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줄, 신촌

Chapter2. [여기가 서울입니다]

by 김나무

첫 줄, 신촌



신촌역 8번 출구


정면으로는 ‘이화여대’, 왼쪽은 ‘연세대’, 맞은편엔 ‘서강대’ 표지판이 섰다.

오거리엔 젊음만 존재하는 건지, 노인의 눈에도 총기만 도는 듯하다.


거리마다 학교의 청취가 가득하다.

헌 책방과, 앉아 공부하기 좋은 카페들,

골목골목엔 자취생들의 아침을 책임져 온, 오랜 백반집.


자부심과 총기가 어린 눈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대학생과

눈동자와 머리색 모두 다른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걷는,


사람과 거리의 색깔, 가게의 분위기가 길 하나 차이로 달라지며

길게 뻗은 서강대교와 맞은편엔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

이곳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이다






2023년 여름, 판교에 있는 직장에서 셔틀을 운행한다는 공지문이 올라왔다.

당시 관악구에 살고 있던 나는, 셔틀 노선을 확인하고 결심했다.


신촌으로 이사 가자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놓치는 날엔 1시간 40분을

출근길에 투자해야 하는. 말 그대로 ‘무모한 이사’를 7월에 감행했다.


바쁘게 바쁘게, 쉬지 않고 서울 살이를 하다 보니

‘서울 길거리는 확실히 대구랑 다르제’라는 친구 놈 말에 쉬 대답을 못 했다.

서울에 살며 그런 곳엔 가 보지를 않았던 거지.


‘젊음의 거리 신촌’이라 하지 않나.

노래 제목과 가사, 영화에도 나오던데

어떤 곳인지, 아주 그냥 1년 정도 살아봐야지. 싶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신촌에 살아보자 다짐을 하고

직접 가보지도 않은 이대역 근처 오피스텔에 계약금을 넣었다.



“직접 안 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예, 신촌 거리랑 가깝죠?”

“그렇죠.. 저희야 상관은 없다만, 계약금 반환은 어려워요”

“네”



의아해하는 중개사님을 뒤로하고,

이삿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서 잔금일에 신촌 땅을 밟았다.


조금 무리했어도, 여기는 신촌.

하루라도 빨리 '신촌'이라는 동네의 주민이 되어보고 싶었다.

또 좋은 조건의 매물을 놓칠 수는 없지.


그렇게 시작한 신촌, 대현동에서 1년을 살았다.

지금은 경기 남부의 어딘가에서 한적하게 살고 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신촌으로 다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주말엔, 스쿠터를 타고 효자동의 한적한 카페에서 책을 읽었고

퇴근 후엔, 서강대교 아래 한강을 뛰었다.


책을 읽으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고,

옷을 살 때면 홍대로, 친구가 오면 연남동을 갔다.


누릴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많았고, 접근성이 좋았다.


그런데 이런 생활로 신촌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내 20대 마지막 끄트머리에 스쳐간 신촌은,

20대 소설의 첫 줄 같은 곳이었다.


끄트머리 희미한 빛을 따라 긴 터널을 빠져나온 스무 살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어쩌면 이곳의 풍경이었을까.






지나가는 여름이 못내 아쉬운 20대 청춘.

그 해 여름을 차마 놓아주지 못해,

더위가 사그라든 신촌 거리를 다시 뜨겁게 만드는


거리의 대학 축제




이곳의 여름은 10월에 끝난다.



대학로, 근처 원룸과 오피스텔에도 붙어있는

저마다 다른, 새로운 사상을 공부하는 동아리 홍보 벽보들.

모여든 이들의 옆구리에 낀 두꺼운 고전과 문화 서적들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


대학교 과점퍼를 입고,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들어선 총기 어린 눈동자의 대학생들.


그들은 청춘이라는 지나간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고 싶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들의 모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10년 후, 20년 후 이들은 이 시기를 회상하며 어떤 말을 할까.

마음속에 너무도 소중하게 간직될 추억들과

꺼내보면 다시 가슴이 뛸 푸른 사진들이 남아있겠구나.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의 ‘유명한 곳’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내 1년 투자의 선택은, 서대문구 신촌이었다.


연남동 카페와 한강, 예쁜 데이트 코스는

신촌 거리를 꾸며줄 뿐, 설명하지 않는다.


신촌은,

수많은 소설의 첫 줄을 쓰이는 곳이다.


책의 첫 장이 사람을 끌어당기듯.

이곳에서 쓰여지는 모든 첫 줄들이 모여

신촌이라는 거리에 깊은 힘을 불어넣는다.


좋은 곳이다. 좋은 지역이고, 좋은 위치다.


이곳에 살게 되었다면, 또 들르게 되었다면

우리는 신촌 거리에 흐르는 이야기를 보려 노력하자.




우린 그렇게 서울을 조금씩 알아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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