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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Sep 25. 2023

9 이름에서도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연필깎이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요즘 나의 평일 루틴은

일어나서부터 8시 50까지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집안 정리를 한 후,

오전 업무를 보고,

간단한 운동과 샤워, 점심 식사 후 

필요한 자료들을 본 후 하교한 아이들을 챙긴 후, 

저녁식사를 마무리한 뒤 다시 업무를 마무리한 후 잠자리에 드는 순서를 반복하고 있다.


가급적 아이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등교 준비를 하는 동안 필요한 집안일들은 마무리하려 노력한다.

세척이 완료된 식기세척기 안 그릇들을 정리하고, 다시 어젯밤 아이들이 야식 먹은 그릇들과 아침 식사를 한 접시들을 식기세척기 안에 넣고, 돌리고. 건조가 완료된 빨래를 꺼내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린다.

정전기먼지포로 집안 먼지를 한번 닦아내고, 모두가 나간 뒤 침구 정리를 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크게 힘 들이지 않고도 온종일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것 같아 만족한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에 하는 목욕 시간.

땀까지 흘린 날엔 더없이 개운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에서, 누구의 재촉도, 부름도 받지 않고, 어떤 조급함도 없이 천천히 샤워를 하고 얼굴에 팩까지 얹는 호사를 누리고 나면, 그 후 오후 시간은 또 가볍고 맑은 마음으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오전에 조금 여유가 생겨 아이 방 책상 서랍을 열어봤다.

가급적 하루에 한 곳은 깨끗하게 정리하자, 가 요즘의 생각인데

아이 서랍은... 카오스를 방불케 했으므로 대충 (내가 보기에) 쓰레기만 버리고 납작하고 작은 상자가 있으면 모아뒀다가 한 번에 구획을 나누어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내 눈에 연필깎이가 들어왔다.


돼지 모양의 민트색 휴대용 연필깎이.

그것 말고도 동그란 모양의 휴대용 연필깎이도 있었고, 내 아이라이너 용 샤프라이너도 보였다.

이게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책상용 연필깎이는 의외로 잘 고장이 난다.

충전을 해서 사용하는 자동연필깎이도 있었지만, 점점 성능이 저하되더니 결국 버리고 말았고

알록달록 색감이 귀여워 구입한 유럽 어느 브랜드의 연필깎이는 몸통이 분해되어 버렸다.

예전에 내가 초등학교 때 쓰던 기차모양 연필깎이는 아직도 친정에서 건재 중인데....

그것을 가져다 쓸까, 하던 새에 아이들은 자라 더는 연필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휴대용 연필깎이들은 어디선가 선물 받은 것도 있고, 학원에서 학용품 세트를 나눠주었을 때 그 안에 있었던 것도 있었다.

하나만 남기고 버리자, 생각하고는 가장 심플하고 작은 것만 두고 모두 재활용통에 넣을까 하다,

왠지 아쉬운 마음에 집에 있는 연필과 색연필들을 모두 꺼내 깎아보았다.

사각사각 사각....

이 소리가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 주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각사각 사각....


사지 않았는데도 집안에 여러 개 있는 물건들이 그러고 보면 참 많다.

나는 이제 삶의 태도를 바꾸어, 내가 사용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이는 물건은 받기를 거절하는 것으로.

그럼에도 받게 되었다면, 필요한 누군가에게 바로 나누어 줄 수 있도록. 


그렇게 또 마음먹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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