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단순한 삶 02화

옷장을 비워라

가장 좋은 것만 남기자.

by 정안

옷장을 열었다.


옷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입을 옷이 없어 틈만 나면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고 퇴근길에 옷가게가 보이면 구경하다 뭔가를 사 가지고 나왔다. 나중에 보면 비슷한 옷,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투성이었다. 싸다고 사고 유행 따라 사고 욕구불만을 채우기 위해서 샀다.

내가 이렇게 별로인 옷을 왜 샀을까... 무엇보다도 옷장에 많은 옷을 꽉 끼게 넣어두니 아침에 급하게 입으려면 다림질을 해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이 옷 저 옷 입어 보다 짜증을 내며 겨우 꿰어 입고 출근하기 일쑤였다.


계속 옷을 샀는데 늘 입을 옷이 없는 이상한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나는.


어느 날 읽게 된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들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

매혹적인 새로운 세계였다. 읽을수록 당장 실천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주말에 제일 먼저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옷장에 있는 옷을 모두 꺼냈다.

허걱! 어마어마했다. 평생 입어도 다 못 입을 것 같은 양이 나왔다. 어쩜 양말 종류도 가지가지로 쏟아져 나왔고, 속옷도 종류별로 많기도 했다. 손수건도 스카프도 꽁꽁 숨어있다 내놓으니 그 양이 놀랄만했다. 사은품으로 주는 등산양말도 몇십 켤레가 있었다.


거대한 옷무덤에서 버릴 것이 아니라 남길 것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았던 옷,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옷은 골라서 일단 옷걸이에 걸었다. 고민이 되는 옷은 별도의 상자에 담았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될 정도의 옷들도 따로 분류했다.


양말이나 속옷은 상태가 제일 좋은 것만 남겼다.

10개가 넘지 않도록 골랐다.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빨래를 하므로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스카프도 자주 손이 가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것만 남겼다. 비슷한 것이 두 개 있으면 하나는 버렸다. 비싸게 샀지만 손이 가지 않는 것도 버렸다. 누워만 있는 스카프는 내게 아무 의미도 아니다.


이 정도 하고 나니 반 정도는 추려졌다.

명백한 쓰레기는 50리터 쓰레기봉투 몇 개에 담아 바로 버렸다. 고민하면 버리지 못한다. 손때가 묻고 추억이 있는 내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고민 상자에 분류한 옷을 가지고 다시 골랐다. 다시 선택받은 옷과 타인에게 줄 것으로 나누었다. 선택받은 옷들은 옷걸이에 한 줄로 쭈욱 걸었고 다시 한번 살펴봤다. 이번엔 버릴 것을 골라냈다. 며칠 후에 다시 보면 버릴 것이 또 나올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에 가지고 갈 옷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뭐가 묻지는 않았는지 입을만한지 고르고 골랐다. 대형 쇼핑백으로 5개가 나왔다. 차 트렁크와 뒷자리에 가져다 실어놨다.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며칠 후 아름다운 가게에 가지고 갔더니 쇼핑백 1개 분량은 판매가 불가능하다고 돌려주었고 나머지는 기부금 영수증을 9만 5천 원 발급해 주었다. 정리하고 기부도 하고 아주 신나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올 때 이사업체에서 견적을 내고 이사하는 날 이삿짐 나르는 분들이 우리 집 물건을 빼내고서 당황을 했다. 수납장에 꼬약꼬약 잘 정리를 해놔서 견적을 낼 때에는 짐이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꺼내 놓으니 1.5배는 된다고 했다. 결국 비용을 더 내고 차를 한대 더 불렀다.


수납은 마법이 아니고 어딘가 잘 집어넣어 안 보이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보이지 않아 제때 입을 수도 없다. 정리를 하다 보면 수납장이 빌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수납장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보이도록 수납한다. 그래야 사용할 수 있고 중복해서 사는 일이 없다. 크고 작은 수납장들을 버리고 선반 바닥에 그대로 수납을 했다. 옷장을 열면 물건들이 거의 한눈에 보이도록. 손을 깊이 넣어 무언가를 찾을 필요도 없고 때때로 불필요한 것도 딱 보인다. 버리기도 쉽고 찾기도 쉽다.


미니멀 라이프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내 가슴을 때렸던 말은

"더 많이 소비하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한다.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바쳐야 한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고 우는 18개월 아이를 어린이집에 억지로 밀어 넣으며 다닌 직장이었다. 월급이 전부는 아니지만 직장을 다니는 이유의 50프로 이상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을 했을 때이다. 그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던 엄마가 더 이상 오실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어느 날 둘째 아이는 나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엄마 매일매일 휴가 내면 안 돼? 다른 집은 엄마가 없으면 할머니라도 계셔.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어서 너무 무서워..." 나는 매정하게 매일 휴가를 낼 수는 없다고 했다.


그 후 아들은 몇 번 더 하소연을 했지만 나는 달래기만 했다. 평수를 늘려 이사 온 아파트의 대출금도 있고 당장 생활이 안될 것 같아 휴직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째 아이와 같은 반인 아이가 우리 집과 같은 동에 살았는데 우리 집에 어른이 없는 것을 알고 함부로 들어와 뭔가를 가져가거나 수시로 초인종을 눌러 우리 아이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너무도 아프고 먹먹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회한은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내 아이들과 함께 해 주지 못한 대가로 받은 월급을 나는 이렇게 함부로 썼던 것이다...


주말 이틀을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초집중해서 정리를 하는데 가족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몇 번을 보고 가기만 했다. 입술이 부르텄지만 에너지는 넘쳤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 휴가를 내고 집안을 모두 들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옷 정리만으로도 시작이 좋았다.


나의 정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옷들이 꽤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옷장을 처음처럼 뒤집기로 했다. 다 버려서 잘 정리된 듯 보여도 그렇게 하면 버릴 것이 또 적지 않게 나온다. 다시 버릴 것과 나눔 할 것으로 나눈다.


그러면서 옷 정리를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하나를 사면 두 개를 버려라.

2. 매일 뭐라도 하나는 버려라.

3. 사복을 제복화 하자.

4. 인터넷 쇼핑몰과 옷가게를 기웃거리지 말자.

5.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6. 최고의 디자인은 심플하다


옷장을 정리하고 나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옷이 몇 가지 없으니 아침에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옷만 남겨두니 오히려 선택이 쉬웠다. 장롱을 열었을 때 여유롭게 걸려있는 단순한 옷들이 기분을 좋게 했다. 바쁜 아침시간에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고르느라 짜증 날 일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계절마다 큰 행사처럼 옷장을 옮기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위치만 바꿔주면 된다.


타인은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매일매일 같은 옷을 입는지 다른 옷을 입는지 별 관심이 없다. 남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옷을 입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동네 옷가게에서 산 옷이 작아 환불하러 갔다가 교환만 된다고 해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웃돈까지 주고 산 꽤 비싼 재킷이 있었다. 상표를 잘라 다시 교환도 할 수 없는 옷이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두었는데 볼 때마다 부아가 났다. 어느 날 버렸다.


잘못 샀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버려야 한다. 그래야 잘못 산 물건을 볼 때마다 드는 나쁜 감정을 버릴 수 있다.


정리하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기에 옷을 살 때 훨씬 신중해졌다. 꼭 필요할 때 좋은 옷을 한벌만 사자. 우리가 광고에 현혹되는 것은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메시지는 무시할 수 있다.


옷장을 닫았다.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이 옷장을 열 때마다 뭐라도 하나씩 버리리라 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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