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2. [여기가 서울입니다]
강남 땅을 밟으려면 돈을 내야 하는 줄 알았다.
강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들으면 웃기고 기가 막힐 말이지만,
어린 시절 어른들이 ‘강남 땅 밟으려면 돈 내야 한다’던 우스갯소리를
나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것이 농담임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
고급 차량 전시장이 줄줄이 늘어선 곳.
수많은 기업의 본사가 터를 잡은 곳.
심심찮게 슈퍼카와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곳.
강남, 역삼, 선릉, 삼성, 강남구청, 논현, 언주…
‘강남’이라 불리는 역들. 이 직사각형의 섹터에
수많은 스타트업과 대기업, 투자사와 유흥가가 몰려 있다.
서울에 올라오기 직전의 상경인들에게
‘강남’은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기피의 대상이기도 하다.
더없이 화려하지만, 그만큼 이면의 회색지대가 두렵기도 하니까.
출산율, 자살률, 취업률, 사교육 비용 등
대한민국의 참담한 통계를 떠올릴 때 어울리는 지역구.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섞이는 순간부터
주저함은 사치, 망설임은 무능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직접 그 속에 섞이기 전까진.
살면서 강남에서 일하게 될 날이 올까?
그건 나에게 먼 미래처럼 느껴졌지만,
그 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스물여섯.
직장을 퇴사하고 대구로 내려가 창업을 고민하던 시기,
돈도, 사람도 없던 나는
공간을 제공하고 사람을 모아주는
국비지원 인큐베이팅 사업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덜컥 붙어버렸다.
3개월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프라인으로 교육이 진행됐고, 장소는
‘강남구 테헤란로’였다.
다시 올라온 서울.
보증금을 마련할 여유는 없었고,
마침 코로나로 쉬고 있던 대학 동기의 이모님이 운영하시던
홍대의 게스트하우스에 오렌지 주스 두 박스를 들고 들어갔다.
아끼던 스쿠터를 팔고 단기 월세방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그곳에서 염치없이 2주간 신세를 졌다.
매일 선릉역으로 출퇴근하며 느낀 강남은
화려함보다는 현실에 가까웠다.
골목골목마다 식당이 있고,
피곤한 얼굴의 직장인들이 이 거리에 애환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 도시가 회색이지만은 않았다.
2030 청년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회사를 키우고,
퇴근 시간 무렵이면 골목에서 제육볶음 냄새가 풍긴다.
면접을 보고 온 듯한 사람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사원증을 걸고 이곳을 오간다.
이런 풍경들이 강남의 사각지대를 채운다.
회색 도시라는 걱정과는 다르게,
조금은 시끄럽고 정신없지만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다.
가장 많은 기업과, 가장 많은 시도가 일어나고
가장 많은 돈과 유흥이 흐르는 곳.
그리고 지방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던
새로운 자극과 기회가 빠르게 지나가는 곳.
분명 회색의 이면은 존재하지만,
그 이면을 뚫고 스며드는 신선한 바람도 있다.
그러니 강남을,
단지 피곤하고 경쟁적인 도시로만 기억하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품은 공간으로도 바라보자.
충분히, 동경(憧憬)할 만한 도시다.
다시,
회색 이면만 떠올리며 이 도시를 기피하기보다는,
조금은 용기를 내어 이곳. 강남을
한 번쯤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