듯 왕왕 짖었다. 다시 주인집 따님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나는 한라봉 얻어 먹는게 미안해서 몇개 살 수 있냐고 하자 숙박객 드시라고 입구에 놓아둔 거라며 다섯개를 집어서 드시라고 준다. 시골 외갓집에 온 느낌이다. 정말 이 숙소 매력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