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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경이 May 05. 2023

배안에서 9일째

태평양횡단 크루즈 


배안에서의 일상은 매우 단순해서 날짜와 요일을 생각해야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 안의 카펫을 요일 별로 날마다 바꾼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며 아.. 일요일이구나.. 한다.



아침은 와플.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일은 매 끼니 먹어주는 일이다.

열심히 차려 놓고 달라는 데로 주니 열심히 먹어 주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체중이나 콜레스테롤 걱정은 집에 가서 하기로 했다




바닷속 산호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산호가 살기 좋은 환경은 온도 화씨 68도~80도 , 염도, 깊이, 그래서 아무 곳에나 자라지 않고 특정한 곳에만 있다.

10년 전 마우이섬에서, 2003년 칸쿤에서 본 산호가 황홀할 정도로 가장 아름다웠다. 


점심은 야외에서 맥주와 통돼지 바비큐. 원하는 부위를 잘라준다.

돼지야 미안하다 하면서  나도 한 접시 가득 받아왔다.  

 다 먹지는 못했다. 샐러드 대신 잘 익은 김치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갑판을 걸었다. 

앞사람의 티셔츠에 "500피트 뒤를 유지하라" 한다. 목욕을 안 했나? 스컹크인가? 

가까이 갔지만 별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도 있고 왼쪽으로 도는 사람도 있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 문에서 나와 왼쪽으로 돈다. 

질서가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마주치며 웃는 것도 좋았는데...



아홉째 날, 바다 위에서 또 하루


밤새 잘 잤다. 조금씩 배 안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베란다에 나가니 하늘이 파랗다. 하와이가 가까워지며 배로 부딪히는 바람도 훈훈해졌다. 어제보다 파도가 높다. 2미터 정도의 파고에도 이 거대한 배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버틴다. 더 커지면? 그건 잘 모르겠다. 


이틀 전부터 인터넷을 구입하려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며 연결이 되지 않았다. 호주 비자를 받아오지 않아 비자신청을 해야 하는데 하와이가 가까워져서인지 인터넷 구매가 가능해졌다. 크루즈에서 비자 신청해 주는 비용이 일인당  100불이라서 내가 직접 하려고 1000분을 250불에 샀다. 좀 남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인터넷이 너무 느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계산해 보니 별로 남은 것도 없다.

10시 30분  포토샾 강의를 들었다. 파노라믹 포토 만드는 법, 사진의 내용을 바꾸는 트릭등을 배웠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정말 열심이다.   




컴퓨터 강의가 끝나고 점심은 바로 옆에 있는 비스타 다이닝에 가서 화려한 정식으로 먹었다. 

오후에 하와이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화려한 점심 덕분에 강의 시간에 잠시 졸았다. 다음엔 준다고 다 먹지 말고 조금씩만 먹어야겠다. 

4시 30분 컴퓨터에서 사진정리와 보관에 대한 강의. 


 9층에서 저녁을 먹는데 바로 옆자리에 고래, 산호, 상어에 관한 강의를 시리즈로 해 준 제이 크리스토퍼슨 교수 내외가 앉아있다. 그의 강의를 워낙 재미있게 들었던 터라 저절로 인사가 나왔다.

“당신의 강의가 재미있어 많이 즐겼습니다” 했더니 고맙다며 반갑게 대답해 준다. 80세가 다 되는 노 교수가 송구스러울 정도로 겸손하다.


감기가 올 듯 으스스 춥기도 해서 조심스럽다. 여기서 아프면 곤란한데.. 

스파에 가서 땀을 냈다.

 

배에서 9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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