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의 가장 큰 어려움

매달 새로운 집을 골라야 한다는 것

by 리아

2024년 4월 29일 월요일 일기

우리의 여행은 우리의 공간(집)이 위협(전세사기, 누수) 받으며 시작됐고, 여행 내내 공간 문제를 겪다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며 마무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터널의 끝, 빛이 보이는 느낌이다!




언제나 신나 보이는 한달살기 세계여행에도 고충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매달 살 집을 새로 구해야 한다는 것.


큰 맘먹고 떠나온 여행길이라면, 또 그 기간이 짧다면 여행에 기꺼이 돈 쓸 준비가 되어있어 비싸고 좋은 숙소를 예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산이 풍족하지 않은 한달살기 세계여행자는 그럴 수 없다.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최대한 '정상적인'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주로 에어비엔비라는 공유 숙박앱을 통해 숙소를 예약했는데 사진과 리뷰를 아무리 꼼꼼히 읽어도 막상 숙소에 도착하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별의별 이야기를 조금 떠올려보자면, 자연 친화적인 발리의 오두막 숙소덕에 사방이 뚫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샤워를 해야 했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방콕에서는 하루에 50여 마리의 바퀴벌레를 잡으며 세스코 취업 체험을 했고, 프라하에서는 숙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23kg 캐리어 두 개를 (층고가 아주 높은) 6층까지 계단으로 들고 올라가다 병이 나기도 했다. 자그레브에서는 세탁기 문제로 옷이 망가져 호스트에게 덜덜 떨며 배상 청구를 해야 했고, 스코페에서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담배 찌든 내가 나는 숙소 덕에 두통이 생겼으며, 오흐리드에서는 싱크대 역류, 티라나에서는 도착 첫날부터 정전, 이스탄불에서는 단수로 인해 졸졸 떨어지는 한줄기 물로 샤워를 하는 진기한 경험도 했다.


숙소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모든 리뷰를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도 매번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다. 그랬기에 다음 한달살기 장소로 이동할 때마다 떨렸다. 설레는 떨림이 아니라 두려운 떨림이었다. 또 어떤 숙소가, 어떤 문제가 우리를 기다릴까 싶어 이동하는 날이면 온몸이 긴장됐다.




오흐리드에서 싱크대가 역류해 배수관에서 물이 새던날, 우리는 아주 많이 우울했다. 또?라는 생각과 더불어 혹시라도 호스트가 우리의 잘못이라며 돈을 물어달라고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우리 집이 아니기에 호스트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초조하게 문제의 해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이놈의 집 문제는 언제까지 우리를 따라다니려고 하는 것인지.


우울한 마음에 일기를 써 내려갔다. 집 문제에서 언제쯤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편히 쉬고 편히 일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은 없는 것일까. 하소연 섞인 바람을 적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만의 안전한 공간'이라는 그런 생각.


우리의 세계여행은 전세사기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었나? 6개월간 천장 누수로 고생하다 집에 정이 떨어지지 않았었나? 서울의 비싼 집값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한국에서도 우리의 공간을 위협받아 마음고생을 했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고, 우리는 그렇게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들이 뒤엉켜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퇴사 후 여행하는 흔한 부부 이야기 1>을 찬찬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글들이 모두 공간으로 울고 웃던 이야기로 읽혔다.




짝꿍과 '우리만의 공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짝꿍도 공간의 문제에 공감했고 또 동의했다. 우리가 마음 편히 일하고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큰 창과 테라스를 유난히도 좋아했던 우리, 푸릇한 공원을 만나면 크게 감탄하던 우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카페를 좋아하던 우리. 우리가 유난히도 좋아했던 공간을 떠올리며 우리만의 공간을 꿈꾸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쉽기만 했던 세계여행의 끝이 오히려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의 여행은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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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75A913DACBC-1.jpeg 우리의 여행은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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