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올레 18코스

그리고 아라리오 뮤지엄 '구본주 작가전'

by 정안

오늘은 올레 18코스를 걷는 날이다.

함께 걷기를 신청했다. 길안내 봉사자 두명 포함해서 열다섯명이 출발했다. 그런데 오늘 걷기에는 특별 손님이 있었다. 사진 작가가 함께 걸으면서 걷는 모습 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다. 봉사자 두분은 연세가 있으신 남자분들이었는데 서로 형님 동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올레 18코스는 김만덕 기념관에서 출발해서 사라봉 공원과 잃어버린 마을 곤흘동과 삼양해수욕장을 거쳐 삼화포구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닭모루 해변과 대섬을 거쳐 조천 만세동산 맞은편에서 걷기를 마무리 하게 된다. 총길이 17킬로미터이다.


제주항을 보며 걷다가 마을길로 들어섰다. 마을길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마을길이 끝나고 사라봉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많은 계단을 걸었다. 숨이 턱까지 찼지만 올라가니 제주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사라봉을 내려가는데 숲길과 바다옆 산길이 너무 예뻤다. 제주시는 아직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서귀포시는 피었다고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걷는 풍경에 변화가 생겼다. 땅에서는 온갖 풀들이 연두색으로 새잎을 내고 자잘한 꽃들도 지천으로 피어났다.


아름다운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잃어버린 마을 곤흘동이 있었다.

곤을동은 제주 4·3 사건의 참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이다. 곤을동은 67가구가 살던 평화로운 반농반어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49년 1월 4일 국방경비대 군인들이 무장대에게 협조했다는 구실로 안곤을과 가운데곤을의 모든 집을 불태웠고, 주민들을 인근 화북초등학교 등에 수용했다가 다음 날 화북 바닷가에서 모두 학살했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 불태우지 않았던 밖곤을까지 모두 불을 질러 마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마을 주민 수십 명이 희생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인근 마을로 흩어져야 했다. 마을은 단 이틀 만에 지도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다.


제주에는 4·3으로 사라진 마을이 100곳이 넘지만, 곤을동이 특히 상징적인 이유는 보존 상태 때문이다. 다른 마을들은 이후 경작지로 변하거나 건물이 들어섰지만, 곤을동은 집터와 올레(골목), 텃밭의 밭담이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금세라도 사람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이 살았던 방과 부엌의 구조를 짐작하게 하는 돌담들과 골목길, 주민들이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만들던 바위 평지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없었다. 지금은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이지만 그때는 주민들이 끌려갔던 죽음의 길이었다. 명치 끝이 아프고 먹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걸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는데 맞바람이 있어 시원하고 기분좋게 걸을 수 있었다. 화북포구를 지나 검은모래 해변인 삼양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해변을 걷고 있었다. 어제처럼 혼자였다면 신발을 벗고 들어갔을텐데 함께 걷다보니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우리 걷는 모습을 틈틈이 찍어주던 사진작가께서 점심을 먹고 나서 해변에서 참가자 모두의 독사진을 찍어 주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주면서도 늘 웃음기 가득이었다.


삼양해수욕장 정자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마을길로 접어들어 걷다가 다시 해안길로 내려갔다. 바닷가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감사인사를 하며 지나왔다. 이런 손길들이 있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게 고마웠다. 함께 걷기 참여자 중에도 항상 두명 정도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맨뒤에서 청소를 하며 함께 걸었다. 올레길이 나에게 주었던 행복감을 생각하며 나도 올레길을 위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해안길을 지나 내수면길로 들어섰다. 바다와 마을 중간에 용천수가 나오는 들판같은 길을 나는 좋아한다. 길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중간중간 현무암 사이로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바다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고 마을은 멀지 않다. 이 중간지대의 쓸쓸함이 나를 매료시킨다.


