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커머스 2021] 07 슈퍼앱
코로나로 인한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기업 중 하나인 줌이 마켓플레이스 온줌 출시를 선언하였다. 줌은 정말 올해 들어 어마어마한 성장을 거둔 기업이다. 줌은 무려 작년에 비해 매출은 4배, 이익은 무려 81배 성장하였다. 국내에서도 지난 3분기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앱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 줌이 일종의 강의 마켓이라고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아마 코로나로 모인 트래픽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화상 미팅 앱이 커머스 분야에 발을 내밀 정도로 이제 더 이상 사업 간 경계선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선을 넘는 녀석이 줌 혼자 만이 아니다. 퀵커머스 키워드에서 다룬 배달의 민족도 대표적인 선을 넘은 기업이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 앱 서비스를 기반으로 B2B 커머스인 배민상회에 진출한 것은 물론, 아예 앱 내에서 B마트 서비스를 론칭하여 본격적인 커머스 진출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경쟁이 치열한 커머스 업계는 이제 이러한 선을 넘는 녀석들의 역습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새로 등장한 경쟁자들의 무서운 점은 이미 엄청난 트래픽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머스 업계에서 거래액을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상품 수와 트래픽이다. 이 2가지가 핵심 경쟁요소인 만큼 후발주자가 이러한 상품 DB와 방문자 수를 확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미 트래픽만큼은 커머스 상위 업체 수준, 아니 그 이상으로 확보하고 있는 강력한 녀석들이라면? 너무 위협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경향은 특히 앱 기반의 플랫폼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칭하여 슈퍼앱이라고 한다. 지난 십수 년 간 탄생한 많은 앱들은 단일 목적 앱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중국에서 슈퍼앱 트렌드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원래 이러한 슈퍼앱은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에서 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저가 스마트폰으로 처음 인터넷에 접속하게 되거나, 결제 인프라가 부족하여 하나의 앱이 여러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앱이 여러 미니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일으키자 선진국들도 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위챗이 채팅 앱에서 시작해서 결제, 쇼핑 등 다양한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엄청나게 성장하자, 이를 벤치마킹하여 승차 공유 앱이던 우버와 그랩이 배달 서비스나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당연히 모든 앱은 슈퍼앱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슈퍼앱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슈퍼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슈퍼앱은 카카오톡을 들 수 있는데, 카카오톡 정도의 사용자 수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슈퍼앱은 정말 어쩌다 보니 슈퍼앱으로 성장한 것이 대다수이다. 따라서 이러한 슈퍼앱의 커머스 진출은 기존 플레이어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된다. 괜히 끊임없이 커머스 업체들이 네이버와 카카오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슈퍼앱들은 왜 굳이 경쟁이 치열한 커머스 시장 진출을 원할까? 아무리 경쟁이 치열해도 돈을 벌기 가장 쉬운 곳이 커머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트래픽을 모아도 수익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트래픽을 모으고도 돈을 벌지 못해 사라진 서비스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에 반해 커머스 서비스들은 한번 사람을 모으면 잘 사라지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과 상품만 있으면 돈을 벌긴 쉽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단 트래픽을 모으면 알아서 상품들까지 모이기 마련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상품과 트래픽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슈퍼앱은 자연스레 커머스 진출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웹 기반이었긴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곳이 바로 네이버이다. 네이버는 슈퍼앱의 웹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포털을 운영하면서 커머스로 은근슬쩍 영역을 넓힌다. 처음에는 가격비교에서 시작하더니 오픈마켓 서비스를 론칭하고, 지금은 거래액 규모 1,2위 플레이어로 우뚝 선다.
하지만 커머스 업체들은 네이버만 경계해선 안된다. 올해 정말 센 두 녀석이 본격적인 커머스 진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은 작년을 기점으로 정말 슈퍼 슈퍼 한 앱으로 떠오른 유튜브와 오늘날 가장 잘 나가는 SNS 인스타그램이다.
먼저 유튜브는 쇼핑 익스텐션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며 포문을 열었다. 쇼핑 익스텐션 서비스는 “SHOP NOW” 버튼을 광고 영상 하단에 넣어 상품정보와 가격이 적힌 카탈로그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일종의 쇼핑몰 기능을 하는 페이지가 새로 생긴 거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단순 상품 연계 기능 만으로 기존의 이커머스 플레이어들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향후 유튜브가 지속적으로 연관 기능을 추가한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상대로 떠오를 것이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보다 적극적이다. 페이스북 샵을 론칭하고, 아예 페이스북 내에서 구매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스타그램 샵을 미국에서 론칭하면서, 이러한 기능이 곧 인스타그램까지 확장될 것을 시사하였다. 더욱이 요즘 대세 중 하나인 라이브 커머스 기능까지 곧 덧붙일 예정이라 하니 이 얼마나 적극적인가.
더욱 페이스북의 공세가 무서운 것은 이들의 파트너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북미에서는 아마존의 경쟁자로 꼽히는 쇼피파이와 동맹을 맺었고, 국내에서는 쇼핑몰 분야 호스팅 1위인 카페24와 손을 잡았다. 정말 커머스 시장에 진지하게 진출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글로벌한 슈퍼앱이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라면 국내의 대표주자는 역시 카카오이다. 카카오는 대표적인 커머스 업계의 잠룡이다. 현재 1,2위인 네이버와 쿠팡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으로만 거둔 지난해 거래액이 3조 원. 이 정도 거래액 규모를 가진 업체들은 이커머스 업계에서 5개 남짓에 불과하다.
여기에 올해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를 정식으로 론칭하며 더욱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카카오프렌즈 관련 사업도 이관받은 터라 가용한 무기는 더욱 늘어났다. 이제 카카오가 정말 오픈마켓 등의 사업에 의욕적으로 진출한다면, 아마 내일의 커머스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슈퍼앱 트렌드가 기존 커머스 플레이어들에게 안 좋은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슈퍼앱 트렌드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커머스 플랫폼 앱들도 일종의 슈퍼앱이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 1위의 방문자 수를 자랑하는 쿠팡 앱은 그 자체로도 국내 전체 순위권에 드는 앱이기도 하다.
따라서 커머스 업체들은 이러한 트렌드를 타 사업으로 진출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부동산, 금융 등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하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