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도둑의 배려, 뜻밖의 행운

[유혹의 하룻밤 2편] 라오스 방비엥 '엘리펀트 크로싱 호텔'

by 로건

동남아를 좋아한다. 공항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그 습한 기운이 좋다. 더운 거 참 싫어하지만 이상하게 동남아는 더워서 좋다.


우리나라 콘도나 관광호텔 갈 돈으로 방콕 W호텔이나 쉐라톤 호텔에 묵을 수 있다. 베트남 음식 체인점 1만 원 쌀국수보다 10배는 더 맛있는 호치민 시장 쌀국수가 1천 원이다.


이러니 동남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태국은 10번 베트남 7번 정도 갔다. 나름 동남아 전문가라 자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언제나 자만은 금물이다.



'고마워요 도둑님'


라오스가 꽃보다 청춘으로 유명해지기 전이었다. 직항도 없던 시절이다.


신문의 여행 섹션에서 봤다. 어스름한 새벽, 승려들이 탁발 행렬을 하는 모습. 그 모습에 반해 라오스 행을 결정했다. 그곳은 루앙프라방이었고 나는 비엔티엔과 방비엥만 갔다. 루앙프라방은 너무 멀었다.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많지 않던 정보 속에서 라오스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일단 방콕에 간다. 라오스 인접 도시인 우돈타니로 항공 이동, 그리고 육로로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까지 이동하는 코스였다.


지금은 직항이 잘돼 있어 무의미한 정보다.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육로 국경 이동이 신기했고, 국경도시 우돈타니 여행이 즐거웠다. 한국인이 우리뿐이었다. (추후 우돈타니의 하룻밤도 다뤄보겠다)


동남아엔 자신 있었다. 척척 비행기를 갈아타고 국경도 무사히 넘었다. 태국은 오른쪽, 라오스는 우리나라와 같은 왼쪽에 운전석이 있어 신기했다. 라오스에선 도로 한복판에 내렸다.



비엔티엔에 도착해 괜찮은 숙소를 잡았다. 사원과 시장 등을 방문했다. 도시가 작아 하루면 충분했다.


자만이 문제였다. 동남아가 너무 익숙해 잠깐 방심했다. 사건은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이동하는 투어 버스에서 벌어졌다.


지갑이 든 배낭을 버스 트렁크에 넣고 탔다. 동남아에선 체구 작은 도둑이 버스 트렁크에 숨어 있다가 버스가 출발하면 여행객의 가방을 뒤져 물건이나 돈을 훔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익숙해서 방심했다. 방비엥에 도착해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낼 때 뒷골이 서늘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지갑은 텅 비어 있었다.

문제의 투어 버스. 짐을 싣고 있는 저 분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본다.

도둑은 양심이 있었다. 개평이라고 해야 하나. 100달러짜리 지폐 하나는 남겨뒀다. 도둑의 배려, 고마웠다.


숙소 예약을 안 하고 갔다. 괜찮은 숙소를 직접 보고 묵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지갑에서 신용카드는 꺼내가지 않았지만 밤이 늦은 시각이라 돈을 찾을 수 없었다. 방비엥에서 3일 묵을 생각이었다. 100달러로 3박 할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어려웠다. 좀 괜찮아 보이는 숙소는 50달러씩을 요구했다. 가격이 맞는 곳은 꺼려질 정도로 시설이 안 좋았다. 도둑 맞은 놈이 뭘 가리느냐 싶겠지만, 당시 연인을 허름한 곳에 재울 수 없었다. (그 연인은 현재의 배우자다.)


몇 곳을 전전하다 100달러로 3박을 해주겠다는 숙소를 찾았다. 그럭저럭 깔끔했다. 창밖 뷰는 어두워 보이지 않았고, 조식은 생각도 안 했는데 준다고 해 감사했다. 호텔의 이름은 엘리펀트 크로싱 호텔 (Elephant Crossing Hotel).


절도 피해자는 심신이 지쳐 그대로 잠들었다.



잊지 못할 아침 식사


하룻밤을 보내고 창밖을 봤다. 1박에 33.3달러 숙소 치고는 과분한 뷰였다. 방비엥을 가로지르는 남쏭강이 한눈에 보였다.


건너편의 돌산의 모습이 웅장했다. 낮지 않은 산이지만 구름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구름의 움직임도 변화무쌍했다. 아열대 기후 특유의 하늘 변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타입랩스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꽃길을 지나면 작은 나무 벤치가 있다. 그네도 있어 로맨틱 지수 상승했다. 방비엥에 머물렀던 3일 중 하루는 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 강과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절로 힐링됐다.



허기만 채우려 했던 조식도 훌륭했다. 바로 강으로 연결되는 난간에 식탁이 있었다. 웬만한 리버뷰 레스토랑 못지 않았다. 매일 아침 먹으러 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2시간은 앉아서 커피와 쿠키를 즐겼다.


조식이 훌륭한 식당은, 그리고 그 장소가 훌륭한 식당은, 매일 그저 대충 때우는 아침 식사마저 잊지 못할 순간으로 만들어 준다.


이 호텔은 나에게 싼 가격이나, 멋진 뷰보다는, 영원히 잊지 못할 아침 시간을 마련해 준 곳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방비엥


방비엥은 낮이건 밤이건 항상 들떠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열정을 발산한다. 낮에도 항상 바에는 클럽 음악이 나오고, 춤을 춘다.


길거리 음식도 여행자를 유혹한다. 빈대떡처럼 만드는 바나나 팬케이크는 슈가보이 백종원도 그 맛을 따라하지 못할 것이다. 이 커다란 팬케이크가 우리돈 2천 원이 안된다.



방비엥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튜빙과 카야킹이다. 튜빙은 튜브 타고, 카야킹은 카약 타고 남쏭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액티비티다.


튜빙은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고, 카야킹은 전문 가이드가 붙어 동굴 탐험 같은 일정 진행하고 간단한 식사도 제공한다. 가격은 지금 생각도 안날 정도로 저렴했다. 1만원 내외였던 것 같다.




단순한 뱃놀이가 아니다. 강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다양한 리버 클럽(river club)이 있다. 클럽에 함께 하고 싶다 손짓 하면 1.5리터 코카콜라 페트병을 줄에 감아 던져준다. 그걸 잡으면 끌어준다. 자연스레 그 무리에 합류하면 된다.


위스키를 섞은 칵테일을 팔고 있고, 끊임 없이 EDM이 흐른다. (박명수에게 추천한다) 여전히 강남스타일은 인기다. '두유노 강남스타일' '두유노 김치'가 한국 언론 인터뷰의 문제라 하지만, 여기서 '두유노 강남스타일'은 여행객들을 하나로 만들어준다.



한쪽에서 춤을 추면 한쪽에선 익스트림한 놀이기구를 즐긴다. 서커스 수준의 공중 그네를 타기도 하고, 진흙탕에서 배구 한다. 인종 나이 언어 성별을 초월해 하나가 된다.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여행지, 방비엥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여행과 사건사고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아무리 익숙한 여행지라도, 항상 주의 해야한다. 돈 잃어버리고, 도둑 맞고, 물건을 두고 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건사고도 여행의 일부라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하다. 이 또한 여행이고 이로 인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라오스 도둑의 배려 100달러로, 방비엥 최고의 숙소에서 묵었듯 말이다.


'뜻밖의 행운'은 언제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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