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나는 왜 서울에 있나]
“내 면접보러 서울간데이”
“기죽지 말고, 할 말 다 하고 온나”
면접을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친구들은 어김없이 내게 전화를 했다.
동네 놈들 중 일찍 상경한 나였기에, 내 자취방은 친구들의 면접 숙소가 되곤 했다.
신입의 나이도 높아지고, 서울로 이직하는 친구들도 많아져서인지
서울 상경 5년 째인 지금도 면접용 숙소 예약 전화를 받고는 한다.
“면접관이 뭐 물어보드노? 같이 본 사람들은 어땠노?”
동그랗게 눈을 뜨고 질문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문득 나의 첫 면접 날이 떠오른다.
당시 내가 느꼈던 서울의 면접 현장은 옥타곤 위 종합 격투장이었으나,
곧 면접을 앞둔 그대들에게 현장의 매운맛을 미리 말해줄 필요는 없지.
“다 똑같다. 대구나 여나, 동네 아저씨가 면접보고 내 같은 놈이 면접자다”
이렇게 얘기하고는, 잠시 고개를 들어 2021년도 여름 어느날을 떠올린다.
잠시, 그 날의 긴박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2021년 6월, 강남의 어느 빌딩 앞 카페.
"귀사가 걸어온 족적과.. 브랜드 가치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너덜너덜한 A4 용지를 접어 가방에 넣는다.
준비한 대답을 통째로 다 외웠다.
어머니는 첫 면접이라고 아울렛에서 정장과 가죽 구두를 사주셨다.
새벽부터 일어나 정장 차림으로 KTX를 탄 나는 정신이 없었고,
왁스로 열심히 넘긴 머리는 땀으로 축축했다. 한 여름에 정장이라니.
회사 근처 카페,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넥타이를 만지는 이 젊은이는
누가 보더라도 '면접보는 신입이구나'라 생각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 30분. 면접 30분 전이다.
심호흡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커다란 유리문이 열리고, 1층에는 수다를 떠는 직원들이 보인다.
저마다 목에는 반짝거리는 사원증을 매달아놨다.
"와.. 억수로 멋있다"
멀끔하게 생긴 직원이 다가와서 이름을 묻고는, 대기실로 안내해 준다.
따라간 대기실에는, 하얗게 질린 정장 차림의 또래들이 가득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
"일찍 일어나는 새가..."
"웅성웅성.."
독백으로 채워진 소란과 긴장감이 대기실을 채우고 있다.
저마다 휴대폰, A4 용지에 무슨 글을 빽빽하게 적어뒀다.
긴장이 되면서도 어딘가 느껴지는 동질감.
부끄러워 접어둔 A4 용지를 꺼내들고, 나도 그 소란에 합류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이름을 물어본 직원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 김나무, 박길동, 조동근, 조현준, 이광해 님 이동하겠습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따각따각, 줄지어 걷는 5명의 구두 소리가 요란하다.
내 뒤에 따라오는 이 친구는 울기 직전이다.
이 넓은 회사에서,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만 경직됐다는 느낌이 몰려오며 문득 어지러워진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5명의 면접관이 앉아있다.
저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맞은편에 차례대로 앉는다.
적막이 흐르고, 주먹 쥔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 조동근 님부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안녕하세요, 아침형 인간 조동근입니다.
삼0 물산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00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리고.."
"네, 그만. 다음으로.."
잠깐, 그만이라고?
무려 00 그룹에서 인턴을 하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데?
엄청난 스펙을 가진 지원자의 스타트에 기가 팍 꺾이고,
이 지원자의 말을 끊는 면접관을 보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안녕하세요, 씨0 그룹에 인턴으로 근무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1년간 근무하며.."
"롯0 그룹이 개최한 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 "
연달아 3명의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엄청난 '고스펙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들으니 한없이 작아진다.
준비한 대본은 이미 기억에서 삭제됐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 김나무 님?"
"... 네?.. 네!"
면접관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 하더니, 순간 정신이 번쩍들었다.
"족발집 아르바이트를 하셨어요?"
"..? 아. 네"
뜬금없이 족발집이 왜 나오나.
면접관의 첫 질문은 자기소개가 아니라, 족발집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스무살 때 시장에서 족발집 알바를 했다.
도대체 스무살에 했던 알바는 어떻게 안 걸까 생각해보니,
내가 경력사항에 족발집 알바 경험을 썼던 것이 생각났다.
다시는 경력사항에 알바 경험을 쓰지 않으리라.
희미하게 웃고 있는 면접관이 턱을 괴며 질문을 이어간다.
"족발집 아르바이트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했나요?"
".. 족발집 아르바이트요..."
옆을 보지 않아도, 지원자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하다.
다시는 대기업에 서류를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부끄러움으로 터질듯 홍조가 띈 얼굴을 푹 숙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주방일을 잘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중요했습니다"
"김나무님은 주방 알바였나요?"
"아뇨, 전 홀 알바생이었어요"
면접관이 턱을 괸 채로 서류를 만지작거리다가 눈을 치켜올렸다.
