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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Jul 27. 2021

다시 올 수 있을까?

쿠바 여행기 15

트리니다드에서 길을 나서면 보게 되는 특이한 모습이 있다. 길게 늘어선 건물 현관문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현관문에 기대선 사람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신기한 듯 유심히 쳐다봤다. '동양인 처음 보나? 왜 이렇게 쳐다보지?'라고 생각하며 길을 걷곤 했다. 할 일 없이 문 앞에 서서 무엇을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트리니다드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트리니다드의 주민들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문 앞에 서 있곤 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거나, 파란 하늘과 동네 길양이들을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이곳 주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문 앞에 서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자연과 사람 등 모든 것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할 일 없이 서있는 모습이 심심해 보이기도 했고 게을러 보였지만 고작 사나흘 지났을 뿐인데 우리도 어느새 문 앞에 서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바나에서 만난 친구들이 트리니다드로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문 앞에 서서 택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3시쯤이면 도착해야 하는 친구들이 4시가 되어도 5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고, 그럼에도 우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문 앞에 서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전화와 문자, 카톡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친구들을 기다리는 일이 그렇게 심심한 일은 아니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쿠바 학생들과 손짓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오다가다 만난 한국 여행객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내일은 어디로 가세요?", "저희는 내일 바라데로 가요. 혹시 어디 가세요? 같이 가실래요?" 수다를 떨다 마음에 맞으면 다음날 함께 갈 여행지를 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일정이 끝난 후 저녁에 만나 수다를 떨었다.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어디에 갈 것인지, 그리고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서 떠들었다.


쿠바 아바나

A형은 아바나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우리가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친구들과 A형이  만난  친구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승마 투어를 2번 다녀왔고 시간이 날 때면 앙콘 해변에 갔다. 해변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거나 호핑투어를 했다. 또 쿠바의 전통 악기를 배우기도 하고 근교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쿠바 아바나

트리니다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많은 친구들과 작별했다. 쿠바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과 작별한 후에 A형, B와 함께 산타마리아의 5성급 올인클루시브 리조트에서 4일을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휴양을 마치고 체 게바라가 혁명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산타 클라라에서 체 게바라의 흔적을 따라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바라데로를 거쳐 아바나로 다시 돌아왔다. 20일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바나는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다. 우린 이곳에서 다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또 20일 전 아바나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우리의 인연은 쿠바를 떠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모든 인연이 귀하고 소중했다.


쿠바 아바나

처음 쿠바에 도착하였을 때 더러운 거리와 불편한 생활양식에 적응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러운 화장실과 인터넷이 되지 않는 쿠바는 불편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돈으로만 바라보며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지칠 때도 있었다. 한국과는, 아니 내가 여행을 다녔던 나라들과는 180도 다른 환경 때문에 불편했고 어떤 날은 쿠바를 떠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는 다른 낯섦과 불편함이 나를 덮쳤다.


쿠바 아바나

하지만 이렇게 겪게 된 불편함이 되래 나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림 소리 속에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느끼는 촉박함과 급한 마음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차분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되찾았다.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아바나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느릿느릿 아침을 먹고 천천히 길을 걷고 주변을 관찰하며 쿠바의 아름다움을 즐겼다.


쿠바 아바나

떠나기 전날이 되어 쿠바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쿠바는 지저분하기만 하고 불편함만 있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쿠바는 때론 불편하고 힘들지만 여행자들에게 여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쿠바 여행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남은 쿠바 돈도 환전해야 했다. 50 쿡(60,000원)을 달러로 바꾸기 위해 환전소에 들렀다.

"달라로 바꿔주세요." 

환전소 직원은 환전을 해줄 수 없다며 짜증을 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니 환전을 해줄 수 없어요. 공항 안에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다 쓰세요."

황당해서 헛웃음이 났다. 쿠바에 있는 동안 자주 겪었던 일이었기에 당황스럽진 않았다. 여행을 끝나는 날까지 불친절함은 계속됐다. 공항 안의 마트에 들러 남은 돈으로 먹을거리를 잔뜩 구매했다. 아니나 다를까 쿠바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0.5 쿡을 돌려줘야 하는 직원은 우리를 보고 미소 지으며 0.05 쿡을 내밀었다. 우리도 웃으며 똑같이 해줬다.

"0.5 쿡 주세요." 

강경한 태도에 대부분의 사기꾼들은 항복하고 만다. 0.5 쿡(600원)을 돌려받은 친구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웃고 말았다. 이제는 진짜 쿠바 사람이 다 됐다. 익숙한 이 상황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무사히 아바나를 떠나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23일이 전부 지나버렸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쿠바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이 계속됐다. 쿠바에서의 하루하루를 기억하고 이야기했다. 불편했지만 행복했던 여행의 순간을 떠올리며 웃었다. 멀고 낯선 나라 쿠바. 다시 한번 갈 수 있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꼭 쿠바에 다시 친구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다시 쿠바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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