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여기가 서울입니다]
2호선 중간을 지나며 뒤로는 관악산, 앞으로는 신림천을 끼고
중간에 ‘서울대’가 버티는. 어쩌면 서울의 노른자땅
이곳은 서울특별시, 관악구다.
봉천역 2번 출구, 롯데리아에 앉아 창 밖을 보고 있으면
우리 세대에게 ‘관악구’는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 수 있다.
왼 손엔 캐리어, 오른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바쁘게 돌리는 20대 초반 남녀들.
엄마 손을 잡고 부동산을 나오며 인상을 가득 찌푸린,
학생티를 벗지 못 한 예비 대학생들.
봉천역 왕복 8차선 도로 양 옆으로는 작은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롯데리아 맞은 편 KFC 뒤로는 숨막히는 빌라촌이 빽빽하고
롯데리아 뒤쪽 봉천 시장은, 1층을 상가로 사용하는 3층짜리 원룸이 빽빽하다.
돈을 아끼려면,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걸어야하는 빌라촌이 또 다른 선택지다.
대한민국 2030 초년생과 학생 자취의 메카,
‘서울에 집 값이 저렴한 곳이 어디야?’ 하면, 열에 아홉은 ‘관악구’다.
부동산에 [원룸/빌라]를 검색하면 가장 많은 매물이 나오는 곳이다.
집 값이 저렴하다는 건, 아마 빌라 매물이 많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청년들이 서울에서 자취를 하려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들리게 되는 곳이 ‘관악구’가 되었다.
(요즘 월세/전세를 보면, 저렴하다는 말도 옛말이지 않나 싶다)
지금 봉천역 롯데리아에서 더블 불고기 버거를 오물거리는 중이다.
감자튀김을 사정없이 먹어치우고는, 흡족해진 배를 두드린다.
더블이라니, 데리버거도 사치였던 시기가 있었다.
난 그 시기를 봉천동에서 보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나던 중, 정강이에 툭 - 하고 무엇인가 치인다.
기우뚱-하던 캐리어를 붙잡고는 앳된 남학생이 연거푸 사과를 한다.
“아이 죄송합니다, 통로에 나둘라 캤던건 아인데.. ”
말씨가 서울 사람은 아닌데.
캐리어를 발 밑에 우겨넣고는, 무릎나온 추리닝에 손을 슥 닦아낸다.
수년전 내 모습이 겹쳐보인다.
2022년 2월, 당시 멀쩡히 다니던 첫 회사를 퇴사했다.
(첫 회사 : Chapter 1. 촌놈의 숨 막히는 첫 면접 - 참고)
당시 한국에선 IT 창업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고,
‘나도 창업을 해보겠다’ 라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
짧은 기간 회사를 다니고 퇴사를 했다보니,
모아둔 돈도 없었고, 비싼 보증금을 내고 자취방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친구네 사촌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코로나로 쉰다고 하여,
2주간 신세를 지며 방을 찾아다녔고, 난 관악구에 3개월짜리 단기 계약으로 나온
100/40만원짜리 셋방(3평 남짓한)을 겨우 구해서 들어갔다.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하루종일 강남에서 구르다가,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 2호선 지옥철을 타고 봉천역으로 돌아왔다.
다만, 아무리 피로에 쩔고 녹초가 되었어도
서울대 입구역에 내리면, 조용히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웠다.
대학 과잠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과,
노트북을 옆에 끼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들,
모임을 하려고 만난 것 같은 어색한 젊은 남녀들과
생기로 북적이는 샤로수길.
9시가 훌쩍 넘은 저녁 시간임에도,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서 녹초가 된 체력임에도,
어딘가 집에 들어가기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이 곳, 관악구의 중심이었다.
돈이 없어 데리버거에 맹물을 마시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녀도
모두가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차림이었다.
그래서 정겹고, 편안하게 설렐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악구 주거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율은 약 63%이며
서울대 근처의 대학동은 1인 가구 비율이 77%에 육박한다.
이 가구들 중, 약 65%가 20대, 30대 초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처: 관악구)
즉 2030이 신림 ~ 낙성대 구간에 모두 몰려있고,
이들 대부분은 고향이 서울이 아닌 상경인이다.
젊고 빛나는 이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이 곳의 1인 가구 비율이 70%라는 것은,
아름다운 청춘이 홀로 외롭다는 통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관악구는,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모임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모여서 만든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버는 돈 한 푼 없이, 6개월 동안 서울 청년 월세 지원금을 받으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우울한 마음이 몸을 휘감을 때면
어김없이 집 밖으로 나가 샤로수길을 걸었고, 낙성대 공원을 돌았다.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수많은 청년들,
그들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기뻐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서 홀로 선 삶이 그리 청승맞지는 않았다.
당시, 저녁 9시가 넘어 3평짜리 셋방에 돌아와 라면을 먹고
외로움이 밀려와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았다.
낙성대 공원, 서울대 운동장을 뛰며 자주 마주친 얼굴들과 인사를 했었고
그들 중 몇은 친구가 되어 아직까지 연락을 하는 이도 있다.
오며가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말을 트고, 얘기를 주고 받으며
어느 날은 공감을 얻고, 어떤 때에는 설레임을 느끼기도 했다.
돈 한 푼 없는 상경 생활에서, 많은 위로가 됐던 날들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3평짜리 셋방의 계약 기간을 늘려 1년을 살고,
낙성대로 이사가서 8개월을 더 살다, 다른 자치구로 이사를 갔다.
관악구에 끈덕지게 붙어있으려다가, 다른 기회로 이 곳을 떠나 살았지만.
20대 상경인에게 ‘내 자취방’을 관악구로 만드는 것을 참 추천한다.
이곳 관악구는, 모두가 외롭다.
다만, 외로운 이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모두 빛나는 청춘들이다.
이것 만으로도, 20대 상경인에게 관악구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취업 때문에, 혹은 환상으로, 또는 학업으로
서울에 올라오는 상경인들은 하나같이 ‘주거’를 걱정한다.
물론 걱정이 당연하고, 오르는 생활비가 언제나 부담이지만.
직접 와서 보고, 굴러봐도 괜찮지 않을까.
현실이 생각보다 초라해도,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에서,
가장 젊고 야심찬 또래들이,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건 좋은 경험이 될 거라 믿는다.
(팁)
관악구 만큼 월세가 솔직한 곳도 없다.
5만원 차이가 클까.. 싶지만, 1만원이라도 차이가 나는 월셋집을 직접 보면
왜 가격이 차이가 나는지 바로바로 티가 난다.
발품을 최대한 많이 팔아보고,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3~4만원 더 비싼 월셋집을 찾아가라. 원룸이 빽빽한데 혼자만 저렴할 수는 없다.
추가로, 큰 이유가 없다면 2호선 라인(신림 - 봉천 - 서울대 - 낙성대)에 붙은 집을 찾고
‘2층’은 피해라. 관악구 월세 빌라 중 ‘2층’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상층이 아니다.
역에서 걸어 10분 이내라면, 평지보다는 오르막에 위치한 집도 좋은 선택지다.
빌라가 많은 자취촌은 배수가 잘 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오르막에 위치한 집들이 그나마 덜 습하고, 물이 들어올 확률이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