".... 저는 홀 알바생이었고, 가게는 시장에 있었습니다.
점심엔 건설 현장에서 손님들이 오셨고, 퇴근 시간엔 젊은 남성들이
포장하러 오셨습니다. 위치가 시장이고 가게가 좁다보니, 홀이 바쁘진 않았습니다"
퇴근길 포장, 빠르게 현장 복귀가 필요한 분들이 주로 방문하셔서
음식을 데워두고 빠르게 내어드리는 게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 주방엔 사장님만 계셨어요. 그래서 출근하면 홀을 닦고, 바로 주방일을 도왔습니다.
근무지가 그렇다보니 점심엔 회전율이 중요하고, 저녁엔 포장이 빨리 나가야 했거든요,
재료를 씻고, 포장을 돕다보니 나중엔 주방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
대답을 마치고는, 면접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유통사 기획/관리직을 채용하는 면접 자리에서
누가 족발집 알바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이후 다른 지원자에게 질문을 시작했고,
나는 30분을 내리 아무 질문도 받지 못하고 앉아있었다.
" ... 네, 면접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
50분 간 족발집 얘기를 1분 정도 하고는, 49분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다가 나왔다.
부끄럽다.
부모님께 전화드리겠다고 했는데,
서러움이 비칠까 봐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꾹꾹 눌러쓴 입사 포부를 구겨버리고는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마저도 퉁 - 하고 튕겨나온다.
순간 누가 봤으면 어떡하지, 싶지만 씩씩 거리며 못본 척한다.
나를 지나쳐가는 정장 무리들이 부럽고, 미워 보이고, 또 부끄럽다.
대구행 KTX 시간이 아직 세시간이나 남았다.
한숨을 푹 쉬고는 담배를 한 갑 사서 꼬나물지만
그마저도 들킬까봐 사옥에서 먼 골목길로 들어가서 불을 붙인다.
절대 서울에 오지 않을 거라, 서울 콩깍지는 착각이다 생각하며
서울역으로 가려고 네이버 지도를 연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면 된다는 안내.
지하철을 반대로 탄 것을 알아차렸을 즈음,
난 의왕역에 서 있었다.
..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서,
난 결국 그 회사 인턴에 합격했고, 전환에 성공하여 정직원이 되었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근무 중이지만,
여전히 그 서류가 왜 붙었는지, 어떻게 면접에 통과한 건지 미스테리다.
다만, 아무짝에 쓸 곳 없어 보이는 내 스펙도 어딘가에선 봐준다.
6년 간 직장인으로 일하며 느낀 것은,
스펙보다 중요한 것이 느낌이고 사람의 특성이다.
취업난이라 하고, 서울서 자리 잡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친구들의 말에
아쉬운 마음으로 이 회차의 글을 좀 늘린다.
서울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서울에 너무 쫄지는 말자.
가만보면,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상경인이다.
이 사람들 서울 사람들보다 재미있게 잘 산다.
지원서를 쓸 때는, 내가 뭘 잘 할 수 있을지 대략 그려보고
이 회사에선 이 직무를 왜 뽑는지, 대체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해보자.
이 일이 내 적성과 맞겠다~ 싶으면
본인이 생각한 이 직무의 일하는 방식을 쓰고, '내가 그걸 잘 하는 사람이다'라고 써 보자.
그리고 서울 사람, 서울 대학 아니라고 너무 자격증이나 스펙에 목 매진 말자.
단, 급하다고 이력서를 복사하거나 아무 곳이나 입사하면 안 된다.
조직원으로 뽑혀 계약을 맺고 일하는 건 어렵고도 귀한 일이다.
느낌에 입사가 너무 쉽고 대충 들어가는 것 같다면, 두번 세번 고민을 해보자.
정보력이 떨어지는 지방 상경인들은,
재능도 있고 특출난데도 아쉬운 직장을 들어간 경우가 허다하다.
서류지원 부터 면접까지. 입사 과정이 깐깐하거나, 제일 깐깐했던 곳을 찾아가라.
학교 1등이 입사 1등, 회사 1등하면 건강한 조직이 아닌 것이니 맘에 담아두지 말자.
난 그렇게 친구들과 멘티들, 만나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오며가며 만나는 상경인들의 표정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도!!!!)
여담이지만,
당시 면접을 보고 ‘인적성 검사’라는 것을 본다길래 시험을 치렀었다.
말그대로 ‘인성, 적성 검사’라 생각해서 무슨 MBTI 검사라 생각했다.
아무 준비없이 편하게 면접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바쁘게 문제지를 넘겨보며
시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약 100명 가까이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컴퓨터 사인펜을
챙겨가지 않은 사람도 내가 유일했다.
MBTI 검사를 예상하고 검사 종이를 받아들었을 때,
충격이 컸는지 아직도 문제가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의 의사가 2030년에는 몇 명으로 줄어들게 될 지
최근 통계를 기반으로 계산하여 답을 내는 문제였다.
.. 어찌저찌 그 시험도 운 좋게 합격을 했다.
이것도 참 미스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