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몇 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지루함을 느끼고 덮어뒀던 책이었다. 소설의 호흡에 빠져들기 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특히 꼬르륵 소리에서 탄생한 테레자 때문일 수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등장이 날 것 그대로 표현되고 그 인물들이 육체와 욕망을 가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카레닌. 원형의 시간속에 사는 카레닌에게 마음을 쓰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난해하고 깊은 감정을 느끼는 책을 너무 오랫만에 읽었기 때문인지 머리속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랑 때문일까. 에로틱한 우정만 믿었던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고 변하게 된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사랑이 사실은 운명이었다고 믿으면서 스위스의 생활을 포기하면서 까지 테레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에로틱한 우정은 가능성을 잃을 때까지 포기하지 못한다.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영원히 반복될 삶에서 그들은 서로를 선택한 것이다.
책표지에서 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카레닌, 책에서 등장한 가장 순수하면서도 다정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카레닌은 불평하지 않는다.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다만 다정할 뿐이다. 갈등이나 가슴이 메이는 장면이 없는 사랑. 가장 다정한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카레닌이 보여준 사랑이 아닐까 싶다.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사랑보다 카레닌의 사랑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테라자가 원했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 의심 없는 사랑 이었다. 토마시와의 사랑이 비록 그런 사랑이 아니었을 지라도 그녀는 토마시를 떠나지 않았다. 사랑은 어쩌면 떠나지 않는 것, 기다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을 잃어가는 모습까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하는 것. 프란츠의 허무한 죽음보다 카레닌의 죽음이 더 슬픈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바나의 배신은 그녀의 삶이 방식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공허함 이었을 수 있다. 무거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바나는 프란츠를 떠나기를 결심한 후에 강렬한 흥분을 느낀다. 사바나는 가벼움이다. 무거운 것은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프란츠를 떠난다. 그녀는 프란츠의 무거움을 거부했다. 그녀가 추구한건 가볍고 자유로운 존재로 남는것이 아니었을까. 끝내 후회하는 것은 가벼움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철학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니체의 영원회귀 -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플라톤의 향연 - 잘려나간 반쪽을 찾아 온전한 하나가 되려는 욕망으로서의 사랑, 스스로 눈을 찔러 벌을 내린 오이디푸스. 카프카, 데카르트, 스탈린의 아들과 똥. 그리고 키치. 난해한 상징들과 꿈들.
인간의 삶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고 인간은 그토록 아주 가벼운 존재라는 것.
하지만
사랑만이 가볍고 무의미한 삶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무게를 더해주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키치 -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 똥이 부정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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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째 읽은 후에는 어떤 느낌을 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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