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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보내는 방법

마음 속 거울을 깨끗이 닦기

by 오월의 나무
여름 밤 휴가 기분 내며 완성한 크레파스화


학교에서 일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부러워하는 방학. ‘방학’의 영어 표현인 ‘vacation’은 비어 있다는 뜻의 ‘비우다’, ‘텅 비게 하다’라는 어원을 가진 라틴어 동사 vaco에서 파생된 단어라는데, 어원이 무색할 만큼 꼬박꼬박 학교로 출근하던 날 여름밤이었다. 내가 학생일 때는 방학은 선생님만 좋은 것이라 생각한 적도 많았다. 방학이라 해도 보충수업과 밀린 공부, 산더미 같은 숙제를 하는 건 도무지 ‘비우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입장이 바뀌고 보니 선생이라고 해서 방학이 배움을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껏 쉴 수도 없었다. 물론 학기 중보다는 업무량이 적은 건 사실이다. 최소한 방학에는 정규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니 수업의 의무를 잠시 벗어나 있긴 하니까. 그것도 계절 학기 수업을 하는 경우는 예외일 것이지만.


하지만 매년 써야 하는 논문과 직전 학기 성적평가와 마무리, 다음 학기 수업을 위한 강의 자료 업데이트 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했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에 맞추려면 새로운 정보와 지식, 교수법 등을 따라 배워야 겨우 제자리인 것 같은데, 어느 선생이나 모두 다 하는 이런 업무들만 하기에도 숨이 찼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맡겨진 보직 관련된 업무는 방학이라 해도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온전한 휴식에 늘 갈증이 났다.




이 그림을 그린 날 밤은 휴가가 집중되던 시기였는데, 그래선지 평소 함께 작업하던 분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오셨네요? 늦으시려나?’


‘오늘은 모두 안 오신다고 했어요. 다들 휴가 가시나 봐요. 선생님은 휴가 안 가세요?’


‘저는 여기 오는 게 휴가예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 시간만큼 나를 비우고 이 시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으니까.


‘저까지 안 왔으면 선생님 쉬실 텐데... 저는 단독과외라 더 좋지만요.’


선생님이 가만히 웃으셨다.


나무 패널에 크레파스화 밑작업 시작


혼자 카페 화실을 독차지한 채 2주 전에 시작한 작업을 이어서 해나갔다. 화면 가득 초록이 짙어서 눈이 편안하고, 비가 내리고 있어 시원함도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림을 고를 때, 초록 나무 아래 아이의 표정이 좋은 꿈이라고 꾸는 듯 편안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었다. 오랜만에 크레파스화를 고른 것도 여름이라서 이유가 한몫했는데, 밑작업 하는 시간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했었던 크레파스화 중에서 제일 큰 사이즈였음에도 힘이 훨씬 덜 들었다. 모처럼 크레파스화 작업을 하는 것이라 새롭기도 하고, 전보다 수월하니 재미있었다.


이 그림의 모델이 된 그림책 속 원본 장면

원본이었던 일러스트 책 속 그림에는 오른쪽 아래에 하얀 말 한 마리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말을 그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리지 못한 것이긴 하지만. 비를 피하는 아이보다 앞에 배치되어 있어서 원근감에 따라 하얀 백마를 큼지막하게 그려 넣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였다. 작은 아이는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더 크게, 더 자세히, 더 잘 그릴 수 있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을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왜 말은 안 그리세요? 안 그리시려고요?’


‘네... 잘 못 그릴 것 같아서요.’


‘어려우시려나? 한 번 그려보세요. 나중에 제가 조금 도와드릴게요.’


말을 생략하면 허전해 보일까 봐 그러셨는지 권하셨다. 아주 잠시 갈등했다. 선생님 도움으로 완성도를 조금 더 높여볼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바로 답했다.


‘아니에요. 말이 비 맞고 있는 게 싫어요.’라고.


순간적으로 덧붙인 말이었지만 답을 하고 보니 정말 말이 비를 맞고 있었다. 분명히 말을 생략하겠다고 한 것은 나의 부족한 실력을 보이기 싫었던 것 때문이었는데, 이어진 답의 이유가 다른 것에 내심 놀랐다.


놀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순간적으로나마 그럴듯해 보이는 답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커다란 나뭇잎들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말은 혼자서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서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처럼 귀여운 아이에게만 시선을 뺏긴 줄 알았다. 하지만 ‘말에게도 눈길을 보내고 있었구나. 다 보고 있었구나’ 하면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얀 말을 잘 그릴 수 없을 것 같아서, 숨기고 싶은 내 부족한 실력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따위의 이유를 솔직히 드러내기 두려워하고 있구나 싶었다. 능력부족이 아니라 그림 속의 말에게 조차 측은지심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졌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처럼 해석할 때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찰나에도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제법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비닐우산 보다 얇았다.


진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가에 연연하는 것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는데...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을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보다 나 스스로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의식하지 않으면 나조차도 나를 속인다. 그것도 아주 순간적으로.


적잖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날 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로 했다. 부족한 실력을 감추려고 하기보다 빗속에 하얀 말을 그대로 두지 않기로. 대신 혼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아이의 표정을 조금 더 다정하게 그려 보기로 했다. 비록 나뭇잎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하얀 말은 키가 더 큰 나무에 매어 두고 온 것을 떠올리며 다행이라 안심한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의 표정을 조금은 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채색 과정 순서대로


첫 작업을 했을 때는 생각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전체 과정을 한 번 남겨보면 좋겠어서 중간중간 사진도 찍어가며 그려나갔다. 더운 여름밤이었지만, 커피 한 잔 하며 에어컨 바람 밑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노라니 진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시원한 피서지를 향해 떠나지는 못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나의 마음 한편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보내는 여름밤도 나쁘지 않았다. 거울에 붙은 오물을 나에게 뭍은 오물이라고 착각하지 않으려면 거울을 자주 잘 닦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비우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주하는 나의 마음속 거울에 붙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낼 수 있어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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