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까지 타인에게 잔인해 질 수 있는가
1월 27일로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아우슈비츠(폴란드어 오시비엥침)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지 75주년을 맞았다. 이날은 유엔이 15년 전인 2005년 11월 1일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로 정해 글로벌 기념일로 지정했다. 당시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9살이었던 소년은 이제 할아버지가 됐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23/99371828/1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상징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각국 지도자는 한목소리로 반(反)유대주의와 인종차별 반대를 외쳤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29/99433873/1
미국 홀로코스트생존자재단(HSF)의 회장을 맡고있는 데이비드 스하에츠테르(90) 씨는 1930년대 슬로바키아에서 100명이 넘는 친지들 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대가족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다른 가족은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학살당하거나 나치 친위대(SS)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912540.html#csidx3f0abab4f917eb79881ca59db4cc81a
놀은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를 겨우 피했지만, 결국 유대인이란 굴레 속에 생을 마감하게 됐다. 놀의 지인에 따르면, 1942년 여름 나치 독일에 협력하던 프랑스 파리 경찰은 일제 단속을 벌여 유대인 수천 명을 사이클 경기장으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모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해됐다. 놀의 엄마도 경기장으로 호출됐지만, 브라질 여권을 소지한 덕에 딸과 함께 막판에 겨우 피신했다고 한다.
프랑스 유대인단체대표자협의회(RCJIF)의 프란시스 칼리파트는 “매우 끔찍한 일”이라며 “나치의 반유대주의는 피했지만, 결국 운명이 그녀를 따라다녔다”라고 NYT에 말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최근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2480355
어디까지가 과거이고, 어디까지가 현재일까. 과거가 현재에 되풀이 되지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우한 폐렴이 기승하는 지금 이 시점에, 기침하는 사람들을 보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되돌아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