신촌리와 연묵정을 지나 조천만세동산에서 걷기를 마무리했다. 버스를 타고 오려는데 시작점으로 가는 차가 있어 몇명이서 같이 타고 편하게 왔다. 오면서 제주에서 일년살기를 이년째 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이런저런 좋은 정보를 들었다. 제주에서 6개월 정도 지낼 계획이 있으면 아예 1년 연세방을 구하느라 훨씬 경제적이라고 했다. 이러다가 집에 갈 즈음에은 제주에서 일년 살 계획을 세우고 있을것 같다.


돌아와서 어제 못간 김만덕 기념관에 먼저 갔다. 김만덕이라는 정조시대 여성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음으로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 동문모텔 II에 전시를 보러갔다. 표를 끊는데 동문모텔 I, II와 탑동 시네마점까지 3개가 근처에 다 있어서 연계해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시간도 있고 해서 그렇게 했다.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은 국내 최고의 컬렉터 김창일 회장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으로, 제주 원도심의 버려진 건물들을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단순한 전시를 넘어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이 커서, 미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공간의 분위기를 즐기러 가기에 아주 매력적인 장소이다.


총 3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각각이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탑동시네마는 영화관이었던 붉은 벽돌 건물을 개조하여 층고가 높고 탁 트인 공간에 대형 설치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동문모텔 I은 산지천 근처의 옛 모텔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방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구석구석 미로를 탐험하듯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동문모텔 II 역시 옛 모텔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삼각형 계단 등 기하학적인 구조가 특징인 전시장이다.


먼저 동문모텔 II 전시를 봤다. 1층부터 5층까지가 전시장이었는데 '구본주 작가전'을 하고 있었다. 별기대 없이 가볍게 갔다가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마음이 요동쳤다. 잊었던 어떤 것들이 나를 엄습했다.


<아빠의 청춘 II> <미스터 리> <아빠의 청춘 I> <디 엔드> <생존의 그늘>


<파업 1> <파업 2> <파업 3>


<파고다 공원에 파랑새는 없다> <이 과장의 40번째 생일날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미스터 리> <가족_편안한 귀가>


<데드 마스크>

세상에서 가장 슬픈 데드마스크.

조각가 구본주의 데스마스크. 2003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이 된 후, 성치 않던 몸은 장례식장에서 수습되어 염을 마치고 동료 조각가(박장근, 설총식)에 의해 석고로 떠져 브론즈로 캐스팅되었다.


<별이 되다>

한 개 층을 가득채운 작품 '별이 되다'. 이 작품은 구본주 작가의 유작이다.


"구본주의 유작(遺作)인 <별이 되다>는 폴리코트에 야광 안료를 섞어 만든 1천개의 샐러리맨 조각들을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설치한 작품이다. 작가는 천 개의 불상을 제작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하나 하나의 조각에 정성을 담아 각각 다른 형상의 샐러리맨으로 제작하고자 하였으나, 단 3개의 조각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사후, 유족과 제자 그를 사랑한 동료들에 의해 캐스팅한 조각으로 완성되었다"


구본주(1967~2003) 작가는 한국 현대 조각사에서 '천재 조각가'로 불리며, 1990년대 리얼리즘 조각의 정점을 보여준 예술가이다.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으나,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와 생동감으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구본주 작가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과 노동자의 삶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_배 나온 샐러리맨: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었지만,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배가 나오고 지친 표정을 한 한국의 아버지들을 형상화했다.
_현실 비판과 해학: 단순히 슬프게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과장된 비례와 역동적인 동세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날카로우면서도 해학적으로 풍자했다.
_독보적인 표현력과 재료의 사용 : 나무, 철, 브론즈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나무의 거친 질감을 살려 인간의 생명력과 강인한 의지를 표현한 작품들이 유명하다.
_역동적인 동세: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근육의 움직임이나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적 울분을 시각화했다.

"나는 내 조각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삶을 위로하기를 바란다." (작가의 생전 철학 중)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와 동문모텔 I의 작품들도 파격적이고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처음 본 전시 '구본주 작가전'에 강하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구본주 작가의 작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나머지 전시를 봤다. 오래전 나를 뒤흔들었던 감정이 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